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와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을 어디까지 차별 없이 인정할 수 있을까?
단순히 피부색과 같은 겉모습이 아니라 1990년 판 영화 [토탈리콜]에 등장하는 화성에 거주하는 돌연변이 혹은 기형으로 태어난 사람들과
처음부터 아무 허물없이 쉽게 친해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우리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인식해서 그들을 차별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3도 화상의 이지선 씨, [오체 불만족]의 오토다케 히로타다 씨, 팔 다리가 없는 닉 부이치치 씨가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당당한 이 세상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어려움을 극복’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조금은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과 선입견과 싸워야 했으니까.
곤은 아가미를 갖고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지느러미와 함께 비늘 같은 피부도 갖게 되었다.
왜 그가 그런 모습을 갖고 태어났는지, 무엇 때문에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곤이 우리와 ‘다른 모습’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그의 아버지는 호수에 빠져 자살했기 때문이다.
함께 죽기 위해 물에 빠졌지만 곤은 살아 남았다.
태어날 때부터 남고 다르게 갖고 있었던 아가미 덕분에 살아 남았다.
하지만 그 때부터 그 아가미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모습 때문에 숨어 지내야 했다.
뭍으로 올라와 쓰러져 있는 곤을 발견한 강하의 외할아버지와 강하와 함께.
그렇다. 우리는 뼛속까지 ‘평균지형적’인 성향을 가진 집단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평균과 다른 것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숨겨야 했고 숨어야 했다.
손가락질과 뒤에서 무수하게 생성되는 험담들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세 사람은 수 년을 함께 살아가다 헤어진다.
느닷없이 찾아 온 강하 엄마 이녕의 느닷없는 죽음 때문에.
처녀시절 연예인 시켜주겠다는 기획사 사장을 따라 집을 나섰다가 강하를 낳고는 아버지 (강하의 외할아버지)에게 맡겨 놓고
단 한 번도 들여다 본적 없이 연예계 주변만 전전하다 결국 룸싸롱 마담으로 지내다 마약 중독과 알코올 중독인 상태로 돌아온 이녕은
곤의 기억 속에 유일하게 곤에게 ‘예쁘다’라고 해 준 사람이다.
햇빛에 반짝이며 반사되는 곤의 지느러미와 비늘 같은 피부를 보며 강하의 마약 중독의 그녀는 예쁘다라고 한 것이다.
어쩌면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 평생을 감춰 지내야만 했던,
어쩌면 앞으로도 평생을 숨어 지내야 할지도 모르는 원인인 남들과 다른 점을 ‘예쁘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슬프다.
정상적이지 않은 정신상태에서만이 우리와 다른 것을 예쁘다라고 인식할 수 있는 현실이.
하지만 약을 찾아내라며 그녀의 마약을 몰래 버린 곤의 목을 조르다 엉겁결에 곤에게 밀린 그녀는 쓰러지며 죽음을 맞이하고
그 길로 강하의 도움을 받으며 곤은 그 곳을 떠난다.
특별한 것이라곤 전혀 없는 어느 강자락의 MT촌.
대학생들의 MT 철에나 손님을 있을 법한 이 곳의 수퍼 겸 숙박업을 하는 곳에 자리 잡은 곤에게 어느 날 해류가 찾아 온다.
책의 도입부, 얼떨결에 한강을 빠진 해류를 구해준 곤. 그가 그 시점에 왜 한강에 있었는지, 그 곳에서 왜 헤엄을 치고 다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해류는 한강에 빠졌고 곤은 그녀를 구해주었고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으며 강하는 그 글을 보고 해류에게 연락을 취해
강하와 해류는 만나서 곤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날 밤, 갑자기 쏟아진 폭우, 그로 인한 산사태와 홍수 때문에 강하와 그의 외할아버지는 죽고 만다. 그
리고 약속한 적은 없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책임감으로 곤을 만나러 왔다는 해류.
만약 그날 폭우가 없었더라면, 그래서 강하와 그의 외할아버지가 죽지 않았더라면 해류는 원래 계획대로 외국으로 갔을 것이며
그랬다면 해류는 굳이 곤을 찾아올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강하와 그의 외할아버지의 죽임 해류와 곤을 연결 시켜 준 것.
이처럼 곤을 둘러 싼 인연에는 누군가의 죽음이 존재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강하와의 인연이 시작됐고, 이녕 (강하 엄마)의 죽음으로 강하와 이별하였으며, 강하의 죽음으로 해류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남들과 같지 않은, 혹은 평균적이 못한 상태의 사람은 죽음이라는 저주 아닌 저주와 관계 있다는 것을 작가는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그것과는 정 반대일까?
작가는 마지막에 이런 얘기를 한다.
[이 세상에 혼자만의 힘으로 호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이에요. (중략).
누구나 아마기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곁에 두고 살아야 하며 (중략). 그와 우리는 다르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동소체와도 같은 생물들이에요. 완전히 같은 원소로 이루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다이아몬드와 흑연의 관계처럼.]
아가미란 물속에서 생존을 위한 필수도구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이 세상, 이삭막하고 건조하며 팍팍한 세상에서 생존 하기 위한 필수적은 요소는
곤의 아가미를 대신할 수 있는 누군가, 즉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가미는 물에서 존재했던 수억년 전의 모습에서 진화할 대로 진화한 현재의 인간들에겐 쓸모 없는 존재다.
오히려 남들과 다르게 보임으로써 차별 받아야 하는, 감춰야 하는, 숨어 지내야 하는 그런 불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서는 그들과 다르지 않아야만,
그래서 이 삭막한 세상을 버텨낼 수 있는 존재를 가질 수 있는 서글픈 현실을 곤이 대변하는지도 모르겠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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