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읽어주는 남자:엔딩 크레딧

영화 뜯어보기: [특종: 량첸 살인기] - 거북한 진실, 아름다운 거짓에 대한 화두 (조정석, 김대명, 이하나, 이미숙). 흥행, 손익분기

by Robin-Kim 2024. 8. 29.
728x90
반응형
반응형
728x90

영화나 소설 같은 컨텐츠를 재미있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대립구도를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여러 가지의 대립구도가 얽히고 설키면 그 안에서 다양한 긴장감이 펼쳐지기 때문에 이야기가 재미있어지고 대립구도가 단순하면 그만큼 이야기가 느슨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대립구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것은 감독의 연출 능력에 따라 완전히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대립구도가 많으면 자칫 이야기가 복잡해지면서 이도 저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없게 만들 수 있고, 단순한 대립구도로도 충분히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전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2015년 개봉했던 영화 [특종: 량첸 살인기]는 꽤나 다양한 대립 구도를 보이고 있는 영화인데요, 과연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어느 추운 겨울 날, 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젊은 남녀가 살인을 당해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그동안 일어났던 일련의 연쇄 살인 사건이 또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언론과 국민은 이 사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

 

그렇습니다.

 

[특종: 량첸 살인기]에서 연쇄 살인범은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며 대립구도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핵심인물입니다.

 

그리고 그가 벌인 연쇄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허무혁 vs 살인범’, ‘허무혁 vs 방송국 (백국장)’, ‘방송국 vs 경찰’이라는 큰 세 개의 대립구도가 얽히고 설키면서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이러한 대립구도가 지향하는 것, 그러니까 이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대립 구조 속에 있으니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쇄 살인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한 방송국 기자인 허무혁 (조정석)은 뉴스를 통해 자신의 기사를 모니터링 하던 중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자신의 이웃인 것 같다는 제보 전화를 받지만 동시에 사무실에서 일어난 난리 때문에 대충 메모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리는데요.

 

그 난리란 허무혁이 예전에 취재한 대기업 비리 기사 때문에 그 대기업의 친척이 운영하는 또 다른 대기업에서 허무혁의 방송국에 노출하기로 한 광고를 대부분 취소하겠다는 협박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 대기업에 잘 보이기 위해 허무혁을 대기 발령 내는데 대기 발령이란 퇴사를 종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허무혁과 방송국이 처음 대립하는 순간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라는 권력과 언론의 유착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세계적인 석학 촘스키가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책에서 언론은 광고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제도적 관점에서 언론은 민간 기업들에 시청자를 파는 민간 기업이라고 한 얘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광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언론사의 사정상 광고주, 그것도 대기업을 쉽게 건드릴 수 없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으며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부터 그런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이후 퇴사의 위기에 처한 허무혁은 불현듯 제보 전화를 기억하고 그 내용을 메모해 둔 쪽지의 주소로 직접 찾아갑니다.

 

제보자는 불법 체류 중인 외국 여자였고, 그 여자가 얘기한 ‘범인인 것 같은’ 사람은 바로 그 여자의 옆집이었기에 허무혁은 몰래 그 집으로 들어가서는 증거로 될만한 내용을 갖고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살인의 기쁨 혹은 즐거움을 ‘범인인 것 같은’ 사람이 자필로 쓴 메모.

 

이 메모를 갖고 다시 회사와 협상을 한 허무혁은 직접 뉴스에 출연하여 메모를 읽는 등 ‘특종’을 보도하며 기사의 중심에 서게 되고,회사에 복귀하는 것도 모자라 단숨에 ‘업계’에서 유명인이 되어 스카우트 제의도 받게 됩니다.

 

두 번째로 허무혁과 방송국이 대립하는 부분인데 첫 번째는 숨겨진 권력에 의한 방송국의 승리였다면, 이번엔 특종이라는 언론사의 태생적 생리 때문에 허무혁이 승리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범인인 것 같은’ 사람을 미행하다가 그 ‘범인인 것 같은’ 사람이 사실은 범인이 아니며 연극 배우라는 진실을 알게 된 허무혁은 

그가 몰래 훔쳐 와 뉴스에서 밝힌 메모의 내용도 연극의 대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연극은 [량첸 살인기]라는 중국의 연쇄 살인범에 대한 소설을 연극화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허무혁은 방송국의 보도국 임원인 백국장 (이미숙)과 문이사 (김의성)에게 사실을 알리고 스스로 퇴사를 하려 하지만 두 사람은 허무혁이 다른 언론사로 가려고 한다고 생각하고는 오히려 월급 인상에 차장 직급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줍니다.

 

허무혁이 방송국과의 대립에서 다시 승리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방송국은 졌으면서도 시청률 고공행진이라는 전리품을 챙기게 됩니다.

 

범인인 것 같은’ 사람을 미행하던 동영상을 뉴스를 통해 공개하는가 하면 허무혁을 다른 방송에 출연시켜 살인범이 [량첸 살인기]라는 중국 소설을 모방하며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얘기를 하도록 하면서 전국민이 [량첸 살인기]에 관심을 갖도록 만듭니다.

 

나아가 또한 허무혁은 스스로 범인인척 ‘제보자를 죽일 테니 보도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취재에서 발을 빼려 하지만 그것마저도 백국장과 문이사는 특종 거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당연히 뉴스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특종을 연달아 내 놓으면 시청률이 오르고 시청률이 오르면 광고가 많이 붙게 되어 있기 때문에 언론사는 이미 진실에 무엇인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전리품이 중요한 것이죠.

 

즉 대립구도에서 스스로 발을 빼려 한 허무혁을 방송국은 시청률이라는 덫에 빠져 그를 자리에 도로 주저 앉힌 것입니다.

 

그에 따라 허무혁 역시도 취재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도리어 처음 제보했던 불법체류자가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요구한 3만 달러를 줘 버리는 것은 물론 자신의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에 ‘진실을 알고 있다’고 쓴 사람이 살인을 당하자 허무혁은 그가 제보자라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마치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오히려 점점 더 빠져들어가는 모래구덩이처럼 허무혁 역시도 시청률이란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것인데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 대립 구도 (허무혁 vs 벙송국)에서의 진정한 승자는 허무혁이 아니라 방송국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대립구도가 등장합니다. 바로 방송국 vs 경찰입니다.

 

연쇄 살인 사건을 진두 지휘하는 오반장 (배성우)은 방송국이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증거들을 잇따라 공개하는데 불만을 표출합니다. 수사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 범인이 그 뉴스들을 보고 잠적을 해버릴 가능성도 있을뿐더러 뉴스에서 공개한 것들이 과연 진범에 대한 것인지도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용의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송국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그런 오반장의 불만을 무시합니다. 심지어 ‘경찰이면 다냐’라는 얘기와 함께 회의실에서 양쪽으로 나뉜 채 으르렁거리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타협은 없습니다.

 

방송국은 자신들의 특종 거리를 경찰에게 알려줘 봐야 좋을 것도 없고, 경찰 역시 방송국이 그렇게 해준다고 한들 자신들이 해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야기는 ‘허무혁 vs 살인범’ 그리고 ‘허무혁 vs 방송국’이라는 대립구도를 넘나들며 전개 됩니다.

 

앞서 얘기한 댓글을 남긴 사람의 시체를 본 후 그 댓글의 IP를 추적해서 찾아간, 지금은 사용되지 않아 버려진 폐 건물에서 허무혁은 진짜 연쇄 살인범 (김대명)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진짜 살인범은 오히려 [량첸 살인기]라는 소설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며 그 책에 나온 것처럼 앞으로 살인을 저지르겠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경찰은 전혀 엉뚱한 서두호라는 사람을 잠재 용의자로 지목, 몽타주를 배포하고 백국장은 그 몽타주와 함께 서두호가 남겼다는 유언장을 뉴스를 통해 공개했는데, 그 내용은 [량첸 살인기]처럼 마지막으로 살인을 하고 자신도 자살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 허무혁은 백국장에게 서두호가 ‘진짜 범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경찰이 정식 배포한 몽타주라는 점, 서두호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다는 점 때문에 뉴스는 정정보도 없이 그대로 계속 전파를 타며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합니다.

 

이후 방송을 본 경찰은 [량첸 살인기]의 내용을 쫓아 처음 살인이 일어났던 낚시터로 향하지만 그 곳에 서두호는 없었습니다.

 

이미 진짜 살인범이 그를 잡아 살인하기 위해 폐 건물로 데려왔던 것입니다.

 

이후 진짜 범인을 찾아간 허무혁은 살인범이 서두호를 죽이기 직전 위험을 무릅쓰고 몸 싸움을 벌여 그를 구출하지만 그 과정에서 살인범이 허무혁이 찌른 칼에 죽게 됩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눈이 가려져 있던 서두호는 오히려 허무혁을 살인범으로 그리고 살인범을 자신을 도와 준 용감한 시민으로 알게 되고 또 그렇게 인터뷰를 합니다.

 

덕분에 세상의 많은 언론과 사람들은 살인범을 용감한 시민이라며 추모를 하며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영화의 결말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종: 량첸 살인기]는 크게 세 가지의 대립 구도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결국 영화가 얘기하고 싶었던 대립 구도는 [우리의 인식 vs 진실]이 아니었나라는.

 

진실이란 대개의 경우 강한 아픔이 따르는 것이야.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아픔이 따르는 진실 따윈 원치 않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건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느끼게 해주고 아름답고 기분 좋은 이야기야.’ –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진실은 때론 수 많은 얼굴을 가졌으니까. 우리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이익에 따라 악인이기도 하고 천사이기도 하며 교활한 사기꾼이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는 자이기도 하며 간악한 밀고자이기도 하고 밀고의 희생자이기도 하지 않던가? 그 모든 얼굴이 거부하지 못할 우리들 자신의 진실일 것이다.’- [별을 스치는 바람, 이정명]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북한 진실 보다는 아름다운 거짓을 원합니다.

 

그것이 진짜 순도 100% 사실이더라도 보고 듣고 생각하기에 거부감이 들면 오히려 그것이 거짓이기를 바라며, 반대로 어떠한 일이 거짓일지라도 그것이 보도 듣고 생각하기에 아름답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심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그러한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쇄 살인범이라는 극악무도한 죄인이 얼른 잡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판단도 없어 방송국의 뉴스를 그대로 흡수합니다.

 

그래서 시청률이 오르는 것이죠. 거기에 ‘중국 소설 내용을 모방했다’라는 드라마까지 덧입혀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식을 줄 모릅니다.

 

방송국의 뉴스를 그대로 진실로 믿어 버리는 것입니다.

 

방송국이 거짓말을 하겠어?’라는 뉴스의 공신력에 대한 무모한 믿음 때문이죠.

 

 

진짜 연쇄 살인범이 시민 영웅으로 둔갑되어 사람들에게 추모를 받게 영화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경찰부터가 현장을 보며 그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아예 제외시켜 버립니다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완벽히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죠.

 

경험에 의해 ‘이 사람이 피해자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피해자라는 믿음이 생겨 버린 것입니다.

 

서두호도 마찬가지 입니다.

 

눈이 가려져 있어 누가 범인이었는지 알지 못했던 상황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장면이 허무혁이 칼을 손에 쥐고 있는 장면이라고 해서 그를 살인범, 진짜 살인범을 시민 영웅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진짜 진실 보다는 눈으로 본 것만을 믿게 되고 그 순간 그것이 진실이 되어 버린 것이죠.

 

그런데 만약, 우리가 영웅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이 갑자기 ‘원래는 연쇄 살인범이었다’라는 진실이 알려지면 그 충격은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경찰의 무능력함과 거짓을 알려온 언론에 대한 사회적인 질타는 상상을 넘는 수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 의해 휘둘린 사람들은 스스로를 책망하게 될 것이고요.

 

그래서 그런 진실은 가려두고 거짓 사실을 알고 평온한 것이 훨씬 좋은 상태인 것이죠.

 

 

사실 왜 영화의 마지막에 허무혁이 진실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아마도 감독은 이런 부분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라도 우연히 서두호와 허무혁이 마주쳤을 때 서두호가 그를 살인범이라고 신고한다면 허무혁은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게 경찰에 진실을 알리는 게 중요했었습니다만, 그의 선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미 경찰도 진짜 살인범을 시민 영웅으로 발표 했고, 서두호도 인터뷰를 통해 그런 그에게 감사를 표했으며, 언론은 그런 내용을 집중적으로 방송했고 따라서 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허무혁이 진짜 진실을 얘기한다면 그것은 거북한 진실이 될 것이고 사회는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럴 때는 그냥 모르는 척 덮어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며 그래서 허무혁은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나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어차피 허기자가 취재한 거 다 진실이라고 생각해서 보도한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나는 그래. 뉴스라는 게 그런 거잖아. 뭐가 진짜고 가짠지 가려내는 거 그거 우리 일 아니야. 보는 사람들 일이지. 그들이 진짜라고 믿으면 진실인 거야’라는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백국장의 대사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영화의 진짜 대립구도는 [우리의 인식 vs 진실]이 아닌가는 생각을 합니다.

 

 

 

이처럼 괜찮아 보이는 영화지만 [특종: 량첸 살인기]는 불과 약 61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고 약 47 5천만원의 매출을 올리는데 그쳤습니다.

 

왜 그럴까요?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으로 보면 탄탄해 보이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곳곳에 보이는 허점들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데요, 우선 연쇄 살인범의 범행 동기가 없습니다.

 

평범한 중국집 주방장이 연쇄 살인범이라는 사이코 패스로 영화는 그려내고 있지만 사이코 패스도 최소한의 동기가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다든지 어떤 이유 때문에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가 있다든지.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내용이 없이 그저 사이코 패스 성향을 가진 연쇄 살인범으로 범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의 범죄에 대해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허무혁의 아내인 수진 (이하나)의 역할입니다.

 

사실 수진은 이야기 전체에서 완전히 지워낸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인물입니다. 오히려 김작가와의 관계, 그에 따른 허무혁의 친자 확인 과정 등이 쓸데없이 이야기에 끼어들어 몰입을 방해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생각보다 비중있게 그녀를 이야기에 등장시켜 주의를 분산시킵니다.

 

억지로 해석하자면 허무혁이 친자 확인 관련 서류를 보지도 않고 불태워 버리는 부분은 ‘친자가 아닐지도 모르는’ 거북한 진실을 외면하고 ‘친자로 생각하고 살자’라는 인식을 얘기하고 싶었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이야기 맥락과는 하등 상관없는 내용일 뿐입니다.

 

만약 그런 것들이 이 영화에서 비중을 차지하려면 살인 사건과 연관이 있어야 하는데 감독은 이야기 속에 그런 점들을 빼 놓았습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가장 큰 모험은 코메디와 스릴러의 조합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건축학 개론]에서 ‘납득이’라는 인생 캐릭터를 얻은 조정석의 이미지는 코믹한 이미지가 강한 배우입니다. 이후 [나의 사랑, 나의 신부]라는 영화에서도 그랬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코믹한 이미지를 많이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그의 그런 이미지를 십분 발휘하여 코메디적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살인 사건 현장에서 1차 발표를 하려는 오반장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몰리면서 함께 우르르 쓰러지는 장면도 그렇고, 이후에 보여지는 허무혁의 모습도 진지하기 보다는 가볍고 코믹한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부터 갑자기 스릴러로 변합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연쇄 살인마를 등장시켜야 하고 다양한 대립 관계를 보여주면서 감독이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적응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았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가 카테고리는 나누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액션이면 액션, 스릴러면 스릴러, 코메디면 코메디, 로맨스면 로맨스라는 식이죠.

 

그런데 영화가 어느 한 가지 장르만 갖고 만들 수만은 없기 때문에 점점 카테고리를 세분화 시킵니다. 액션 스릴러, 심리 스럴러, 로맨틱 코메디, 액션 사극과 같이 말이죠.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바로 코메디와 스릴러 입니다.

 

가볍고 밝고 재미있어야 하는 코메디와 어둡고 무겁고 때로는 공포까지 있어야 하는 스릴러가 어울리기는 쉽지 않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큰 무리 없었다고 판단하는데 느닷없이 전환되는 이 과정이 불편했던 사람들이 꽤 많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며, 앞에서 살펴 본 이유들과 더해져 흥행이 저조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큰 틀을 만들어 내고 그 틀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노덕 감독의 역량은 충분히 발휘되었기에 다음 작품에서는 성공적인 흥행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기대와 함께 긴 글을 마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