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에 개봉한 [터미네이터]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이하 아놀드)라는 배우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했습니다. 1
947년생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60~70년대에 보디빌더로 활동하면서 1968년에 미국으로 이민, 1970년까지 미스터 유니버스 1위 5회, 1970년부터 1980년까지 미스터 올림피아 1위 7회 등 역대 최다 우승 타이틀을 얻기도 했지만 영화 배우로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 그의 큰 덩치와 근육을 적극 활용한 [터미네이터]라는 영화가 흥행하자 그 역시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후 [코만도], [고릴라], [프레데터], [토탈 리콜]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확실한 액션 배우로 자리매김하는가 하면, [트윈스], [유치원에 간 사나이] 등의 영화에서 진정한 배우로써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의 ‘인생 작품’은 1991년에 개봉된 [Terminator 2: Judgment Day (이하 터미네이터 2)]가 아닐까 합니다.
투여된 제작비가 무려 1억 2백만 달러인 초대형 작품인데다,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금액이 무려 519,843,345 달러 (약 5,300 억원)이니까 1991년이라는 시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투자였고 엄청난 흥행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1편이 6,400만 달러 투자에 전 세계에서 약 7,800만 달러의 성적을 거둔 것에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여담이지만, 1980년대에 늘 그와 비교되는 라이벌이었던 실버스타 스텔론이 [터미네이터 2]의 흥행에 자극을 받아 역시 SF 영화인 [데몰리션 맨]을 직접 제작하고 출연했지만 5,800만 달러라는 미미한 흥행 성적을 남기며 참패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놀드가 실버스타 스텔론보다 훨씬 높은 개런티를 받는 유명한 배우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대해 한 가지 머리 속에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계들의 지배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존 코너 측 vs 인류를 영속적으로 지배하려는 스카이 넷을 중심으로 하는 기계들’이라는 대립 구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에 인류를 지배하는 기계들은 저항군 지도자인 존 코너의 존재자체를 없애기 위해 그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죽이려고 1984년으로 터미네이터를 보냅니다.
반면 존 코너는 사라 코너를 지키기 위해 저항군 멤버 중 한 명인 카일리스를 역시 1984년으로 보내게 되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사라 코너를 터미네이터로부터 보호하면서 꽁냥공냥하던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가 사랑을 나누고 낳은 아들이 바로 존 코너라는 것입니다.
즉, 미래에서 보낸 자신의 부하가 자신의 아버지가 된다는 내용인데 이처럼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단순히 SF 영화가 아닌 ‘시간 여행’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담고 있습니다.
미래의 존 코너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어머니가 터미네이터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카일 리스를 과거로 보냈는데 그가 존 코너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1편에서 카일 리스는 터미네이터를 제거함과 동시에 자신도 죽게 되는데, 그렇다면 존 코너와 함께 저항군으로 활동하던 미래의 카일 리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1편에서 악역, 그러니까 사라 코너를 죽이기 위한 터미네이터 (T 101)로 출연했던 아놀드는 [터미네이터 2]에서는 사라 코너와 존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미래의 존 코너에 의해 보내진 기계 인간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1편이 ‘사라 코너, 카일 리스 vs 터미네이터 (아놀드)’의 대립 구조였다면 2편은 ‘사라 코너, (어린) 존 코너, T 800 (아놀드) vs 터미네이터 (T 1,000)’의 대립 구조인데요, 이 때 등장한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진 터미네이터인 T 1,000의 능력에 수 많은 영화 팬들이 열광했습니다.
어떻게 해도 부시거나 망가트려버릴 수 없는 그의 신체 구조는 아놀드를 제치고 [터미네이터 2]를 지배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캐릭터였으며, 당시 제 친구는 ‘만약 3편이 제작된다면 기체로 된 터미네이터가 나온다면 어떨까’라는 얘기를 할 정도로 컴퓨터 그래픽의 정수를 보여준 전혀 새로운 캐릭터였습니다.
이후 2003년에 개봉한 [Terminator 3: Rise of the Machines (이하 터미네이터 3)]는 당시 가장 뜨거운 모델 중 한 명이었던 크리스티나 로켄을 존 코너를 죽이기 위해 미래에서 파견된 터미네이터 (T-X)로 캐스팅하며 기대를 모았었습니다.
그런데, 2편의 두 배나 되는 2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전 세계 흥행이 약 4억 3천만 불에 달하면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1편과 2편을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하차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성인이 된 존 코너의 모습이 시정 잡배 (?)의 모습인데다 비중이 적었던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2편의 엄청난 인기 때문에 너무도 높아진 관객들의 기대치를 뛰어넘지 못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09년에 개봉한 4편인 [Terminator Salvation (이하 터미네이터 4)]는 미래 세계를 그려 냅니다.
즉 기계와 인간이 전쟁을 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존 코너가 어떻게 저항군 지도자로 활약하는지를 그리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시리즈 최악의 흥행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제작비는 3편과 동일한 2억달러가 들었지만 세계 흥행은 약 3억 7천만 달러에 그쳤는데, 저도 이 4편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수 많은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팬들처럼 저도 ‘터미네이터=아놀드’라는 공식이 각인되어 있었는데, 4편에는 그가 출연하지 않았으며 각종 예고편을 통해 접한 줄거리가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2015년 개봉한 5편인 [터미네이터 제네시스]는 아놀드가 복귀하면서 일단 기본적인 흥행 몰이에 성공했습니다.
최종 결과는 3편이나 4편보다 적은 1억 5천 5백만 달러를 투자해 약 4억 4천만 달러라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으니, 적은 투자 금액으로 더 높은 흥행을 기록한 것으로 볼 때 확실히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있어 아놀드의 효과는 무시 못할 듯 합니다.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이하 제네시스)]는 1편과 2편이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래서 1편과 2편의 내용을 알면 훨씬 재미있지만 모른다 해도 영화를 즐기는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시리즈 전체의 대립 구도만 인지하고 있으면 됩니다.
일단 영화는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가 자신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카일 리스를 1984년이라는 과거로 보내면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시리즈 1편의 배경이 되면서 연계성을 갖는 것이죠.
그런데 카일 리스가 시간 이동을 하는 시작하는 순간 그의 눈에 존 코너가 스카이 넷에게 공격 당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 오고 그 때문에 과거도 바뀌게 됩니다.
원래의 과거, 그러니까 1편에서의 사라 코너는 바 (Bar)에서 일하는 평범한 아가씨였는데 [제네시스]에서는 이미 전사가 되어 있었으며, 그녀의 곁에는 사라 코너가 ‘팝스’라고 이름 붙인 원조 터미네이터가 함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1편에 등장했던 악한 터미네이터를 팝스가 처리하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팝스가 왜, 어떻게 그녀의 곁에 있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다만 사라 코너가 9살 때 그녀를 죽이기 위해 미래에서 파견된 터미네이터로부터 그녀를 구해준 것이 팝스며 또 팝스가 스스로 자신이 T-800이라고 한 것으로 볼 때 2편의 터미네이터가 연속성을 가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무튼 시리즈 1편의 배경이 1984년이기 때문에 당연히 1편과 연결되어 미래의 스카이 넷은 악한 터미네이터를 보냈고 또 존 코너는 카일리스를 보냈기 때문에 당연히 1편의 내용이 나오는데, 재미있는 것은 2편의 핵심 인물이며 우리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T- 1000이라는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도 함께 등장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부에는 1편과 2편에 나왔던 장면들이 그대로 다시 연출되기도 해서 전작들을 본 사람들에게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이후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는 스카이 넷, 즉 제네시스를 없애기 위해 시간 이동을 통해 미래인 2017년으로 이동하는데 원래 가려고 했던 지점은 1997년이지만 과거가 바뀌면서 시점이 바뀌었고, 시리즈 3편에서 작동을 시작하여 핵무기를 발사하며 인류 멸망의 시작을 알린 스카이넷은 제네시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제네시스는 현재의 시대상에 맞게 모든 네트워크의 통합, 즉 IoT는 물론 모바일과 온라인 등을 한 번에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이 제네시스가 인류를 멸망의 위기로 빠트리게 될 핵심입니다.
[제네시스]의 핵심인물은 존 코너입니다. 문제는 그가 더 이상 미래의 저항군 지도자가 아니라 스카이 넷에게 세뇌되어 또 다른 터미네이터, 즉 스카이 넷을 보호하는 임무를 갖고 미래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17년으로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네시스]의 대립 구조는 아이러니하게도 ‘카일리스, 사라 코너, 팝스 vs 존 코너’가 된 것이죠.
존 코너가 갑자기 이처럼 변한 것에 대해 영화에서는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데 워낙 어려운 내용이라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언제나 자신이 과거로 보낸 터미네이터가 실패하자 스카이 넷은 전략을 바꿔 아예 저항군 대다수를 죽이고 살아남은 존 코너를 터미네이터로 세뇌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바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제네시스]에서 변해버린 존 코너에 의해 시리즈 내내 미래의 저항군 지도자였던 존 코너는 없어진 것일까요? 아니라면 어떤 존 코너가 진짜 존 코너일까요? 변해버린 존 코너 일까요, 아니면 여전히 미래에서 저항군을 이끌고 있는 존 코너일까요?
더 깊게 생각해 볼 문제는 변해버린 존 코너가 자신의 아버지인 카일 리스와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미래의 자신은 없어지게 됨에도 불구하고 존 코너는 타임 라인이 바뀌어서 괜찮다며 그들을 지속적으로 죽이려고 하는데 만일 그들이 죽는다면 과연 존 코너는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것일까요?
타임라인이 바뀌었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말 그대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영화의 결말은 기존의 시리즈처럼 제네시스는 파괴되고 존 코너는 죽고 맙니다.
기계에 대항하는 인류 저항군 지도자가 그 기계를 지키려다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죠.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스카이 넷 (제네시스)도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도 모두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래가 바뀐 것일까요? 시리즈 전체를 이끌어 오던 대립구도는 또 어떻게 된 것일까요?
조금 복잡하지만 이 영화를 끝으로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더 등장할 명분은 사라졌습니다. 시리즈를 지탱해 온 대립 구도의 큰 두 축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생각해 볼 화두들이 남아 있습니다.
‘알파고’로 대변되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인류를 위한 것인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 하는 것들 말이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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