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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어디까지 가 봤니?

경복궁 (3)

by Robin-Kim 2009.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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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경회루를 보고나서 자하문 맞은 편의 열린 문을 통해 이동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 경복궁을 가려던 이유는 오로지 경회루와 비원 때문이어서

자세한 배치도나 그 의미를 미리 조사해보지 가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각 건물마다 조금 더 의미있는 사진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 발길을 돌려 옆 건물 (강녕전)으로 나가려면 대략 3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 길이 멀어 보이지도, 가까워 보이지도 않는다.

   멀어 보이지 않음은 그 곳을 보고 싶은 열망과 기대로 가득차 있기 때문인데 가까워보이지 않음은 무슨

   이유일까. 웬지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이 휑하니 비어 보여서일까.

  

 * 하나의 문을 지나고 두 개의 문이 남았을 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아직 두 개의 문이 더 남았구나라고 생각해야 할까.

 

 * 저 너머에 사람이 있구나. 훔쳐 본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 곳에서 벌어질 일을,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볼 수 있다는 호기심, 그것 때문일까. 결국엔 발을 내 딛고 만다.

 

 * 발길을 내 딛은 곳에서 돌아온 길을 바라본다. 아, 내가 저 곳을 통과해 왔구나.

   사람은 도저히 지나온 길을 돌아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일까.

 

 * 마지막 문을 지났다. 3개의 문을 통과해 드디어 원하는 곳에 도착했다.

   후회하지 않기. 그것이 최대의 목표다.

 

 * 그렇게 문을 통과하고 나면 나타나는 것은 왕의 침실 이었다는 강녕전.

 

 * 문을 열었을 때의 강녕전 모습. 한옥도 그렇고 궁도 그렇고 문을 열었을 때는

저렇게 천장에 매달아 놓는 데 무슨 연유일까.

활짝 열어 사방으로 바람이 통해 시원하라고 한 것일까?

 

 

 * 강녕전 바로 앞에 위치한 사정전 뒷마당. 사정전은 임금님께서 평상시에 거처하면서 정사를 보던 건물이다.

   생각해보니 대신들과 주요 현안 논의를 하던 근정전-개인적으로 정사를 돌보던 사정전-그리고 침실인

   강녕전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임금님의 체력 안배를 위해 효율적인 구성이란 생각이 든다

 

 

* 사정전 옆에 위치한 천추전. 왕과 신하가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라고 하는데 현재의 모습으로는 학문을

토론하기 보단 편하게 쉬는 개인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 강녕전 뒤에서 바라 본 교태전의 모습. 왕비의 침실이었다고 하는데 명성황후도 아마 여기에서 거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다.

 

 * 어느 건물 앞아서 바라 본 하늘. 각 건물의 지붕마다 또렷한 어처구니의 모습들이 특징이다.

 아마 각각마다 의미가 다 있지 않을까 싶긴한데. 저 건물 너머엔 경회루가 있다.

 

 * 건물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북한산. 배산임수라하여 등에는 북한산이 있고, 앞 에는 한강이 흐르고 있는

   최고의 명당으로 경복궁이 위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상기 두 장의 사진은 어느 건물 앞에서 찍은 건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런 웬수 같은 주의력 ㅠㅠ)

 

 *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아래 겨울을 상징하는 메마른 가지에서 쉬고 있는 까치.

    순간 아무 움직임도 없는 고요한 정적이 찾아온 듯했다. 마치 주요 장면에서 갑작스런 음소거와 함께

    느려지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 Tip!!! 강녕전- 경복궁 안에 있던 왕의 침전(寢殿). 1395년(태조 4) 사정전(思政殿) 북쪽에 세워졌는데 〈서경 書經〉의 홍범편(洪範篇)에서 오복(五福) 중 강녕(康寧)을 당호(堂號)로 삼았다. 1433년(세종 15) 중수했으며 1553년(명종 8) 불탄 것을 이듬해 중건했다. 임진왜란 때 전화(戰禍)로 다시 불타 없어진 것을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었다. 내전(內殿)의 으뜸 전각으로 앞면 11칸, 옆면 5칸의 단층팔작집이며, 장대석 바른쌓기한 높은 기단 위에 다듬은 돌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우고, 쇠서 2개를 둔 이익공집이다. 특히 뒤에 있던 왕비 침전인 교태전과 함께 지붕에 용마루를 양성하지 않음으로써 침전임을 상징했다. 1920년까지는 제자리에 있었으나 1917년 화재로 불타버린 창덕궁의 내전을 재건한다는 구실로 일본인들에 의해 헐리어 건축부재로 사용되었다.

 

* Tip!!! 경복궁 배치도는  http://www.royalpalace.go.kr/html/preview/preview01_tab01.jsp?dep1=4&dep2=1를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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