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그 동안 읽지 못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연달아 읽고 있다.
이사카 코타로도 좋고 오쿠다 히데오도 좋지만 그보다 히가시가 게이고의 책을 많이 읽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흔하지 않은 범죄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제대로 구현해 해는 작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더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발표되는 그의 작품들은 전형적인 탐정물에서 벗어나
식물학이나 물리학 또는 화학과 같은 과학을 바탕으로 한 내용들이어서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혹시 누군가가 ‘왜 국내 소설은 읽지 않으세요?’라고 묻는다면 일단 정유정이나 정이현과 같은 최근에 인기를 얻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엄청난 실망 (특히 [달콤한 나의 도시] 그냥 일반인이 인터넷에 쓴 소설 수준)도 있고
기존에 알려진 여성 작가들 역시도 작품 내용들이 대부분 비슷비슷해서 작가 이름만 바꿔 놓으면
누구 작품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이고 (아무래도 그들은 ‘문학’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하다)
박범신과 같은 베테랑 작가들의 책은 나에겐 지루하다.
그나마 성석제, 천명관, 김영하 등의 작가들의 작품이 좋긴한데 김영하는 2년전쯤 연달아 읽었던 그의 작품에서 실망했던 터라 당분간 멀리하고 싶고,
천명관의 경우 신작이 최근에야 나왔기 때문에 읽지 못했으며 성석제의 경우 기존의 작품을 뛰어 넘는 무언가를 담은 작품을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행운 흥신소 사건일지]의 박치형, [종료되었습니다]의 박하익, [거기, 여우 발자국]의 조선희와 같은 작가들의
신작을 기다리고 있긴 한데 그들이 작품 활동을 안 하는 것인지 내가 잘 모르는 건지 아무튼 그들의 신작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일본 소설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서두에 얘기했듯이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 신작 [라플라스의 마녀]에서는 화학과 물리학을 소재로 치밀한 범죄 수사물을 완성했다.
60대의 유명한 영화 프로듀서 미즈키 요시로가 30살 정도나 어린 미모의 아내 치사토와 온천 여행을 갔다가 사망을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망의 원인은 황화수소 가스중독. 온천지대에서 황화수소 가스가 곳곳에서 지면을 뚫고 올라오지만
바람이 불면 금방 흩어지기 때문에 중독될 일은 거의 없고, 그래서 우리가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즈키 요시로가 사망한 장소의 경우는 더더욱 황화수소 가스가 사람을 질식사하게 만들 만큼 고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서 의문을 낳게 되고
마침 미즈키 요시로의 거주지 관할서 경찰인 나카오카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얼마 전 비싼 요양원에 거주하고 있는 미즈키 요시로의 엄마가 자신의 아들이 위험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경찰서로 보냈고,
실제 그녀를 찾아가 나눈 내용은 ‘돈을 보고 자신의 아들에게 접근한 젊은 여자 때문에 아들이 위험하다,
더구나 최근에 비싼 생명 보험도 여러 개 들었다고 한다’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온천 지역에서 역시나 똑 같은 황화수소 가스 중독으로 무명의 영화배우 나스노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곳 역시 가스 중독이 발생할 확률이 ‘0’에 가까운 지역.
사고 이후 두 곳을 모두 방문해서 자문을 한 아오에 교수는 이런 현실과 사고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알게 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어 궁금해 하다가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사망자인 미즈키 요시로와 나스노의 공통 분모로 천재라고 불리던 영화 감독인 야마카스 사이세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그가 일기처럼 썼던 블로그를 발견한 것.
그 블로그의 내용은 오래 전 야마카스의 아내와 딸인 모에 집에서 황화수소 가스 중독으로 사망했으며 아들인 겐토는 식물인간이 된 것,
그리고 그 사고는 평소 조용하고 차분한 딸이었던 모에가 집에서 가스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일어났으며
아들인 겐토는 유명한 뇌 관련 의사인 우하라의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치유됐지만 기억을 상실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내용을 아오에 교수로부터 듣게 된 나카오카 형사는 모에가 왜 그런 사고를 일으켰는지
당시 모에와 겐토의 친구들을 찾아 다니며 탐문 수사를 하는데 전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야마카스의 블로그 내용이 상당부분 거짓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모에의 경우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 아니라 유쾌하고 쾌활했으며 불량 학생으로 인식이 될 정도의 행동을 했었고
모에 뿐 아니라 겐토토 아버지인 야마카스를 굉장히 싫어했다는 것.
즉 가정에 충실하진 않았지만 행복한 가족이었다는 야마카스의 블로그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는 점인데
이런 내용을 알게 된 나카오카 형사는 최근 발생한 두 건의 사고가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한 편, 우하라 의사의 딸인 마도카는 어린 시절 외갓집에 놀라갔다가 토네이도에 의해 엄마를 잃게 된 사고를 당하는데,
이후 아버지와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병원이 있는 대학의 수리학 연구소에 기거하며 생활하다가
어느 날 도망치듯 사라지고는 두 건의 사고가 발생한 곳에 나타나났고 또 여관을 돌아다니며
여관 주인들에게 젊은 남자 사진을 보여주며 본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다니다 아오에 교수의 눈에 띄게 된다. 과연 그녀가 찾아 다닌 남자는 누구일까?
이후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야마카스는 태생적으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써 작품뿐 아니라 자신의 생활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완벽함을 강요했지만
집안에 가진 재산이 조금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 없던 아내와 낙태까지 했던 불량학생인 딸 마에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황화가스 사고를 일으켜 살인을 했던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 챈 아들 겐토는 의식이 돌아왔어도 일부러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행동했으며
우하로 교수의 수술을 통해 엄청난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데
수퍼 컴퓨터로도 시간이 걸리는 계산을 순식간에 처리해서 대기나 공기의 움직임 등을 통해 날씨를 예측하고
향후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복수심으로 아버지인 야마카스를 죽이기 위해 치밀한 작전을 세워 치사토에게 접근,
미즈키 요시로와 나스노를 죽여 야마카스를 유인한 것.
그의 특별한 능력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황화수소 가스가 고여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겐토의 능력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국가와 우하라 교수는
마도카의 적극적이고 자발적 지원으로 그녀에게도 겐토와 같은 뇌 수술을 하고는 성공해 낸다.
어린 시절 토네이도로 엄마를 잃은 마도카는 날씨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어했었기 때문에 자발적인 지원을 했던 것.
결국 마도카도 겐토와 같은 능력을 갖게 되었고 온천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가 겐토가 일으킨 일이란 것을 알아챈 마도카는 겐토를 찾아 돌아다닌 것이다.
최종적으로 야마카스를 죽이기로 한 곳에 모인 겐토와 야마카스 그리고 야마카스를 유인한 치사토,
겐토를 쫓아 온 마도카와 아오에 교수는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데 그 곳은 야마카스가 감독을 한 영화의 무대이기도 했던 곳.
과연 최종적인 결론은 어떻게 됐을까?
프랑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라플라스는 ‘만약 우주의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해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다’,
‘어느 순간 모든 물질에 있어서의 역학적인 데이터를 알고 그것을 순식간에 해석할 수 있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불확실한 것은 없어져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라고 했고
후에 이 존재에게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라고 번역자는 해설에서 덧붙였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인 [라플라스의 마녀]는 바로 이 ‘라플라스의 악마’에서 차용한 것이며 겐토와 마도카가 가진 능력을 상징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번역자의 해설 부분을 보니 이 책을 쓰기 위해 몇 번이나 전체 내용을 뒤집었던 그의 노력도 대단하다.
물론 때로는 그의 작품에 실망할 때도 있지만, 이런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산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과 함께 글을 마무리 하려 한다.
Leggie...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때 그 소설 (1) 현진건-운수 좋은 날:슬프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 (0) | 2024.05.11 |
---|---|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 뻔하디 뻔한 소설 (0) | 2017.02.22 |
몽환화: 그가 돌아왔다! (0) | 2016.10.18 |
식당 사장 장만호 - 그깟 따뜻한 밥 한끼가 뭐라고. (0) | 2016.09.13 |
속죄나무- 존그리샴의 법정 소설이 역사와 만났을 때 (0) | 2016.09.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