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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by Robin-Kim 2008.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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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이 커피 믹스 봉투를 세며 주문 같은 것을 읊조린다.

좋아한다, 아니다, 좋아한다, 아니다

그 때 한 남자가 지나가면서 이나영의 손에 커피 믹스 한 봉지를 쥐어주며 말한다.

선배, 제 것도요~

이나영은 그 믹스를 받아 들고는 좋아한다로 혼자 결정을 내리며 또 혼자 좋아 죽는다.

모 커피 믹스 TV CM 내용이다. 얼마나 유치 찬란한가.

 

하지만 이런 유치 찬란함이 때로는 가슴 설레이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으니, 아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철저하게 우리가 청소년기에 읽었던 통속적 사랑 얘기의 범위 안에 있다. 더 나아가지도 못했고, 덜 나아가지도 못했다. 그냥 그저 그런 연애 소설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서도 이 책은 한 마디로 얘기하면 맛있다.

딱히 재미 있는 것도 아니고, 독특한 클라이막스가 있어서 이야기 구성을 그 곳으로 몰고 가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그 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의 목록을 한 번 쭉 훑어보고는 무릎을 치며 알았다.

얼마만의 유치한 사랑 얘기인가.

 

살다라는 동사의 명사는 두 가지라고 한다. 바로 사랑.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갖고 있는 행위의 일종일 게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꼭 해야만 하는 그런 애틋한 감정을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지내오다 문득 접하게 된 이 책은, 단순히 유치한 연애 통속 소설 한 권이라고 치부하기엔 모래 시계를 뒤집어 옛 추억을 거꾸로 쏟아내 버리게 할 만큼 자극적이었다.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와 그 프로그램 PD와의 그렇고 그런 연애 이야기. 주변에 애절한 사연을 가진 친구 커플과 함께 자주 등장하며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지만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서 헤어졌다 다시 만나게 되는 흔하디 흔한 사랑 이야기 (Love Story).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간된 지 몇 년이나 지난 이 책이 재판되면서 꾸준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두께가 절대 얇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책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추억을 맛있게 자극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맛있게 자극된 추억이 항상 손에서, 눈에서 그리고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달아오르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마치 사서함 110호로 편지를 보내야 할 것처럼.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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