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들

그 때 그 소설 (1) 현진건-운수 좋은 날:슬프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

by Robin-Kim 2024. 5. 11.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정확히는 '김유정 역'을 방문해서였다.

 

김유정의, 김유정에 의한, 김유정을 위한 곳인 김유정 역과 근처의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 소설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을 둘러보면서

[봄봄]이나 [동백 꽃] 같은 학창시절 배웠던 소설의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쿠바의 아바나에 가면 헤밍웨이가 자주 갔었다는 바 (Bar)를 가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내가 정작 지하철을 타고 가면 만날 수 있는

김유정 역에 갔는데도 그 소설의 내용을 기억 못하다니. 그래서 소설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곳을 보고 감흥을 받을 수 없다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렴풋이 기억나는 고전 소설 (딱히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들을 읽어 보기로 하고는 학창시절 배웠던 그 때 그 소설들이 들어 있는 책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는데.

 

확실히 요즘 나오는 소설들과는 사용된 어휘나 이야기 전개 등이 차이가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재미와 다양성이 다시 읽어 보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 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니, 정말 오래된 것이 좋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몇 차례에 걸쳐 그 때 그 소설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

 

 

 

 

 

호사다마 (好事多魔)라는 얘기가 있다. 좋은 일에는 꼭 안 좋은 일이 따라 오니 항상 조심하고 주의하라는 얘기다.

 

속된 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덕에 집 한 채가 아닌 방 한 칸에 세 식구가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의 김첨지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력거를 끄는 직업으로 살아가지만 직업의 특성 상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허탕치기 일쑤고 어떤 날은 그럭저럭 먹고 살만큼 버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김첨지에게 그 날은 소설의 제목처럼 손님이 끊이지 않는 꽤나 운수 좋은 날이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와중에서도 아침부터 앞집 마나님을 전차 역까지 데려다 주었고, 거기서 다시 교원인 듯한 사람을 학교까지 태워다 주었으며학교에서는 다시 서울 역으로 가는 학생을 태웠고, 서울 역에서는 또 다시 커다란 짐을 가진 손님을 태웠으니 그야말로 평소에 구경하기도 힘든 돈을 하루에 번 것이니 운수 좋은 날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아침에 아내가 '오늘은 좀 쉬세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라는 얘기를 들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의 그가 하루를 쉰다는 것은, 어쩌면 내일을 담보할 수 없기에 아내에게 설렁탕을 사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집을 나섰는데 이렇게 돈을 많이 벌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대폿집에서 만난 친구와 거나하게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게 된다.

 

그 날 번 돈으로 평소라면 생각지도 못할 양의 술을 호기롭게 마시는 와중에도 계속 아내가 마음에 걸리지만 이미 발동이 걸린 상태라

쉽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결국 1원어치의 술을 다 비우고 나서야 설렁탕 한 그릇을 싸가지고는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침부터 아프다던 아내는 죽어 있고 그런 아내의 빈 젖을 빠는 아이만이 방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며 김첨지는 오열하고 만다.

 

결국 그토록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던 그 날의 결과는 운수가 가장 나쁜 날로 뒤바뀌며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사실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김첨지가 아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세 부분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일하러 나가기 전 아내가 집에 있어 주기를 얘기했을 때고, 두 번째는 학생을 태우고 서울역으로 가는 과정에서 집 근처를 지날 때였다.

 

집 근처를 지나면서 아파했던 아내가 떠 올라 그리 걱정스러웠다면 한 번쯤 들러 볼만도 했지만 손님의 재촉으로 발걸음을 목적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던 그 순간.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어찌 보면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에게 어쩌다 한 번 올까 말까 한 운수 좋은 날, 이렇게 돈이 잘 벌리는 날 아내가 아프다고 일을 접고 집으로 들어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만약 아내가 걱정되어 집으로 돌아갔는데 아내가 다 나아서 멀쩡하다면 그 좋았던 운에 대한 아쉬움은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도 없다.

 

사람이란 언제나 선택의 갈림길에 서기 마련이고 한 쪽을 선택하고 나면 항상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김첨지는 아픈 아내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별일 있겠냐는 심정으로 계속되는 운을 택하고 만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아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순간은 애초에 설 익은 조 밥을 먹고 탈이 났을 때였다.

 

그 때 바로 의원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았더라면 아내가 죽음으로까지 가지는 않았을 텐데 그 놈의 돈이 뭔지 정확한 병명을 모른다는 핑계로 의원을 찾지 않았다.

 

그렇다. 결국은 돈이다. 첫 번째부터 마지막까지 결국 아내의 죽음을 막지 못했던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그 놈의 돈이 뭔지 돈을 아끼려다 의원 찾아가길 포기하고 그날 따라 굴러 들어오는 돈을 포기하지 못해 아내를 혼자 죽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귀가 길에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골목 대포 집에서 친구와 거나하게 술에 취하는 장면은 가난한 가장이라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기 방어적인 표현이 두드러진 곳이다.

 

'돈 많으니까 술 더 가져와'라며 술에 취한 채 그 날 번 돈을 술집 바닥에 내동댕이 치며 1원어치를 다 채울 때까지 술을  마시는 장면이나 친구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내가 죽었다고 얘기하는 장면은 결국 자신의 현재 모습을 부정하려는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김첨지라는 인물은 애정이 간다. 남 같지가 않다.

 

누구나 한 번 삐끗하면 밑바닥 인생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그 회복은 너무나 어려운 작금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그토록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소중한' 돈이 굴러 들어오는 날을 포기할 수 없어 가장 중요한 가족을 돌보는 일까지 제쳐두는 김첨지에 비해 하등 나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빌 게이츠는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다 (If you born poor, it's not your mistake. But if you die poor, it's your mistake)'라는 말을 했다.

 

사실 가난이라는 것의 정도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지니까.

 

하지만 누구나 그 가난이란 것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산다. 그러면서 어쩌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는지도 모른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슬프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현실을.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