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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3일만에 홍콩 뽀개기(3): 구룡반도 (1)-침사추이 (1): 숙소, 구룡 모스크, 하트 애비뉴, 성 앤드류스 교회, 허유산, 청킹맨션 사주에 역마살이 좀 있다고 해서인지, 여행하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  물론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만, 나의 여행은 큰 트렁크에 멋있는 옷을 싸 갖고 가서 현지에서 패션쇼 하듯이 옷을 갈아 입으며 다닌다거나 밤이 되면 이성을 유혹하러 유흥가를 돌아다닌다거나, 고상하게 비싼 음식을 오물조물 씹어대는 여행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볼 수 없는 곳을 보고, 맛 볼 수 없는 것을 먹기 위해 걷고 이동하며 움직이는 여행인데, 잠은 한국에서도 잘 수 있고, 술은 한국에서도 마실 수 있으며, 쉬는 것도 한국에서 할 수 있다.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여행지에서의 그 순간, 한국에서 경험해 볼 수 없는 그 시간의 연속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내가 하는 여행이다.. 2024. 5. 19.
불멸의 투수 최동원 (마지막): 언제나 나의 영웅 은퇴 후인 1991년. 그는 야구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6,7년 계획으로 갔는데 SBS에서 해설위원 제안이 왔고 고민을 하다 '결국 미국만 공부인가 생각'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귀국해서 야구 해설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최동원은 전혀 다른 방향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당시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다고 떠들던 김영삼이 대통령 한 번 돼보겠다고 정 반대의 길을 걸어 온 노태우, 김종필과 야합하자 그 사실에 동조할 수 없었던 노무현이 분당하여 만든 민주당에 입당, 14대 총선에서 광역의원에 출마한 것이지요.  사실 부산이라는 지역만 놓고 봤을 때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으로 출마했다면-실제로 중고등학교의 대선배인 김영삼이 최동원을 좋아해 민자당에서 요청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선이.. 2024. 5. 17.
불멸의 투수 최동원 (6): 언제나 나의 영웅 (편의상 존칭 생략)본 포스팅은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토대로 종합하여 제가 정리하였고 마지막 편에 출처를 한 번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아래 신문 기사를 보면  [블루제이스 부사장 팻 길릭은 "그(최동원)는 아마도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투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 메이저리그 계약을 오퍼했다."라고 말했다. 길릭은 최동원이 계약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27개월 동안 군복무해야 하는 한국의 징병제도가 걸림돌이라고 말했다.]라는 내용이 뉴욕 타임즈에 실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MLB는 아직도 우리 프로야구를 더블 A와 트리플 A 중간 정도의 수준으로 보고 있고 NPB를 트리플 A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들 중에는 그들의 인식보다.. 2024. 5. 17.
불멸의 투수 최동원 (7): 언제나 나의 영웅 (편의상 존칭 생략)본 포스팅은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토대로 종합하여 제가 정리하였고 마지막 편에 출처를 한 번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1982년 아마야구팀 한전에 입단한 최동원은 앞서 얘기한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지만 그 대회에서의 스타는 최동원이 아닌 선동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의 최동원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데요, 아마 그간의 혹사로 인해 특별히 주목할만한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앞서 살펴 본 임호균 선수의 인터뷰에서도 이미 전성기를 지난 시점이란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참고로 최동원이 토론토도 롯데 자이언츠도 아닌 실업 팀 한전에 입단한 이유는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출전을 위한 아마선수 자격 유지를 위한 임시방편인 듯합니다.  의아.. 2024. 5. 17.
불멸의 투수 최동원 (4): 언제나 나의 영웅 (편의상 존칭 생략)본 포스팅은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토대로 종합하여 제가 정리하였고 마지막 편에 출처를 한 번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혹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같은 해 (197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에 등판한 최동원의 기록은 전년도에 이어 해외에서도 '혹사'를 끊을 수 없는 그의 운명을 보여줍니다.  대회 내내 좋은 투구를 보이던 최동원이 마지막 쿠바전에서 참혹한 결과는 만들어 낸 것에 대해 어떤 분은 이 대회 직전 네덜란드에서 열린 할렘 국제 야구대회에서 쿠바를 만나 3이닝 무실점으로 막았기 때문에 최동원이 쿠바를 얕본 것이 아닌가라고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9월 5일을 빼고는 매일 등판하여 선발로 나서면 완투, 구원으로 나서도 1이닝 던진 것은 한 번이고.. 2024. 5. 17.
불멸의 투수 최동원 (5): 언제나 나의 영웅 (편의상 존칭 생략)본 포스팅은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토대로 종합하여 제가 정리하였고 마지막 편에 출처를 한 번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후 1980년 대학 4학년이 되면서 최동원은 다시 '명불허전'이라는 네 글자를 세상에 알리게 되는데 그 중 하이라이트는 백호기에서 맞붙은 실업팀 '성무 (상무 아닙니다^^)'와의 경기.  당시 실업 최고의 타자로 알려진 김재박이 버티고 있던 성무를 맞아 단 3안타만을 내준 채 경기를 승리로 이끌며 대한민국 최고 투수의 반열에 우뚝 섰으며 그만큼 각종 스카우트 얘기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특히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에서 직접 스카우트 부장을 보내 계약 내용을 협상하려 한다는 기사가 보도 되기도 했는데 선수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스카우터를 보내는 것이 .. 202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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