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존 티토라는 미국인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2036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는 존 티토는 여러 가지 예언을 했는데요, 이를 테면 동남아시아 쓰나미라든가 미국의 광우병 확산과 이라크 전쟁 등의 예언이 맞으면서 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2008년 북경 올림픽 무산, 2005년 미국의 내전, 2011년 미국의 해체와 같은 예언들이 맞지 않으면서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불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저도 시간 이동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이 꽤나 많습니다.
로또번호를 알고 있으니 로또를 사서 당첨되고 싶기도 하고, 또 헤어졌던 연인과 헤어지지 않도록 좀 더 많은 사랑을 나누어 주고, 안타깝거나 아쉬웠던 선택의 순간에 더 좋은 결정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시간 이동을 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치명적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30년에 서민인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연속으로 로또 1등에 당첨되어 부자가 된다면 2030년의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서민인 나와 부자인 나, 두 명이 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2030년의 아내나 남편이 아닌 과거에 헤어진 연인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는다면 2030년의 배우자는 누가 되는 걸까요?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처럼 보이는 이런 질문들은 사실 좀 더 본질적인,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것에 대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이 명제를 다룬 영화가 무려 1985년에 개봉됐던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와 3편까지 이어진 그 시리즈입니다.
우선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시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과거인 1955년, 현재인 1985년, 그리고 미래인 2015년입니다.
당연히 시리즈 전체의 기준 시점은 현재인 1985년이고 또 영화의 줄거리에 따라 현재가 과거가 되기도 하고 또 미래가 되기도 합니다.
1985년 현재.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마티 맥플라이 (마이클 J 폭스)는 우연한 기회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괴짜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브라운 박사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개발한 타임머신 자동차를 타고 과거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과거에서 만나게 된 사람은 고등학생 시절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런데 미래의 패션으로 무장한 호쾌한 성격의 마티를 당시 고등학생인 그의 엄마가 좋아하게 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 엄마가 아빠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 않으면 자신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영화에서는 마티가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점점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미래에서 온 나 때문에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없어지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죠.
그래서 마티는 숫기 없는 고등학생이었던 아버지를 자극해서 어떻게든 엄마와 사랑에 빠질 수 있게 갖은 노력을 다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그 과정에서 당시에는 완전히 생소할 수밖에 없는 미래 (1985년)의 음악을 소개하기도 하고요.
그리고는 4년 후 개봉한 속편 [백 투 더 퓨처 2 (Back to the Future2)]는 ‘나는 어디서 왔는가’ 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명제를 제대로 표현한 시리즈 중 최고의 명작입니다.
우선 이 영화에서 브라운 박사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마티에게 지속적으로 ‘미래 혹은 과거의 너 자신과 만나지 말라’라는 얘기를 합니다.
미래 혹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만나게 되면 시간의 연속성이 깨지게 되고 그것은 결국 우주의 붕괴까지 불러온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이 브라운 박사의 대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실제로 브라운 박사와 마티 그리고 마티의 여자 친구인 제니퍼가 미래로 갔을 때 마티의 집에서 집사 역할을 하던 비프가 배팅 도박을 위한 스포츠 결과 잡지를 갖고 몰래 타임머신을 훔쳐 탄 후 1편의 배경이 됐던 시점의 과거로 (1955년) 가서 그 시절의 비프에게 잡지를 주고 다시 돌아옵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미래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 브라운 박사와 마티는 현재 (1985년)의 모습이 원래 자신들이 살던 모습과는 완전히 뒤바뀐 세상이 된 것을 알게 되는데요.
그 중에서도 비프가 미래의 자신한테 받은 스포츠 결과 잡지로 베팅을 해서 승승장구,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재벌이 됐으며 1편에서 마티가 그렇게도 애썼던 엄마와 아빠의 결혼이 무산되고 엄마는 비프와 살고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즉, 미래에서의 비프 때문에 과거가 완전히 바뀌면서 현재까지 바뀌게 된 것이죠.
그래서 브라운 박사와 마티는 다시 1편의 배경이 된 1955년으로 가서 미래의 비프가 당시의 비프에게 전해준 책을 뺏어 없애고 현재 (1985년)를 다시 원상 복귀시키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마티는 이미 1편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자신을 보게 됩니다.
미래 (1985년)에서 온 자신의 등장으로 바뀔뻔한 과거를 극복해가는 자신을 또 다른 자신이 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죠.
그래서 원래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1955년의 마티는 2명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진짜 마티는 누구일까요?
더구나 이 두 명의 마티가 1955년에서 만난다면, 나아가 두 사람 다 자신이 1985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만난다면 누가 진짜 마티라고 마티 자신은 생각할까요?
그래서 앞서 얘기한 것처럼 브라운 박사의 얘기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브라운 박사는 내내 타임머신을 부셔야 한다고 말하죠.
그리고 1990년 개봉한 시리즈의 3편 마지막 부분에서 마침내 타임머신은 부서지면서 시리즈는 마무리됩니다.
재 조립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예 박살이 나죠.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타임머신 박살 났다면 1955년으로 간 두 명의 마티 그리고 미래로 갔던 마티는 없어진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985년의 마티는 여전히 1955년에도 미래에도 타임머신을 타고 간 상태로 존재합니다.
다만 두 번 모두 또 다른 자신과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뿐이죠. 그리고 그 상태로 시간은 무한정 돌고 도는 것입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3편은 과거 서부개척 시대의 얘기입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마티의 조상과 현재의 마티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인 힐 밸리 (Hill Valley)가 생성되는 과정 그리고 2편에서의 타임머신 고장으로 무려 100년 전인 1885년으로 이동한 현재 (1985년)의 브라운 박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얘기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1편과 2편에서 보여준 철학적 혹은 인문학적인 측면보다는 재미가 훨씬 강조된 영화입니다.
이 시리즈를 볼 때 눈여겨 보면 훨씬 재미있는 점이 두 가지 있는데요, 우선 마이클 J 폭스의 다역 연기입니다.
과거나 미래의 자신을 연기하는 것 외에도 2편에서는 미래의 자신의 딸을, 3편에서는 과거의 자신의 조상을 함께 연기했는데 그 모습이 꽤나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2편에서 미래로 그려지는 2015년에는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말 (언어)로 TV 채널을 바꾸기도 하고 날 수 있는 스케이트 보드도 등장하는데요.
2016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2015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꽤나 흥미롭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제작했던 시점에서 본 2015년이라는 미래는 상상 이상으로 과학이 발전한 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영화에서는 2015년에도 팩스가 여전히 주요 통신수단으로 사용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직도 사용되긴 하지만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팩스라서 깨알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이제 다시 이 글의 주제로 돌아가 볼까 합니다.
2015년의 제가 2002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로또를 사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2015년의 저는 부자인 걸까요? 아니면 여전히 서민인 걸까요?
그리고 2030년의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2002년으로 간다면 2002년의 제가 진짜일까요 아니면 2015년에서 건너간 제가 진짜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2030년의 제가 진짜일까요?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인문학적인 고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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