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묻지마 살인’ 혹은 ‘묻지마 폭행’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그런 내용을 다룬 뉴스도 많아졌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2023년에 있었던 서현역 부차별 살인 사건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 간의 정 (情)을 우선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180도 다른 이런 사회 현상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지기도 했었고, 2016년에 일어났던 강남역 살인 사건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것과 함께 범인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 현장을 재현함에 있어 범인이 보였던 무심하고 태연한 행동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사건에 대해 알려진 것 중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은 범죄의 동기입니다.
밝혀진 바로는 이른바 최근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여성 혐오’라고 하는데 ‘여성 혐오’가 원인이었다면 피해자는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며 많은 여성들에게 상해를 입혔을 테니까요.
그리고 최근에는 사건 며칠 전 한 여성이 던진 담배꽁초 때문이었다는 뉴스도 나왔었는데요.
단순히 여성이 버린 담배꽁초가 자신의 신발에 떨어졌다고 끔찍한 '살인 사건'을 계획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에 그것도 명확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유영철,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 때 화두가 되었던 ‘사이코 패스’를 떠올렸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벌레를 죽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웬만한 강심장이라도 하기 어려운 일인 데다가 그 과정에서 느낌 심리적 갈등이나 고민이 전혀 없이 태연했다는 것이 사이코 패스의 성향과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묻지마 살인’의 범행자들은 사이코 패스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사이코 패스 (Psychopath)는 심리학 용어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부르는데, 최근에 등장한 소시오 패스 (Sociopath)와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아무래도 우리 말로는 똑같이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부르기 때문인 듯한데 그 차이점을 쉽게 설명해 볼까 합니다.
우선 사이코 패스는 그 기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이코 패스들의 뇌에서 전두엽이 15% 밖에 기능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 때문입니다.
뇌의 기능이란 걸 우리가 인위적으로 떨어트릴 수는 없으니 태어날 때부터 전두엽의 기능이 선천적으로 낮게 작동하는 사람들이 사이코 패스가 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죠.
우리의 뇌에서 전두엽은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데 이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면 사고가 유연해지지 못하고 대화의 주제가 한 가지에서 다른 것으로 넘어가는데 애를 먹게 되며, 특히 전두엽의 아래쪽이 손상되거나 해서 기능이 떨어지게 되면 충동 조절에 장애가 온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면, 소시오 패스는 성장과정에서의 환경적 요인이 더 많이 작용된다고 봅니다.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심하게 받는다든지 혹은 그와는 정반대로 학대나 차별 같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우울, 분노, 불안과 같은 감정이 생기고, 이러한 감정들과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더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학업 성적이 뛰어나거나 예쁜 짓을 많이 하는 형제에 비해 부모나 주변의 관심이 적다고 느껴지면 그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몰래 형제를 해코지하거나 일부러 그 형제가 나쁜 짓을 한 것처럼 상황을 만들어 반대로 나를 돋보이게 함으로써 관심을 유발하는 경우인데요,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소시오 패스적인 성향이 정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시오 패스는 자신의 감정을 잘 통제함과 동시에 타인의 감정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사이코 패스는 감정처리가 미숙하고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성향을 보이는 차이점도 존재합니다.
결과적으로 소시오 패스는 겉으로 봤을 때 굉장히 사교적이며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이코 패스의 경우에는 본인의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만큼 타인의 감정이나 고통에도 무감각한 성향을 보이게 됩니다.
또한 사이코 패스가 법적 개념, 즉 옳고 그릇된 것이라는 인식이 없는 반면 소시오 패스는 자신이 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나쁜 짓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 소시오 패스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히틀러나 스탈린이 꼽히고 있습니다.
즉 성공을 위해선,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그 어떤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미국의 어느 연구에서 큰 기업의 임원들의 경우 대부분이 소시오패스 성향을 갖고 있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소시오 패스 성향을 갖고 있을 수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나 할까요.
이런 사이코 패스를 제대로 다룬 우리 영화로는 [추격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 중 거의 최초라고 해도 될만큼 사이코 패스를 제대로 다룬 이 영화는 [곡성]으로 흥행 몰이를 했던 나홍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던 영화입니다.
약 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약 34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런 영화의 흥행보다는 개봉 이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며 두 주인공이 충무로의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영화입니다.
2008년에 개봉되어 하정우와 김윤석이라는 이름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추격자]는 출장 안마사의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내용으로, 무엇보다 하정우가 연기한 연쇄 살인범 지영민이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사이코 패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잔인함이나 잔혹한 표정 없이 그저 일상을 즐기는 표정으로 살인을 하는 모습,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가게 아줌마를 죽인 후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나와 가게에 숨어 있던 김미진 (서영희)를 잔인하게 죽이는 과정은 앞서 얘기 한 타인과의 공감, 즉 감정교류 능력이 전혀 없다시피 한 특징을 제대로 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공포심에 전혀 반응하지 않은 채 그냥 무차별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 것이죠.
또한 경찰서에서 신문을 받던 도중 여자 경찰에게 생리 중이냐며 독특한 냄새가 난다고 하는 부분은 현장 분위기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 특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이코 패스 역시 성장 과정에서의 환경적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 없이 외롭게 성장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화나 울분을 토로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지속적으로 내재되어 쌓여가다가 어느 한 순간 폭발한다고 보는 것인데요.
개인적으론,ㄴ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 어린 대화만으로도 사이코 패스 성향을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추격자]에서는 지영민이라는 인물의 성장과정이 나오지 않고 살인사건 자체에만 초점을 맞췄는데, 전체적인 이야기를 놓고 볼 때 가족도 없이 혼자 살면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행동을 통해 일반적인 가정에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오피스]는 이런 저의 생각- 사이코 패스도 주변의 관심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을 뒷받침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 김병국 (배성우) 과장은 어느 날 귀가해서 저녁을 먹은 후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이까지 온 가족을 느닷없이 살해하고는 종적을 감춥니다.
이른바 사이코 패스의 출현인 것이죠.
그리고 그 사실은 ‘일가족 살인사건’으로 뉴스를 타고 세상에 알려지며, 경찰은 그가 다니는 회사에 찾아와서 수사를 하게 되는데 불미스러운 일로 회사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로는 것을 싫어하는 경영진은 함께 일하던 팀원들의 입단속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진 김병국의 업무를 떠맡아 혼자 야근을 하던 정대리가 회사 내에서 시체로 발견되자 팀을 총괄하던 김 부장을 비롯해 홍대리까지 사라진 김병국을 범인으로 의심하는데요.
그가 일가족을 살해한 후 다시 회사로 복귀한 장면이 CCTV에 찍혔는데 다시 회사를 나간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담당하던 경찰 종훈 (박성웅)은 평소 김병국 과장이 다른 정대리, 홍대리 등 다른 직원들에게 왕따를 당해서인지 인턴 사원이던 이미례 (고아성)와 친하게 지낸 사실을 알아냅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인천쯤으로 보이는 먼 곳에서 허름한 월세 방에서 생활하는 그녀가 안쓰러워서였는지 특별히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또 이미례는 그런 김병국을 잘 따랐던 것이죠.
그리고 얼마 후 이 팀에 새로운 인턴 사원이 들어오게 되는데 집안도 좋고 해외 유학파라 같은 팀원들은 몇 달이나 함께 지냈던 이미례보다 그녀를 더 좋아하고 그녀가 정직원이 되기를 원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 내용을 이미례가 듣게 됩니다.
특히 인턴 사원으로서 근무 기간이 짧아 평가하기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인턴 사원을 본인 대신 정사원으로 발령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미례는 충격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후 김 부장이 살해되고 김 부장이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채 퇴사를 한 홍대리마저 살해되는데, 그 범인은 다름 아닌 이미례였던 것입니다.
순진해서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았던 어린 나이의 그녀가 살인마, 즉 사이코 패스로 돌변해서 모두를 죽이고 만 것입니다. 김병국은 일가족 살해 뒤 회사로 돌아와 자살을 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부터 죽은 것이죠.
이후 뒤이어 이미례가 보낸 가짜 문자 메시지를 받고 저녁 늦은 시간에 재출근을 한 염 사원과 이 사원 중 염 사원도 죽이고 이 사원마저 죽이려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하다 이 사원이 이미례가 들고 있던 칼을 뺏은 순간 경찰이 들이닥치고 모든 살인 사건의 범인은 이 사원이었던 걸로 결론이 내려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마무리됩니다.
여자였다는 점 그리고 인턴사원이었다는 점 때문에 ‘약자’로 인식된 점이 강하게 작용을 한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우리 주변의 누구나 사이코 패스가 되어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선 일가족을 살해한 김병국 과장 역시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사의 압박과 부하 직원들의 왕따 나아가 부장의 해고 통보로 인해 온전한 정신으로 집에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김 부장이 회의 시간 등에 팀원들에게 막말을 하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보는 제가 다 숨이 막히고 울화가 끓어오를 지경이었는데요.
특히 홍대리가 사표를 내는 과정에서 받은 김 부장의 질책과 스트레스는 도를 넘은 수준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인턴 사원 이미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가정 형편 때문에 회사에 아주 먼 곳에 작은 월세 방을 얻어 살지만 정직원이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 했음에도 자신보다 배경이 더 좋은 뒤늦게 들어온 인턴 사원이 정직원으로 발령이 되려 하자, 그만 사이코 패스가 되어 팀원들을 한 명씩 죽이게 된 것입니다.
물론 팀원들의 보이지 않는 왕따가 그녀의 상실감에 부채질을 한 것이고요.
물론 이 영화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우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김 과장은 영화 초반부에 죽었는데 어떻게 김대리가 혼자 야근할 때 등장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김대리와 대화까지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김 부장이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홧김에 사표를 내고 퇴사한 홍대리가 이미례의 가짜 문자를 받고 회사로 돌아왔을 때건물 앞에서 사무실을 쳐다 본 홍대리의 시선에는 분명히 남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홍대리를 죽이는 사람도 분명히 정장에 남자 정장화를 입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홍대리를 죽이고 등장한 사람이 하이힐을 신은 이미례였다는 점을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어떤 분들은 이미례에 김 과장이 빙의한 것처럼 다른 등장인물들에 보여진 게 아니냐고 하는데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또한 이미례와 김 과장이 메신저로 대화를 하는 부분도 마찬가지 입니다.이미 죽은 사람과 메신저로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 때문인지-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이코 패스를 잘 다룬 영화임에도 [오피스]는 약 44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34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데 그쳤습니다.
어찌 보면 회사라는 조직은 우리가 가정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말뿐인 하루 8시간 근무를 넘어 자주 반복되는 야근과 쏟아지는 업무 때문에 최소 10시간 이상은 있어야 하는 곳이 회사인 것이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곳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업무 스트레스와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승진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언제나 어깨를 짓누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일은 못하면서 엄청 뻔뻔한 부하직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죠.
그럴수록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배려하면서 서로를 위로해야 함에도 몰래 편을 나누어 뒷담화를 하면서 누군가를 왕따 시키곤 합니다.
자신들 역시도 누군가에 의해 왕따가 되는지도 모르면서 보이지 않게 트루먼을 만들며 상처를 줍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죠.
그리고 이런 스트레스와 왕따를 당하면서 느끼는 소외감 등을 꾹꾹 누르고 있다가 폭발하게 되면 영화 [오피스]처럼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스스로가 사이코 패스를 양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회사를 가게 되면 주변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상사에게, 부하직원에게, 동료에게 말 한마디로라도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요?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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