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의 목표는 삼수이포 완전정복!
평소와 다름없이 7시에 일어나 잠시 정신을 차리고는 아침을 먹고 9시에 숙소를 나섰다. 어제의 경험으로 보아 9시경에는 삼수이포의 시장도, 스페이스 오디오도 열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곳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근데 이미 9시가 넘은 시간인에도 출근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홍콩도 우리나라처럼 출근시간이 다양한가라는 궁금증을 뒤로하고 잠시 후 삼수이포 역에 도착. D2 출구로 나갔다.
삼수이포 여행은 d2출구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잊지 말자, D2 출구!
오늘의 첫 목적지는 예술가들이 모인 곳이라는 자키클럽 크리에이티브 아트센터(JCCAC).
※ 자키클럽 크리에이티브 아트센터(JCCAC)
- 원래 낡은 폐공장이었으나 홍콩 예술가들의 군락으로 재탄생된 곳
- JCCAC의 위치는 영국의 홍콩 통치 시절 사회주의를 떠나 중국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난민들을 수용했던 판자촌
- 하지만 1953년 심한 화재로 53만 가구의 판자촌이 소실되고 이듬해 홍콩 최초의 공공임대주택이 설립된 곳
- 2008년 인쇄소와 플라스틱 제조업체들이 모여 있던 건물을 부수고 새롭게 지어 저렴한 임대료로 예술인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
- 자키클럽은 우리나라의 마사회 같은 곳
→ 쉽게 말하면 문래동 공장단지 같은 곳에 새롭게 건물을 지어 예술가들에게 싸게 임대해 준 건물
어떤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큰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니 조금 전 봤던 삼수이포와는 전혀 다른 삼수이포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네모 반듯반듯한 우리나라의 아파트와 비슷한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도로를 사이에 두고 삼수이포 역 주변보다는 이 지역을 많이 개발한 듯하다. 하긴 전형적인 판자촌 일대가 불이 나서 전부 소실되기도 했던 데다 공장 단지였던 곳을 재개발한 곳이니, 이왕 하는 거 신식으로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거리가 깔끔하고 깨끗하다.
삼수이포 역을 나와 전형적인 홍콩 거리의 모습을 지나 새롭고 깨끗한 거리의 모습을 거쳐 드디어 약 10여 분 만에 JCCAC에 도착했다. 혹시나 문을 열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
그렇게 건물에 들어왔지만 이상하리만치 너무 조용했다. 당연했다. 시장과 상점도 9시에 문을 안 여는데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JCCAC니까 9시 반이 넘었는데도 더더욱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 건물 관리하시는 분들 두 세분 정도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1층을 천천히 둘러봤지만 그 어떤 예술가 사무실도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오직 딱 한 곳, 아프리카 음악 같은 걸 하는 젊은 예술가 한 명만 문을 잠근 채 혼자 연습 중이었다.
예술가들이라 밤에 뭔가를 하고 오전 늦게까지 자는 건가....
일단 1층에는 문 연 곳이 없으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한 층씩 내려오며 구경하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다는데 아무도 없다고 그냥 갈 수는 없으니까.
꼭대기 8층에 내려서 천천히 돌아다녀 보았으나 여기도 문을 연 곳은 없었다. 그래도 창문에 얼굴을 들이대고 안을 보다 보면 각 예술가마다 만들어 놓은 무언가를 볼 수는 있었다.
대한민국은 아파트 천국이다. 어딜 가도, 어느 동네엘 가도 볼 수 있는 것이 아파트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아파트에 산다. 그리고 그 반듯반듯한 아파트의 모습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별다른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홍콩은, 그중에서도 구룡반도는 (홍콩섬도 상당 부분 그렇지만) 첫 사진에서처럼 주상복합 건물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그런 건물에 사람들이 살고, 고개만 돌리면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홍콩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아파트를 보는 것처럼 굉장히 익숙한 것일 테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경할 것일 게다.
그런데 그런 홍콩의 구룡반도에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아무런 느낌조차 없는 아파트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반듯반듯해 보인다고 표현은 했지만, 같은 크기와 같은 모양, 같은 색깔을 가진 복사된 공간의 모습.
그렇게 둘러보다 7층이었나 6층이었나, 드디어 사무실 문을 연 예술가를 찾았다!
밖에서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벽에는 귀여운 캐리터들이 걸려 있어서 구경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고 있던 젊은 남성에게 '좀 둘러봐도 될까? (Can I look aroud?)'라고 묻자 '물론이지! (Sure!)'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다지 크지 않은 사무실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ㅐ릭터들이 꽤 재미있고 귀여워서 물었다.
'이거 다 네가 디자인한 거야? (Did you design all these?)'
돌아온 대답은 '응. 사실 난 일러스트레이터야 (Yes. Actually, I'm an illustrator)'. 그러면서 명함도 건네주고 전시회도 한다며 자기소개를 간단히 해주었다. 그래도 영어를 좀 할 줄 아는 친구네.
그런데 이 친구 캐릭터들이 너무 귀여워서 뭔가 굿즈 같은 걸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이 친구의 인스타그램은 https://www.instagram.com/highballandpillow/ 이니 들어가 보셔도 좋을 듯.
보게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을 나와 다른 곳을 둘러보는데 이번엔 한 여성 예술가가 꽤나 어두운 사무실 안 쪽에서 점토 반죽 같은 걸 내리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진지한 모습을 방해할 수 없어 조용히 내부를 구경하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역시나 좀 둘러봐도 되냐고 묻자, 흔쾌히 괜찮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이 작가의 작품들을 보니 예술 세계가 참으로 독특하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품 세계를 보며 혼자 웃다가 역시나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지하철 역 쪽으로 향했다. 가죽을 활용한 다양한 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곳이 있어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가는 길에 두부로 유명하다는 컹 와 빈커드 팩토리(Kung Wa Beancurd Factory)에 두부 푸딩을 먹으러 들렀다.
※ 컹 와 빈커드 팩토리 (Kung Wa Beancurd Factory)
- 4대째 내려오는 두부 푸딩 가게
- 60년 전 창업자가 만든 조리법 그대로, 지금도 맷돌로 콩을 갈아 정성스럽게 두부를 만든다고 한다
- 두부 튀김 등 두부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도 판다
- 두부 푸딩은 기록을 해 놓진 않았는데 가격이 겁나 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 주소: 118, Pei Ho Street, Sham Shui Po
가게에 들어가서 앉으니 이모님이 와서 주문을 하라고 하는 것 같은데 중국어 모른다고 하니 갑자기 좀 불친절해진다.
설마 일부러 불친절 한 건 아니고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겠지,라고 생각을 하며 배고 아직 고픈 단계는 아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두부 푸딩을 주문서에 표기하고 이모님한테 넘겼다.
그리고 정말 잠시 후 따끈한 두부 푸딩이 나왔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판두부의 식감은 아니고 그렇다고 연두부도 아니고 약간 순두부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다. 그냥 먹으면 맛이 없고, 식탁 위에 있는 다양한 소스를 조금씩 뿌려 먹으면 다양한 맛으로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두부면 그냥 먹어도 특유의 고소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왜 그런 맛을 느낄 수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다시 어제 걸었던 장난감 거리로 유명한 푹윙 (Fuk Wing)를 걸어가 본다. 그나마 이 시간이 되니 꽤 많은 가게가 문을 열어서 이런저런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일단 목적지는 '알리 스타 레더 크래프트 (Ali Star Lether Craft)'. 삼수이포는 다양한 원단들이 유통되는데 그중에는 가죽도 있고, 그 가죽을 활용한 가죽 공예 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좀 있는데 알리 스타는 그런 상점 중 하나다.
굉장히 유명한 가게라기보다는 가죽 공예 거리를 가기 위해 구글 오프라인 지도 위에 목적지로 찍어 놓은 곳.
푹윙 거리에서 한 10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알리 스타에 도착했다. 그런데 외관부터가 세련되어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천천히 발걸음을 안으로 들여놓았더니 코에 피어싱을 한 대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아가씨가 쳐다본다.
그래서 역시나 '좀 둘러봐도 될까?'라고 물었더니 그러라고 한다. 키는 좀 크고 몸은 마른 편인데 히피족 느낌이랄까, 약간 자유분방한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에는 각종 방송을 통해 삼수이포가 '힙지로' 느낌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게 표현하기는 뭔가 부족한 곳이 삼수이포다.
내가 생각하기엔 남대문+광장시장+평화상가+문래동 정도가 합쳐진 느낌이랄까.
일단 삼수이포 역 주변은 굉장히 큰 재래시장이 몰려 있다. 앞에서 얘기한 푹윙 스트리트부터 푹와 (Fuk Wa) 스트리트, 그리고 좀 떨어진 압리우 스트리트 (Apliu Street)까지 그 규모가 엄청나다. 레이디스 마켓에 비할 게 아니다. 종류도 옷만 파는 게 아니라 가방, 신발부터 해서 그릇, 장난감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 재래시장 주변엔 다양하고 맛있는 식당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아까 두부를 먹었던 컹 와 빈커드 팩토리부터 만두로 유명한 유엔퐁, 이제는 카트를 끌고 다니지 않는 만케이 카트 누들, 소고기 계란 샌드위치로 유명한 선향 유엔, 딤섬 계의 왕 중의 왕 팀호완까지.
그리고 알리 스타가 있는 주변 동네는 각종 원단이 유통되는 동네라서 원단을 실은 다양한 트럭이 오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팀호완이 있는 주변은 문래동처럼 기계 공작소 같은 곳들이 몰려 있다.
즉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곳이 바로 삼수이포라고 할 수 있고, 그만큼 많은 매력을 가진 곳이기 때문에 단순히 '힙지로'라는 이미지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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