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치마를 입고 인형을 갖고 놀기보다는 남자보다 싸움을 잘했던 그 여성은 어른이 되어서는 FBI의 요원이 됩니다.
FBI 요원이 되어서도 그녀는 사회적인 통념으로서의 ‘여성다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활동하기 편한 신발을 신고, 머리를 빗을 빗도 없어 대충 묶고 다니는가 하면 화장은 남 일이라고 생각하고 걸음걸이는 남자들보다 더 팔자걸음이며 격투기를 좋아하고 FBI 요원으로서의 삶을 좋아합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범인을 잡기 위해 미스 U.S.A라는 미인 대회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상은 2001년 개봉한 [미스 에이전트 (Miss Congeniality)]의 주인공 그레이시 하트 (산드라 블록/ 이하 하트)라는 인물의 성격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FBI에 협박 편지가 도착합니다.
협박 편지를 보낸 사람은 ‘시티즌’이라고 불리는 사람으로 이미 여러 차례 협박 편지를 보낸 인물로 그려지는데 FBI 정보팀에서 분석한 결과 그의 최종 목표는 미스 U.S.A 대회장을 폭파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FBI는 그를 잡기 위해 대회에 하트를 대회 참가자로 잠복시켜 시티즌이 나타나면 체포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하트는 그 계획에 못마땅해 하면서 거부하지만 결국 대회에 참가해서 범인을 잡게 됩니다.
이 영화를 좀 더 재미있게 보려면 주인공 하트라는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좋습니다.
[미스 에이전트]에서의 하트는 전형적인 ‘페미니스트 (feminist)’ 성향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영화에서 이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심지어 하트는 잠복임무를 위해 참여한 미스 U.S.A 선발대회 같은 미인대회 (Pageant)에 참가자들을 머리는 텅 비고 미소만 지을 줄 아는 여자들로 치부합니다. 백치미로 남자들의 환심의 사려는 여자들로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여러 명의 미스 U.S.A를 탄생시킨 빅터 (마이클 케인)으로부터 걸음걸이, 대화법, 식사 예절, 외모 가꾸기 등의 교육을 받는 내내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불평불만 투성입니다. 전형적인 페미니스트죠.
그렇다면 이 영화의 대립구조는 ‘하트 vs 미스 U.S.A 참가자’일까요?
아닙니다. 잠복 수사를 하면서 하트는 다른 참가자들과 생활하면서 오히려 친하게 지냅니다.
아니, 단순히 친해진 것을 떠나 그녀들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나중에는 시티즌으로부터 그녀들을 구하기 위해 진짜 시티즌을 잡았다며 수사를 종료하고 철수하라는 반장의 지시도 거부한 채 현장에 남습니다.
그렇다면 ‘하트 vs 남자들’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사실 이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하트가 속한 FBI의 남자 요원들은 하트처럼 남성성을 보이는 여자보다 통상적인 ‘여성스러움’을 가진
여성들을 좋아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미스 U.S.A 대회 참가자들의 몸매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등 전형적인 페미니스트들의 공격 대상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결국 하트는 그런 남자들 중의 한 명인 에릭 (벤자민 브렛)과 사랑에 빠집니다.
이 영화의 대립구조는 ‘하트 vs 캐시 모닝사이드 (캔디스 버겐/ 이하 캐시)’이라는 ‘여자 vs 여자’입니다.
하트가 잠복수사를 결정하고 처음 캐시를 찾아가서 지속적으로 ‘Beauty Pageant (미인대회)’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페미니시트 적인 얘기를 하자 캐시는 딱 잘라서 ‘장학 프로그램 (Scholarship Program)’이라며 미스 U.S.A 대회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미인대회를 두고 여자들끼리 전혀 상반되는 사고 방식인 거죠.
캐시는 오래 전에 미스 U.S.A의 진이었던 사람으로 이후 오랜 시간 미스 U.S.A 대회의 총 감독 (Director)로 활약합니다.
하지만 대회 주최사로부터 이번 대회를 끝으로 해고 당했고, 그에 앙심을 품은 캐시는 ‘자신이 없는 미스 U.S.A는 있을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대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기 위해 대회장을 폭파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찰에게 협박편지를 보낸 시티즌이 바로 캐시인 것이죠.
그리고 하트는 에릭의 도움을 받아 범인인 캐시를 체포하고 에릭과 사랑에 빠지는 행복한 결말로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한국에서는 주인공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네요.
결국 ‘여자의 가장 큰 적은 여자다’라는 속설을 그려낸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원 제목에 있는 단어 Congeniality는 ‘(성질·취미 등의) 일치, 합치, 친화성’등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원 제목을 직역하면 ‘미스 친화력’정도 될 텐데 페미시스트 성향을 보이며 미인대회에 부정적이었던 주인공 하트가 이유야 어찌됐든 미인대회에 참가하여 다른 참가자들과 합숙을 하며 친해지고 결국 그들을 돕는다는 줄거리를 잘 표현하는 단어가 아닐까 싶네요.
그렇다고 이 영화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그냥 무난하게 보기 좋은 코메디 영화 정도로 생각하고 보면 15년 전 작품이지만 꽤나 재미있는 영화가 바로 [미스 에이전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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