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눈을 살포시 떠 화려하게 방 안을 수 놓은 햇빛 사이로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기지개 한 번 힘껏 켜고 일어나 아침을 주섬주섬 챙겨 먹고는 TV를 보는데
창 문 밖으로 펼쳐지는 파란 하늘이 집에만 있을 수는 없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아무 예정도 없이 카메라 하나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2011년 가을의 끝자락을 한 번 담아볼까 하고요.
얼마 전 일 때문에 송파역 근처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보고는 감탄을 했던 은행나무 메타세콰이어 길로 우선 향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메타세콰이어 길은 아니지만 줄지어 선 은행나무 터널 사이로 뿌려지는 노란색은
마냥 황홀한 느낌을 줍니다.
* 송파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왼 쪽에 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를 왼 쪽에 두고 커브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노란 은행나무 길이 건물들과 차도 사이로 길게 펼쳐진다. 가을 끝자락의 햇살에 물들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오란 세상이 펼쳐진다.
벌써 1년이 지났군요.
나무들 사이로 소복히 떨어진 은행잎들을 살짝 밟아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1년 전 그 때와 장소는 다르지만 기억은 아직도 그 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만
그래도 그 때의 기억으로 아직도 가슴이 뛰는 건
그것이 기억이 아닌 추억이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로 1년, 그리고 또 1년. 그렇게 지금처럼 어찌할 수 없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가슴 뛸 그런 추억 말입니다.
노란 세상을 총총히 걸어가는 저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당신, 여전히 외로운가요?
가을은 그리고 노란색은 벤치 위에도 내려 앉았습니다.
매일 아침 옷을 갈아 입는 중에도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는 중에도
누군가와 열변을 토하며 일하는 중에도
가을은 그렇게 우리 주변에 내려 앉았고
이제 겨울에게 그 자리를 내주려고 합니다.
당신, 여전히 안녕하신지요?
뉴욕의 가을도 동경의 가을도 빨간색과 노란색이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런던의 가을도 그리고 파리의 가을도 같은 이처럼 아름다울까요?
또 한 번의 가을이 올 때는 함께 있겠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런던과 파리의 가을. 함께 즐기러 가지 않겠습니까?
2011년의 노란 색, 이제 작별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1년 후 이맘 때쯤 다시 만날 노란 색은 오늘의 노란 색과 는 다른 느낌이겠지요.
아니, 어쩌면 그 때도 같은 느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과 올해의 노란색이 당신이라는 매게체로 인해 같은 느낌을 주었던 것처럼요.
송파역으로 가는 길에 석촌 호수가 있음을 미리 확인해 두었던터러
석촌 호수의 가을은 어떨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큰 호수를 둘러 싸고 있는 노란 색과 빨간 색의 조화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하니
눈 감을 수 밖에]
정지용 시인의 '호수'라는 시인데요, 보고 싶은 마음을 이처럼 간결하지만 가득 담아 낸 이 시는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있는 시라는 생각입니다.
석촌 호수의 가을입니다. 참 멋있죠?
멋있는 가을만큼이나 멋있는 사람들이 호수가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었습니다.
나란히 앉아서 대화하는 초로의 부부,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예쁜 아가씨,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까지.
그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마지막 가을을 아름답게 수 놓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얼 하고 있었는지요.
* 석촌 호수에 있는 오리. 뭍으로 올라와 꽥꽥 소리를 지르고 있다.
지금부터는 아무 말없이 그냥 가을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석촌 호수의 다양한 가을 모습입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이리저리 카메라를 움직이며 다양한 가을을 담아내는 내내
보고 싶었습니다.
잊는다고 잊혀지는 게 아닌데
왜 그토록 잊으려 노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난 아직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추억에도 이처럼 나무가 있다면 내 추억은 세상에서 제일 높은 나무가 필요할 것입니다.
2011년 마지막 가을을 석촌호수에서.
Good bye-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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