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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어디까지 가 봤니?

2016년 가을: 방태산과 홍천 은행나무 숲

by Robin-Kim 2016.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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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처치곤란할 정도로 시간이 많을 때가 있다.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운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정말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본의 아니게.

 

그 때도 그랬다.

지난 10월 하순 경, 그토록 시간이 많이 남아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문득 강원도가 가고 싶어졌다.

그 맘 때쯤, 그러니까 한창 단풍이 물이 올랐을 때였다.

 

태어나서 단 한 번이라도 단풍구경이란 것을 가 본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해보니

단 한 번도, 결단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는

'그래, 가자'라고 즉흥적으로 떠나게 된 곳, 강원도.

 

특별히 준비할 것 없이 그냥 카메라 하나만 들고 간 곳, 강원도.

평일이었기에 사람이 많이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떠났던 곳, 강원도.

 

목적지인 방태산 근처만 갔는데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은 '너무도 화려한' 단풍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도대체 난 매년 10월 하순 경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며 살았던 것일까?

 

그리고 도착한 곳, 방태산.

입장료가 얼마였더라.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입장료를 입구에서 내고 올라가니 단순히 '빨갛고 노란'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색의 향연들이 나를 지켜 보고 있었다. 

 

 

* 방태산 입구 즈음의 풍경.

 

개인적으로 등산을 꽤나 싫어한다.

'싫어했다'라고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좋아하고 그 여행의 순간을 사진이란 걸 통해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하다 보니 높은 곳도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등산 그 자체는 좋아하진 않지만.

 

특히 방태산은 '등산'이란 걸 굳이 하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도 카메라로도 담을 수 있는 좋은 곳이다.

그 아름다움 속으로 계곡물이-냇물이라고 해야 하려나- 흘러 내려오니 그것 또한 일품이었다. 

 

 

* 다행히 날씨도 좋았고 방태산은 더욱 좋았다.

 

사실 산이 주는 매력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아느냐'라고 누가 물어 본다면 속시원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준으로 산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어.렴.풋.이 한국의 산이 주는 매력을 알게 된 순간이 있었다.

 

색 (色).

한국의 산은 색이었다.

봄이면 그것대로, 여름이면 또 그것대로, 가을과 겨울이면 역시나 또 그것대로

계절마다 다른 색을 만들어 내며 그 아름다움에 취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 가을의 상징, 단풍잎과 계곡과 풍경.

 

굳이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물론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었겠지만

내 눈높이에서 본 풍경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강원도의, 방태산은 그랬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경치 좋은 곳에서 술 한 잔하며 시 한 수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글을 잘 썼거나 혹은 시를 잘 쓸 줄 알았다면

아마 탁주 한 사발에 시 한 수 쓰고 싶었을 정도로 날씨도 좋았고 풍경도 좋았다.

 

* 이단 폭포인 듯 아닌 폭포.

 

얼마 올라가지 않았는데 이단 폭포가 눈에 들어 왔다.

벌써?

방태산은 2단 폭포가 우명하다고 해서 그 곳까지 가는 게 목표였는데 입구를 지나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벌써 이단 폭포가 눈에 들어왔고

아주 많지는 않지만 여러 명의 진사님들이 삼각대를 세워놓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주변엔 표지판도 안내판도 심지어 폭포 근처까지 내려가는 정상적인 길도 없었다.

그래, 여기가 이단 폭포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떤가.

눈을 홀리는 아름다움에 나도 바위들을 밟아가며 폭포를 찍으러 내려가 본다.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위치에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다가 삼각대를 놓으려 자리를 옮기던 중

그만 한 쪽 발이 '풍덩'하고 빠지는 바람에 운동화도 젖고 양말도 젖고 바지 밑단도 젖었다.

그래도 딱히 기분 나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처음본다고 할 수 있는 아름다움 풍경의 모습에 취했기 때문일까.

 

얼른 빠졌던 발을 건져내고 다시 자리를 잡고 삼각대를 펼쳐보지만 자리가 애매하다.

한 쪽 다리 부분은 깊고 한 쪽 다리 부분은 얕으니 삼각대 다리 길이 조졸하다가 한나절 보내게 생겼길래

그냥 삼각대를 접고 풍경을 담아 본다.

 

* 아름다운 방태산의 모습.

 

조금 더 올라 가보기로 한다.

등산코스가 아닌 그렇다고 언덕을 오르는 경사도 아닌 그냥 평지를 걷는 느낌으로 천천히 올라가 본다.

확실히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고즈넉한 느낌으로 충만해진다.

눈으로 풍경을 담고 귀로는 발걸음 소리를 담아본다.

 

* 고즈넉한 방태산 산책길.

 

* 마치 계곡 같은 풍경도 펼쳐진다.

 

그 때 운치있는 교각이 눈에 들어 온다.

사실 '다리'라고 표현하려 했는데 그것보다는 '교각'이 어딘지 모르게 더 운치있어 보여 그냥 교각이라고 쓴다.

(혹시나 일본식 표현이라면 알려주시길)

 

교각은 건너갈 수 없도록 막혀 있었는데 마치 이 교각을 건너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아 건너가고 싶어진다.

 

* 운치있어 보이는 교각.

   이 교각의 끝에는 어떤 모습이 숨어 있을까?

 

교각을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올라가 보기로 한다.

이따금씩 벌써 내려오는 분들을 보면서 참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무엇이 좋아서 그토록 일찍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 오는 것일까?

어쩌면 나보다 더 번잡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역시나 조용하고 고즈넉한 방태산의 산책로를 천천히 음미하며 걸어 본다. 

 

* 방태산 산책로 퐁경.

 

얼마나 걸었을까?

'이단폭포'라는 표지판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여러 명이 진사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어쩌면 그토록 소중한 것을 그렇게 입구에서부터 보여줄리가 없지.

소중한 것일수록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었다가 보여줘야 감동이 더한 법이니까.

 

방태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그래서 어쩌면 가장 소중할지도 모르는 이단 폭포는 입구가 아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주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아름다운 풍경과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 새 도착할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 방태산 이단 폭포의 이런 저런 풍경들.

  일단만 찍어 보기도 하고 옆으로 찍어보기도 하고 다양하게 담아 봤다.

 

* 하염없이 풍경을 담고 계시는 진사님들.

 

시간을 보니 벌써 12시가 다 되어 간다.

어쩐지 슬슬 배가 고프더라.

배도 채울겸 하산 (?) 하기로 하고는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 간다.

아까 빠졌서 젖어 있는 운동화와 양말이 그닥 거추장스럽지 않은 걸 보니 어지간히 풍경에 취했나 싶다.

 

내려가면서 보는 풍경은 올라가면서 본 그 것과는 또 다른 자태를 보여준다.

내가 놓쳤던 것일까.

분명히 같은 곳을 오르고 내려가는데도 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풍경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은 양 쪽을 다 봐야 하고 양 쪽의 얘기를 다 들어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 내려가면서 만난 풍경들.

 

* 아까 보았던 그 교각.

  내려가면서 본 모습은 무언가 다른 느낌을 준다.

 

* 마지막으로 담아 본 방태산 풍경.

 

오기 전에는 아무리 가을 단풍이라도 그렇지 그 먼 곳을 귀찮게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었는데

와 보고 나니 오지 안 했으면 어쩔뻔했나라는 생각으로 바뀔만큼 방태산은 아름다웠다.

내가 또 언제 이 곳에 올 수 있으랴.

 

이제 홍천 은행나무 숲으로 방향을 잡아 본다.

몇 년 전, [무한도전]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보고 반해 버린 그 곳을, 강원도까지 온 김에 가보기로 한다.

 

가는 길에 어느 작은 마을, 작은 식당에 들러 콩나물 비빔밥으로 허기를 달랜다.

서글서글한 성격의 인상 좋은 젊은 식당 여주인의 인정을 덤으로 받고.

 

점심을 먹고 한 시간을 더 달렸을까.

정말 대한민국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구나,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이런 모습을 간직하고 있구나라고 감탄할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도착한 홍천 은행나무 숲.

 

아...그런데 이 곳은 방태산과는 다르다.

이미 입구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길이 막히기 시작하더니 말 그대로 인산인해,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이 곳에 놀러온 것 마냥 차와 사람들도 뒤덮였 있었다.

 

이건 내가 원하던 그림이 아닌데.

 

평일에 이렇게 놀러올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니, 대한민국 경제가 뉴스에서처럼 나쁘지는 않은가 보다.

아니면 나처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거나.

 

* 홍천 은행나무 숲 입구.

 

* 입구를 지나면 왼 편으로 바로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입구를 지나니 오른 편에 가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코스모스가 한 가득 피어있었고 그 길을 따라 또 다른 산책로가 연결 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이 세상을 만들기 전에 연습삼아 만들어 본 꽃이라는 전설이 있는 코스모스는

그 때문인지 가을을 더욱 아련하고 애잔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만약 그 때 신이 코스모스가 아닌 다른 꽃으로 연습을 했다면 그 꽃은 무슨 꽃이 되었을까? 

 

* 아름다운 코스모스. 

 

은행나무 숲은 구경온 사람도 너무 많고 장사를 하시는 분들도 너무 많아서 복잡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알려질 대로 알려진 곳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그러니까 그 때 TV에서 봤을 때 바로 와 볼걸 하는 후회와

너무 많은 사람들 덕분에 정신이 없었다는 생각 밖에는 남지 않았던 곳.

 

하지만 그 와중에서 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나무가 어울려 만들어낸 풍경이 멋스러웠던 곳.

사진으로 대체하려 한다.

 

* 여기가 진짜 입구.

 

* 인산 인해.

 

* 하늘과 은행 잎의 색이 조화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 이런 저런 풍경들.

 

* 세로로도 한 번 찍어 보고.

 

* 햇 빛에 반사되어 너무나 아름다웠던 은행나무들.

  누가 나에게 '아름답다'라는 단어 말고 다른 단어를 알려줬으면 좋겠다.

 

* 역시나 이런 저런 풍경들.

 

* 은행나무 숲에도 색의 조화는 있고

 

* 빨간 단풍잎도 있으며

 

* 이런 풍경도 있다.

 

* 돌아나오며 담아 본 은행나무 숲의 모습들.

 

정신없었던 은행나무 숲을 뒤로 하고 이제 집으로 향한다.

'본의 아니게' 생긴 주체할 수 없었던 시간 덕분에 처음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그렇게 집으로 가다가 어느 작은 논두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잠시 쉬면서 사진을 담아 보기도 하면서,

만끽했던 2016년의 가을을 마무리 하려 한다.  

 

* 논두렁에 핀 꽃.

 

* 잘 익은 벼가 가득한 논의 풍경.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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