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동경을 방문했을 때 야경을 찍기 위해 밤에 신주쿠를 가 본적이 있다.
여행 안내서에는 ‘가부키죠’가 신주쿠의 중심가라며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써 있길래 지도를 보며 아무 의심 없이 찾아갔다.
가부키조를 직접 보고 든 생각은 ‘신주쿠의 중심’이라기 보다는 그냥 환락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여성 전용 Bar라든지, 각종 술집에 룸살롱과 가라오케 같은 것들이 종합적으로 모여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머리 모양을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이 요란하게 매만진 다수의 삐끼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을 보며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어
그들하고는 일부러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환락가 혹은 유흥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으니 바로 조직폭력배 (이하 조폭)이며 일본말로는 야쿠자다.
그리고 소설 [쥰페이, 다시 생각해!]는 바로 가부키조의 야구자 이야기다.
사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자신이 뭔가 특별한 존재이길 희망하거나 그런 존재임을 남에게 알리고 싶어한다.
그런 심리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내거나 운동을 잘해서 인기를 얻고,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폭주족이 되거나 일진이 되어 남을 괴롭히는 쪽이 된다.
불행히도 쥰페이는 그런 심리가 부정적으로 작용하여 가출을 일삼기도 하고 폭주를 즐기기도 하는 이른바 불량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부모님의 이혼과 보육원에 자신을 맡겨 놓고는 남자 바꿔가며 연애하기에 바빠 들여다 보지도 않는
엄마가 존재하는 불우한 가정 환경의 영향이 제일 컸다.
성인이 된 쥰페이는 동경으로 올라와 신주쿠에서 놀다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그 싸움에서 우연히 알게 된
로쿠메이회라는 야쿠자 단체의 산하조직인 하야다 파의 두 번째 보스인 키타지마의 이른바 ‘똘마니’로 들어가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하야다 파의 최고 보스로부터 상대 야쿠자의 보스를 총으로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쥰페이는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3일이라는 시간을 얻게 된다.
죽여야 하는 인물도 확인하고 총도 구입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살인을 하면 교도소에 가서 수 년 간을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전에 두둑한 용돈과 함께 휴가를 주는 야쿠자들만의 관습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바로 그 3일의 휴가 동안 쥰페이에게 벌어진 내용을 담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뭔지 모를 가슴 답답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딱히 재미없었던 것도 아니고 지루하지도 않았건만 뭔가 많이 아쉽고 답답한 느낌이 있어서 다른 분들의 독후감을 살펴 보다가
예스 24에서 어떤 분이 남긴 말에 정확하게 공감했다.
‘병맛 웹툰’.
맞다, 딱 그 수준인 거다.
사실 모든 영화나 소설이, 그러니까 모든 컨텐츠가 그 어떤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
영화 [익스펜더블]을 보고 그저 시원함을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며 추리를 하면 그만이다.
신나는 음악은 흥이 나면 되고 슬픈 노래는 감정에 빠지면 된다.
그런데 이 책 [쥰페이, 다시 생각해]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야쿠자의 세상을 제대로 그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하게 유머로 뒤 덮은 것도 아니며 사람의 심리를 적극적으로 묘사한 것도 아니다.
그냥 야쿠자 똘마니가 휴가로 받은 3일 동안에 벌어지는 일들을 이래저래 엮어 놓은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스마트 폰을 활용해서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확인하는 과정들은 이야기 전개에 그다지 불필요함에도 꽤나 비중 있게 다뤄져서 안타깝다.
어쩌면 작가가 ‘오쿠다 히데오’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라부 시리즈 (인더풀, 공중그네, 면장선거)’와 [한밤중에 행진] 그리고 단편집 [오, 해피데이] 등을 통해서 만났던
그의 짜임새 있는 이야기 전개와 충실한 내용 구성이 이 책 [쥰페이, 다시 생각해]에서는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남녀 관계도, 야쿠자 얘기도, 사람의 심리도, 인간 관계도, 거사를 앞둔 젊은 남자의 심리도. 그 어느 것도 밀도 있게 그려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돈 주고 사보기는 아깝고 공짜로 보여준다면 심심풀이나 시간 때우기로 볼만한 수준이랄까.
혹자는 오쿠다 히데오가 정점을 찍고 내려온 것아 아닌가라는 얘기를 했다.
오래 전 출간된 책도 아니고 작년에 출간된 책의 내용이 이 정도라면 한 물 간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인데 사실 전혀 틀린 말은 아닌듯하다.
전작들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워낙 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실력이 좋기 때문에 다시 작정하고 쓴다면 예전만큼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어서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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