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 하고도 7개월 전에- 역시나 시간이란 놈은 꽤나 빨리 우리 곁을 스치듯이 지나가는 군요-
[물랑루즈]라는 영화의 감상문을 쓸 때 이런 얘기를 적어 놓았습니다.
‘영화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듯 하다.
주위에서 정말 괜찮다, 꼭 봐라, 안 보면 후회한다 등의 얘기로 ‘한 번 볼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것이 생각으로만 끝나는.
그렇다고 결코 아쉬움이나 미련 따위는 오래 전부터 증발해 버린.
또 한 부류는 특별한 추천이나 권유도 없었고, 그렇다고 흥행을 엄청나게 했던 영화는 아니지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녀서
꼭 봐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영화.’
그런데 여기에 하나를 더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명작이라고 손꼽히는 영화, 그래서 안 보면 왠지 미개인이 된 듯할 정도로 모두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영화.
그래서 결국엔 보고야 말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만한 영화였는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인의 향기]가 그랬고 [대부 1]이 그랬으며 [델마와 루이스]가 저에겐 그랬습니다.
이 영화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은 사람도 있고, 그래서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을 것이며 영화에 공감하며 엄지 손가락 두 개를 치켜 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 혹은 대상에 70억명의 인구가 모두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인지라 저에겐 그냥 그런 영화들이었고
지금부터 얘기할 [시네마 천국]역시도 좋은 영화이긴 하나 요란스럽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만한 영화인가에는 갸우뚱거리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나이든 영화 기사 알프레도와 꼬마 토토 (살바토레)의 세대를 뛰어 넘은 우정을 다룬 영화라든가
살바토레와 헬레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이야기라든가 영화에 죽고 못사는 남자의 얘기를 다룬 영화가 아닌,
영화 감독으로 성공한 살바토레의 추억 여행을 담은 영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사람이란 어느 정도의 시점 또는 나이가 되면 추억을 되짚기 시작하고 그 추억을 자양분 삼아 살아가게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사람에게 추억이 없다면 자기가 지나온 시간을 반추해 볼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추억이란 사람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영화 역시도 추억 되짚기로 시작해 추억 되짚기로 막을 내립니다.
로마에 살고 있는 성공한 영화 감독 살바토레는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알프레도의 부음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이 영화는 시작합니다.
약 30년 전 고향 Giancaldo를 떠난 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살바토레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끼며 알프레도와 고향에서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린 시절, 아니 그것보다는 꼬마시절부터 영화밖에 모르고 영화에 거의 미쳐있다시피 한 토토는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극장의
한 명 밖에 없는 영사 기사 알프레도와 친구 (?)가 됩니다.
얼르고 달래며 쫓아내기까지 했지만 영화를 사랑한, 아니 어쩌면 영사기를 사랑했는지도 모를 토토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즈막한 나이에 초등학교 졸업 시험을 치르게 된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컨닝을 도와줄 것을 부탁했고
토토는 그 대가로 영사실에 자유롭게 출입할 권리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극장에 불이 나서 알프레도는 시력을 잃게 되고, 당시에는 최신식 극장이 다시 세워져 영사 기사로 일하며 첫 사랑 헬레나를 만나고,
병무청의 실수로 군대에 입대해서는 1년이 넘게 군복무를 하다 다시 돌아 온 고향에서 알프레도의 조언에 따라
큰 도시인 로마로 떠나 성공을 향해 뒤돌아 보지 않고 일하게 된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진행됩니다.
그리고는 알프레도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몇 십년 만에 고향에 내려가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고
이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중년이 되어 버린 헬레나와 재회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누구나 갖고 있을 어린 시절과 첫 사랑과 우정이 담긴 추억을 되 밟아가는 영화입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핵심 매개체가 영화라는 것, 그리고 그 우정이 세대를 뛰어 넘은 우정이라는 것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았는데, 바로 오래 전 로마 남부의 시대상을 알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예전 시대상을 다룬 영화를 흥미롭게 보는 이유인데요.
가장 먼저 요즘에는 아동학대라고 불리울 정도의 폭력이 학교 선생님이나 엄마에 의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구구단을 못 외웠다고 몽둥이로 여러 차례 맞거나 머리를 칠판에 여러 번 부딪히게 되는가 하면,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마을 광장 한복판에서 구타 수준의 손찌검을 엄마한테 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예전 이탈리아 남부의 소도시에서는 저런 모습이 일상적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이 영화의 사전 검열을 담당하는 모습도 흥미로웠습니다.
아무래도 시칠리아라는 남부 작은 섬이었기 때문에 사람과 제도 그리고 여러가지 시스템이 부족하기도 했을 테고 미비하기도 했을 테지만
영화의 사전 심의를 신부님이 하면서 키스 장면 등을 잘라내는 모습은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뒤에 얘기하겠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위한 엄청난 복선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극장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같이 모여 동시에 같은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보는 동안 시끄럽게 떠들거나 담배를 피기도 하고
침을 뱉기도 하는 것과 같은 장면들도 이채로웠습니다.
어린이 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어른들과 초등학생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모습이기에
예전 이태리의 영화 관람 문화가- 정확히는 극장 외에는 딱히 즐길 거리가 없었던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의 문화가-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두 부분입니다.
첫 번째는 오래 전 신식 영화관으로 지어졌던, 그리고 살바토레의 수 많은 추억이 담긴 ‘시네마 천국’이 폭파되는 장면입니다.
손님이 없어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건물은 공영 주차장을 만들기 위한 명분으로 폭파되는 것인데요
극장이 폭파되는 것은 어쩌면 주인공 살바토레의 모든 추억이 사라지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하기도 했습니다.
그 곳에서 있었던 알프레도와의 추억, 첫사랑 헬레나를 만나서 행복하기 했고 가슴 아프기도 했던 추억들이 곳곳에 묻어 있는 장소가,
다시 말하면 이 영화의 뿌리가 되는 장소가 현실적인 이유로 사라지는 장면은 꽤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중학교 시절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영화를 보았던, 고등학교 시절 [지존무상]과 [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를 보았던
한국 영화의 상징과도 같던 극장이자 종로3가의 터줏대감 ‘단성사’가 CJ나 롯데 같은 대기업 자본에 의한 멀티플렉스의 힘에 밀려 사라진 모습을 보며
추억의 한 부분이 잘려나간 기분을 가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 이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데요, 바로 알프레도가 남긴 오래 전 영화 필름을 살바토레가 혼자 극장에 앉아서 보는 장면입니다.
그 필름은 오래 전 신부님이 영화의 사전검열을 할 때 편집됐던 키스 장면들이었는데요 꼬마시절 영사실에 드나들면서
알프레도 몰래 잘려나간 필름 조각을 모으는 것을 좋아했던 살바토레를 기억한 알프레도는 그를 기억하며
그 필름 조각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긴 키스 모음집 (?)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장면이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추억이 담긴 장소였던 극장은 사라졌지만 이 필름으로 인해서 추억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 되기 때문입니다.
살바토레의 추억은 Giancaldo라는 시골 마을의 작은 극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이 의미한다고 할까요?
1990년 아카데미에서 외국어 영화상 수상, 47회 골든 글러브 최우수 외국영화작품상 수상, 유럽영화제 남우주연상 및 심사위원 특별대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1988년 제작되었지만 당시에는 이탈리아에 영화관 수가 적었던데다 할리우드 영화가 장악하고 있어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1989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고서야 간신히 개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더 불어 이 영화의 주 무대인 Giancaldo라는 마을은 감독의 고향인 시칠리아 섬의 Palermo 근처의 Bogheria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상상 속의 마을이라고 합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사람이란 추억이란 것이 없다면 어쩌면 살아가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추억이란 지나온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며 그 시간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감정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중년의 살바토레는 결국 어쩌면 이제는 나이가 들어 추억을 되새김하며 살아가게 된 이 시대 모든 중년들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닌가,
그래서 이 영화가 정리하자면 엄지손가락 두 개를 치켜들며 요란스럽게 칭찬할 정도의 세기의 명작은 아니지만 굉장히 의미있고 아름다운 영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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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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