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모임에서 어느 선배가 했던 얘기가 있었습니다.
“내가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불혹이고 미국 식으로 얘기하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됐는데…”
그 뒤 얘기는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남자에게 ‘마흔’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 같은 것들을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 저는 나에게도 저 나이가 올까, 그 나이가 되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많은 것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들을 했던 것도
얼핏 기억이 납니다.
가끔씩 신입사원이나 인턴사원 면접에 면접관으로 참석하게 되면 꼭 물어 보는 얘기 혹은 후배들이 상담을 해 올 때 해 주는 얘기가
“몇 년 후의 네 모습을 그려봐”라는 것인데요, 정작 그러는 저는 몇 년 후 저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저 스스로도 궁금해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브루클린에서 함께 자라온 빌리 (마이클 더글라스), 패디 (로버트 드 니로), 아치 (모건 프리먼), 샘 (케빈 클라인) 그리고 소피는
그들이 다양한 삶을 살다가 그들의 나이 일흔이 되어 다시 한 번 뭉칩니다.
바로 빌리의 총각파티를 명분으로 환락과 유흥의 도시 라스베가스에서 말이지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모두 다 정년 은퇴를 했는데,
그 와중에 아치는 심장 발작을 일으킨 전력이 있고,
패디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사랑하는 아내 소피를 여읜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한 채 집에만 틀어 박혀 있고,
샘은 아내가 참여하는 따분한 모임을 따라다니며 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다만 빌리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며 바쁘게 사느라 결혼을 하지 못하고 살아오다 일흔이 되어서야 30대 초반의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생소했던,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빌리의 총각파티를 하러 오랜만에 모이게 되는데요.
이 영화는 이처럼 일흔이 된 ‘할배’들의 화려한 (?) 총각 파티와 그 안에 숨겨진 서로간의 갈등,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 영화에서도 등장인물 간의 대립 혹은 갈등 구조가 있는데 바로 ‘빌리 vs 패디’입니다.
패디의 아내, 즉 어려서부터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자란 소피가 죽었을 때 빌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채 화환 하나만 보냈고,
그 때문에 패디는 죽마고우인 빌리에게 엄청 속이 상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빌리가 그간 여러 차례 사과를 했음에도 총각 파티에 따라와서도 계속 어깃장을 놓으며 화를 내기도 하고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빌리에게는 소피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소피가 사실은 자신을 좋아했지만 친구인 패디가 소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소피에게 패디와의 관계를 권했던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삼각관계인 것이죠.
물론 패디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빌리 입장에서는 장례식에 참석하기에 마음이 너무 복잡미묘했던 것입니다.
패디와 빌리의 갈등은 총각 파티에서 한 번 더 등장합니다.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첫 날, 네 명은 우연히 한 재즈 바에서 노래를 하는 다이애나 (메리 스틴버겐)와 만나게 됩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이끌려 바로 온 그들은 그녀와 통성명을 하고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는데요.
여기서도 삼각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바로 패디와 빌리 두 사람 다 다이애나를 좋아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오래 전 소피처럼 다이애나는 두 사람 중에서 빌리를 더 좋아하지만 빌리는 이제 막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패디를 위해
다이애나에게 패디와 연애할 것을 권유합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도 네 사람은 빌리의 총각 파티를 화려하고 신나게 즐깁니다.
아치가 카지노에서 블랙 잭으로 10만 달러를 따자 카지노에서는 그들에게 초특급 스위트 룸을 제공하고
이 네 명은 그 방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여 신나게 즐기는데요 이 과정이 유머와 위트가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내 미소를 짓게 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의미의 미소를 지었을 텐데요,
그 의미는 ‘나이가 일흔이어도 남자는 남자고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시종일관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는 그들의 행동은 가슴을 훈훈하게 해준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 훈훈함의 원인은 화려하고 신나는 총각파티에서 네 명이 각각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무려 일흔의 나이에 말이지요.
당장 내일 결혼식을 앞둔 빌리는 마흔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젊은 여자가 아닌 다이애나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샘은 자신과의 잠자리를 위해 돌격해 오는 젊은 아가씨를 뿌리치며 아내와 함께 산다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며
-‘언제나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은 아내에게 얘기를 해왔지만 당신과 함께 한 잠자리는 아내에게 얘기를 할 수가 없으니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안 될 것 같다’는 얘기와 함께 결정적인 순간에 아가씨를 돌려 세웁니다-,
지난 번 심장발작으로 아들에게 과중한 보호를 받으며 아이 취급을 받던 아치는 ‘나는 성인이며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즐겁게 살 거다’라는 얘기와 함께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패디는 빌리와 다이애나의 관계를 알게 된 후 자신을 늘 흠모해오던 옆 집 할머니와 연애를 시작해
소피의 그림자를 조금씩 지워가며 인생 2막을 또 다른 사랑의 감정으로 충만하게 채워가게 됩니다.
물론 이 영화에도 옥의 티는 있습니다.
첫 째, 총각 파티 내내 어깃장을 놓으며 분위기를 흐리던 패디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분위기를 바꿔 흥겨워 졌다는 점,
두 번째로 ‘빌리-소피-패디’, ‘빌리-다이애나-패디’라는 두 번의 삼각관계를 알고도 패디의 빌리에 대한 감정이 이야기 초반의 감정보다 덜 나쁘다는 점,
마지막으로 70살 노인인 샘과 원나잇 하려던 젊은 아가씨가 샘의 얘기를 듣고 원나잇을 못한 채 자리를 피하면서
‘나중에 당신과 같은 남편을 만났으면 좋겠어요’라고 얘기한 점인데요.
특히 마지막 대사는 없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혼 전에 이 남자 저 남자 할 것없이 원 나잇을 하면서 몸을 굴리는 여자가 바라는 것이
자신만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남편을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대사는 뭐랄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순조롭게 잘 이어지는 감정 몰입이 한 순간에 깨져 버렸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랬습니다.
이런 저런 긴 얘기를 했지만 이제 이 영화를 요약해서 얘기하자면
연기력이라면 둘 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리고 그들을 한 곳에 모아 논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명배우들인
로버트 드 니로, 마이클 더글라스, 모건 프리먼, 케빈 클라인의 불꽃 튀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일흔의 나이에도 함께 뭉쳐서 즐겁게 신나게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몇 십 년 후, 내가 일흔 살이 되었을 때 그들처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전화기를 들어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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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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