오늘은 홍콩으로 페리를 타고 가는 날이다. 지난 3일동안 나름 충실하게 마카오를 둘러 봤지만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 남았다.
하지만 아쉬움이 나와야 다음에 또 올 이유가 되니 미련없이 홍콩으로 떠난다.
어제 저녁 숙소 주인 남동생이 번역 어플을 동원해가면서까지 주변에 24시간 식당이 많다고 했지만 막상 6시 좀 넘어서 아침을 먹으러 나갔더니 개뿔, 문을 연 식당이 없다.
아침부터 날씨는 푹푹찌지, 식당은 없지, 분명히 24시간 식당이 있다고 해서 돌아다녀 봤지만 없다. 아, 속았어-
그런데 그 때! 어느 거리 모퉁이에서 문을 연 식당을 발견했다!
24시간 식당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연데다 이미 아저씨 두 명이 뭔가를 먹고 있으니 그저 고마울 수 밖에.
한 가지 단 점은 우리나라 길거리 식당처럼 의지가 없어 가게 앞에 목용탁 의자에 앉아 이상한 상자를 뒤짚어 놓고 식탁처럼 사용한다는 것인데
이쯤이야, 뭐 나에겐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튼 김이 펄펄나는 완탕 국수를 시키고는 5분쯤 있으니 음식이 나온다.
그런데 젓가락으로 내용물을 뒤집어 보니 면이 없길래 '면이 없어!'라고 하니 그냥 완탕 수프만 시킨줄 알았다며 면을 재빠르게 넣어준다. 국물이 나름 진하고 맛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숙소로 돌아가 씻고 볼일을 보고는 나갈 준비를 마친다.
토요일인데다 이른 아침이라 마루에서 잠을 자는 숙소 주인 남동생은 여전히 꿀잠 중이라 열쇠를 조용히 식탁 위에 두고는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페리 터미널로 간다.
원래 버스비는 3.2 MOP인데 남은 잔돈 4 MOP을 냈다. 마카오 잔돈 다 썼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원래 일기 예보로는 어제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오늘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페리 터미널까지는 버스로 약 10분 정도 걸렸나? 금방 간다. 문제는 정류장에 내려서 조금 걸어야 하는데 비가 온다는 것.
그래서 주변에 어느 건물 관리인인 듯한 사람에게 페리 터미널을 물어 보니 친절하게 비를 안 맞고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길을 따라가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긴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페리 터미널로 연결된다. 비가 오는데다 짐을 들고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 핸드폰 LG X-400의 카메라는 정말 후지다. 상상 이상으로 후지다.
여행 출발전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터보젯 페리 티겟을 보여주고는 발권을 하고 잠시 기다리니 배가 와서 드디어 홍콩으로 출발한다.
그런데...그런데...
비가 엄청 온다!! 이렇게 비가 와도 되는 거야??? 할 정도로 많이 온다. 설마 이 배가 난파되는 건 아니겠지 ㅠㅠ 그런데 이렇게 비가 오면 오늘 홍콩 여행은 그냥 숙소에만 있어야 하는 건가...
아무튼 이런 걱정을 하며 펜을 빌려서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고는 1시간여만에 구룡 항에 도착, 드디어 2년 만에 홍콩 땅을 다시 밟아 본다!
그런데 페리를 타고 올 때보다는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려서 침사추이 역까지 걸어 가기엔 무리다. 하는 수 없이 건물 내에 있는 세븐 일레븐으로 가서 우선 옥토퍼스 카드를 충전한다. 2년 전에 쓰던 걸 갖고 있었는데 혹시나 하고 이번에 다시 갖고 와보니 충전만 해도 쓸 수 있더라.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보니 오호라, 비가 많이 약해졌다!!! 이제는 거의 안 오는 수준!! 날씨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안 좋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침사추이 역까지 걸어갈 수 있다!
그래서 캐리어를 끌고 질질질 침사추이 역까지 걸어가서 일단 씨티 은행에서 돈을 찾고는 지하철을 타고 몽콕으로 간다. 한국을 떠나기전 미리 예약해분 초저가 숙소가 몽콕에 있었다.
역시나 짐을 끌고 빨리 이동하느라 사진이 없지만 아무튼 숙소 예약 후 출력해 놓은 지도와 어떻게 가는지 미리 확인 해 둔 내용을 참고하여 숙소가 있는 건물을 찾긴 했는데 대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ㅠ
건물 중앙으로 들어갔더니 전자 상가고,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보니 아니란다.
그래서 일단 다시 밖으로 나와 건물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했다. 건물 어딘가에는 들어가는 입구가 있겠지, 하는 순간 입구를 발견했다!! 그런데 문제는...문제는...엘리베이터 타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 (이건 나중에 숙소 정보를 다룰 때 따로 얘기하겠다)
아무튼 우여 곡절끝에 드디어 숙소에 도착, 체크인을 하고 방을 확인하는데..이런... 이건 뭐 고시원이 따로 없구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고시원이다 ㅠ 어쩐지 싸더라 (이 부분도 나중에 숙소 정보를 다룰 때 따로 얘기하겠다).
그렇게 짐을 풀고 근처 세탁소에 빨래를 맡긴 후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았다. 주변에 식당이 많아서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일단 먹었는데, 소고기였나 돼지고기였나 아무튼 고기 덮밥을 시켰다.
그렇게 밥을 먹고는 드디어 신계의 핑샨 마을로 간다.
2년 전 왔을 때는 구룡반도, 홍콩 섬등 거의 모든 여행자가 가는 곳과 영화의 추억을 따라 돌아다녔다면 이번 여행은 한국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신계를 중심으로 미리 계획을 세웠다. 그 중에서도 오늘 핑샨 마을로 먼저 간다.
※ 핑샨 마을
- 핑샨의 등씨 (鄧氏) 집성촌. 13세기 남송 왕조 시대에 몽골군에 쫓기던 송나라 공주가 등씨 성을 가진 청년과 결혼한 뒤
가정을 이루고 후손들이 터를 닦은 곳
- '핑샨 헤리티지 트레일 (Heritage Trail)'이라고 해서 마을을 걸어서 둘어보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 핑샨 마을 가는 법
MTR 틴슈이와이 (Tin Sui Wai)역 E3 출구로 나오면 된다.
핑샨 마을은 [세계테마기행 홍콩편]을 보고 '아, 저기는 꼭 가 봐야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던 곳이었다.
남들 다가는 란콰이 펑, 남들 다 가는 스타의 거리, 남들 다 가는 빅토리아 피크 말고 홍콩에도 이렇게 오래 전 전통이 남아 있는 곳을 찾아 다녀보고 싶었다. 남들 다 가는 곳은 2년 전에 다녀 왔으니까.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 조금은 아픈 다리를 이끌고 메이 푸 (Mei Foo)역에서 길 거리를 갈아 타고는 드디어 틴슈와이 역에 도착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비가 완전히 그쳤고 드문드문 해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역시 내가 날씨 운은 기가 막히게 좋은 가 봐.
그리고는 E3 출구로 나와 작은 길을 건너면 바로 보이는 추이싱라우!
※ 추이싱라우
- 취성루 (聚星樓):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탑으로 별을 모은다는 뜻의 탑
- 약 600년전인 1486년에 등씨 가문 7대손이 세웠다고 하며 높이 약 13m
- 당 시 이 곳은 홍수가 많은 지역으로 홍수도 예방하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풍수지리적으로 만들어진 탑
- 홍수에 유실되기도 했었지만 나중에 복원 됨
- 탑 안에는 북두칠성 가운데 첫 변째 별인 추심신을 모시고 있으며 탑의 꼭대기 층은 시험의 등락을 관장하는 후이싱('위대한 별') 여신을 모셨다
이제 본격적인 핑샨 헤리티지 트레일을 하러 떠난다. 다리가 버텨줘야 할텐데.
지하철 나온 곳, 그러니까 철로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1분만 가다 보면 아래 사진의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 표지판을 따라가면 안 된다! 이 표지판을 보면 왼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 성청와이 (Sheung Cheung Wai)
- 마당도 없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미로처럼 되어 있음
- 한 때 2,000여 명 살았었는데 지금은 300여명만 남았음
- 도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각형 구조의 마을을 높은 성벽으로 둘러 쌓았음
세계테마기행을 봤을 때는 성청와이가 엄청 큰 등씨 후손 거주지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작다. 최소한 서울의 한 개 동이나 그 반 정도는 될 둘 알았더니 웬만한 아파트 단지보다도 훨씬 적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했던가. 생각보다는 실망이다.
※ 등씨종사 (Tang Ancestral Hall)
- 가문의 시조부터 조상의 위패를 모신 곳.
- 홍콩에 남아 있는 사당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 도자기 산지로 유명한 스완 (石灣) 지역 스타일의 용 무늬와 유니콘 모양이 대들보와 지붕에 장식되어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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