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할 일이 있었다. 왜 오랜만인지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지니까 그 것은 이쯤 해두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책장을 정리하던 중 문득 눈에 들어온 책 한 권이 있었으니 바로 ‘아홉 살 인생’이라는 책이었다. 읽은 지 몇 년이 지나긴 했지만 내용도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을뿐더러 작가인 ‘
그런데 이게 웬일.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후의 내 심장은, 내 머리 속은, 내 혀는 ‘유레카’를 외치고 그에 걸맞는 흥분 상태의 심장 박동과 지극히 단순해지는 뇌 구조 상태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외국 것이 좋고, 그에 비해 우리 것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자동차에서 그렇고, 주방용품에서 그렇고, 카메라가 그렇고, MP3P가 그렇다.
그런 현상은 책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나 스스로도 최고의 성장소설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생각을 수년 째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영국과 유럽에서 대 히트를 쳤다는 ‘리버보이’도 지루한 하품만 나올 뿐이었고, 한국에서는 어설픈 문학 작가들만 즐비해서 제대로 된 성장 소설이 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 내 책꽂이에 한국 최고의 성장 소설이 꽂혀 있었다.
9살 주인공 나는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부모님을 따라 서울 달동네로 이사 와서 친구를 사귀고, 학교 생활을 하고, 그리고 그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없이 사는 사람들의 동네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이 어릴 때의 아주 어릴 때의 작은 기억들을 건드리는 것 같아 기분이 뭉게뭉게 좋아지곤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의 아홉 살은 어떠했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막 전학을 해온 때였다. 진입로가 흡사 요즘의 대학만큼 길고 아름다웠던 국민학교 2학년 시절. 안경에 빗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무언가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동네 형들과 콩서리를 하고, 정월 대보름이면 쥐불놀이도 하던-청담동 한복판에서 말이다!-그런 시절이 떠오른다.
그래, 이런 점들 때문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보다 훨씬 내 얘기 같고 내 추억 같은 생각이 들었으며, 그래서 난 주저 없이 이 책을 대한민국 최고의 성장 소설이고 부르짖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또는 책을 읽고 난 후 자연스럽게 내 기억의 시계를 돌려볼 수 있어서 말이다.
앞으로 가끔씩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 중에 내용이 가물가물한 책은 다시 한 번 꺼내어 읽어봐야겠다.
이처럼 진흙 속의 진주를 찾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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