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이란 것이 있다.
영화 ‘백 투더 퓨처’에서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왔다갔다하는 여행인데 내가 살지 않았던 시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미리 볼 수 있다는 점이 우리가 언제나 시간 여행을 꿈꾸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 중에서 특히나 시간여행이 매력적인 이유는 과거나 미래의 ‘나’를 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특정 인물의 과거나 미래를 몰래 엿볼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내가 아는 사람-그 사람이 친구건 연예인이건 또는 정치인이건-의 전혀 다른 모습을 혼자만 몰래 볼 수 있다는 것은 짜릿한 쾌감을 한아름 선사하고도 남는 일인듯하다.
전경린이었다. 아니 사실은 전경린이 아니었다. 내가 이 책의 저자가 전경린이라는 것을 안 것은 읽고 난 몇 년 후였다. 만약 이 책의 저자가 전경린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난 이 책을 구매하지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녀의 책 중에 유일하게 읽은 책이자 그녀의 책 중 가장 히트쳤다고 할만한 책 중 하나인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에 유독 실망했기 때문이다. 마치 한 겨울에 지독하게 앓은 독감처럼 말이다. 뭐가 뭔지도 모를 말장난과 기혼자들의 바람기가 합쳐져 탄생한 그저 그럼 작품 때문에 말이다.
그런 그녀가 달라져서 돌아왔다.
영화로 그리고 드라마로 인기몰이를 한 황진이가 그녀의 글 속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자못 궁금해졌다.
물론 그녀의 많은 작품을 읽어보질 않아서 글 쓰는 형식이라든지 내용 구성이라든지 그런 것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역사를 가로지르는 전국구 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책이기 때문인지, 혹은 그녀의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책으로의 흡입력은 훨씬 좋아졌다. 다만 그것이 주인공의 위력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재미있다. 내용 자체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황진이의 탄생 배경에서부터 왜 기생이 되었는지, 그리고
사실 역사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팩션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력이냐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나름대로 재미를 위한 장치를 교묘하게 여기저기 배치하고 읽는 사람은 그런 것들을 파악하기 위한 심리전이 벌어지게 되는데, 나 같은 경우는 크게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역사 ‘소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
사실 이 책에 그려진 황진이 출생과 성장과정, 그리고 기생이 되는 과정을 보면 대한민국 막장 드라마 저리 가라는 수준이다. 쉽게 얘기하면 그토록 기구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기구한 운명 끝에 선택한 기생이라는 직업으로 이름을 천하에 알린 황진이. 어쩌면 웬만한 남자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황진이가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에 등장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아니 21세기에 태어났다면, 더 정확히 말하면 20세기 말에 태어나 21세기를 관통하는 시점에 성장기를 맞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효리 버금가는 여자 스타가 되어 있지는 않을까? 사람을 호리거나 유혹하는 것은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나야 하는 것이니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유혹하는 황진이는 최고의 스타가 되지는 않았을까 혼자 가만히 생각해본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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