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삼수이포에 있는 홍콩의 유서 깊은 장소를 발견하고는 다시 압리우 스트리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SCAD라는 세계적인 디자인 학교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사실 SCAD의 위치는 JCCAC와 가깝기 때문에 한 번에 보면 좋지만 나는 스페이스 오디오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순서를 바꿨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압리우 스트리트는 제대로 시장이 섰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정말 이번 홍콩 여행에서 시장이란 시장은 다 가보는 것 같은데, 삼수이포 역 주변의 시장이 제일 크고 번화하다. 그런 삼수이포 역 주변의 시장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곳이 압리우 스트리트 시장이다.
미리 다운받아 온 구글 오프라인 지도를 켜고 SCAD를 향해 방향을 잡는다. 습한 무더위 때문에 천천히 걸었지만 갑자기 뜨거운 태양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뜨거웠다.
그래서 최대한 그늘 사이로 SCAD를 찾아가며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삼수이포의 풍경을 본다. 삼수이포는 역 주변 풍경과 조금 떨어진 대로변 풍경이 마치 야누스 혹은 아수라처럼 완전히 다르다. 불과 500m 남짓 거리의 차이임에도 거리가 무척이나 조용하다.
그렇게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엄마들과 보모들을 보며 길을 걸으니 저 멀리 SCAD가 보인다. 주소와 구글 지도상 저곳이 SCAD가 분명하다. 주변에 다른 건물이 하나도 없으니까.
※ SCAD (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
- 미국과 프랑스 등 세계 곳곳에 캠퍼스를 둔 디자인 학교
- 웅장한 옛 법원 건물에 들어섰는데 법정과 감방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문과 창문, 벽 또한 원형 그대로 남겼다
- 2011년 SCAD는 세심한 보수 과정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문화유산 보존 부문에서 수상
횡단보도를 건너 드디어 SCAD 앞에 도착! 삼수이포 역에서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한 거리.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건물이 다 잠겨 있다. 주차장도 잠겨 있고, SCAD 소유인 것 같은 뒤뜰도 문이 잠겨 있다. 건물 입구만 잠겨 있으면 수업 중이라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완전히 다 잠겨 있다.
심지어 건물에는 North Kowloon Magistracy라고 써 있었다. SCAD 건물이 아닌가?
그래서 지도와 주소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여기가 정확하다. 건물에도 구글 주소 그대로 써 있었다. 그럼 SCAD는 증발한 것일까?
땡볕 아래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담벼락 역할을 하는 철조망에서 안쪽을 두리번거리다 건물 옆쪽에 경비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Hello! Excuse Me!"
우렁차고 다급한 듯이 외치자 경비복 같은 옷을 입은 중년의 여성이 천천히 걸어왔다. 조금 성큼성큼 걸어주면 안 되나... 난 무지 덥고 힘든데...
아무튼 150초 같은 15초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그 여성이 가까이 왔을 때 '여기 SCAD 아니야?"라고 묻자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과 함께 'No more SACD.'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SCAD가 없어졌다니, 그럼 난 이 정보를 어디서 얻은 거야?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그래서 언제 없어졌다고 물으니 벌써 몇 년 됐단다. 이런 젠장.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돌아섰다.
대체 SCAD가 있다고 한 놈은 누구야!!!
그렇게 다시 역 쪽으로 돌아오다 아주 작은 공원이 있어서 아픈 다리도 쉴 겸 그늘 아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현지 할아버지를 배경 삼이 어디로 갈까 뒤적거리다 팀호완을 발견했다!
그래, 팀호완을 가는 거다. 홍콩의 수많은 딤섬집 중 가장 유명하다는 팀호완 본점. 홍콩을 이렇게 여러 번 왔는데 팀호완을 안 가보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렇게 목적지를 정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팀호완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문래동 같다. 다양한 철공소들이 모여 있는 문래동처럼 팀호완으로 가는 길은 거친 느낌이었다 도로포장이 거칠다는 게 아니라 거리 분위기가 그렇다는 얘기다. 사진을 찍었으면 더 좋겠지만, 무더위에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힘들어서 사진 찍기가 버거웠다.
그렇게 또 다른 매력의 삼수이포를 느끼며 걷다 보니 드디어 팀호완, 그것도 본점에 도착했다!
※ 팀호완 본점 주소
- G/F, 9-11 Fuk Wing Street
- 삼수이포 역에서 걸어서 10분 조금 더 걸린다
입구에 들어서며 1명이라고 얘기하니 자리를 안내해 주었는데 4인도 충분히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점심시간도 아니고 저녁시간도 아니다 보니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역시 유명한 집은 한가한 시간에 와야 편하게 먹을 수 있다.
팀호완 본점은 테이블 당 차를 꼭 함께 주분해야 한다. 차를 주문하면 찻주전자와 잔을 준다. 더운 날씨지만 그럴수록 따뜻한 음료를 마셔야 속이 편하다.
딤섬으로는 뭘 먹을까 3초 정도 고민하다 가장 유명한 Siu Mai를 주문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 사이에 고개를 돌려 가게 안의 풍경과 어떤 손님들이 있는지 눈에 담아 본다. 그리고 시간이 적당히 흐르고 나서 드디어 Siu Mai가 나왔다!
따뜻한 차와 함께 하나씩 천천히 꼭꼭 씹으며 맛을 느꼈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그래서 이번엔 Ha Jiao를 주문했다. 이제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홍콩에 오지 않을 테니, 팀호완에 온 김에 대표적인 딤섬은 다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하얀색 빛깔이 영롱한 Ha Jiao가 내 앞에 나타났다. 역시나 따뜻한 차와 함께 천천히 꼭꼭 씹어 맛을 음미했다.
팀호완에서 딤섬을 먹고 나서 든 생각은 굳이 딤섬을 팀호완, 그것도 본점까지 와서 먹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전통이 있어서 유명하긴 하지만 뭔가 팀호완만의 색다른 게 없었다.
2017년 몽콕의 골든 딤섬에서 먹었던 딤섬의 맛과도 큰 차이 없고, 이번 여행 첫날 금붕어 시장을 가는 길에 보았던 딤섬 집도 맛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뭐 오래된 식당에 와서 맛을 봤다는 만족감은 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렇게 삼수이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센트럴로 향했다. 루가드 로드를 가기 위해서다.
오늘은 여기가지.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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