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국립 국어원)
1. 남에게 갚아야 할 돈. 꾸어 쓴 돈이나 외상값 따위를 이른다.
2. 갚아야 할 은혜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선 이 책을 보기 위헌 여정이 험난했다는 것을 먼저 얘기하고 싶다.
간혹 유명한 작가의 작품,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것도 포함해서, 들도 서점에서 돈 주고 사서 보니
돈이 아까울 정도로 실망했던 경험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여러 번 있었던 터라 [몽환하]는 도서관을 통해 빌려보려고 무지하게 노력했었다.
출간 이후 무려 2년 동안이나.
빌리러 가면 대출 상태, 또 빌리러 가면 대출 상태.
이사 온 새로운 동네의 도서관에서도 역시나 늘 대출 상태라서 도저히 빌려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출 예약을 해 놓고도 두 달을 넘게 기다리던 며칠 전, 드디어 연락이 왔다.
대출 가능하다고.
그래서 룰루랄라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빌리러 도서관으로 향했고 대출을 받았으며 마침내 이 책을 읽고야 말았다.
사실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을 읽고 감상평을 쓰기는 쉽지 않다.
그런 류의 책들은 얼마나 이야기가 잘 ‘꼬여’ 있는가,
그래서 읽는 사람들이 그 결과나 진실에 대해서 얼마나 궁금해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재미있다 vs 재미없다’ 또는 ‘탁월한 스토리 구성’ 정도가 아니면 딱히 할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읽었던 수 많은 책들 중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으로 추리 소설 작가인데다 스릴러 정도를 곁들인 작품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책에 대해서는 감성적인 느낌이나 생각해 볼 부분 같은 것들을 찾기 보다는
이야기 구성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냐가 감상평일 수 밖에 없었다.
[용의자 X의 헌신]도 그랬고 [매스커레이드 호텔]로 그랬고 [새벽 거리에서]나 [성녀의 구제] 그리고 [가면 산장 살인사건]도 그랬다.
이번 책 [몽환화]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감탄하며 읽었던 이 책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구성이 탁월했다.
바로 전에 읽은 그의 책 [가면 산장 살인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책이었다.
에도 시대부터 내려온 노란 나팔꽃의 정체, 그 노란 나팔꽃 때문에 오래 전 벌어졌던 MM사건과
또 그 꽃에 얽힌 가모 가문과 이바 가문이 비밀리에 그 꽃을 없애려는 노력,
그런 사실을 모르는 가모 사토와 리노의 추리과정 등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뒤에 나올 얘기가 궁금해서 책 장을 쉽게 덮을 수가 없었다.
보통의 그의 소설에 대한 감상평은 이쯤에서 마무리 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딱히 무언가 덧붙일 ‘꺼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이야기는 제일 마지막에 나온다.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모른 체 해서 없어지는 거라면 그대로 두면 되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이어받아야 하잖아?’
TV를 틀면 거짓말하지 않고 10분에 한 두 번은 대출 광고를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라에서는 ‘빚 내서 집 사라’라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가 기본적으로 빚 (대출)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체제기는 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빚 권하는 사회’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그래도 이처럼 물질적인 빚이라면 그나마 낫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볼 수는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마음의 빚이다.
이를테면 ‘환경 재앙으로 인해 치루어야 할 비용은 현재의 시장에서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는 미래 세대의 몫.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이 죄를 뒤집어 쓰는 셈’이라고 노암 촘스키가 말했던 것처럼.
때로는 눈에 보이는 누군가에게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지는 마음의 빚은 물질적인 빚보다 더 크게 사람을 붙들어 맨다.
그렇다.
이 책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빚’을 위한 가모 집안과 이바 집안의 얘기다.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노란 나팔꽃의 씨앗을 완전히 없애지 않고 비밀리에 세상에 존재하게 한-그것의 아무리 좋은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빚,
그 환각작용 때문에 대낮 거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인 MM 사건이 일어나게 한 마음의 빚 때문에
그 두 집안은 세대를 거치며 노란 나팔꽃이 다시 등장했는지 불철주야 감시하고 또 노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식물학자 슈지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한 노력 같은 것들이 더해져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마음의 빚은 그처럼 무겁고 또 무서운 것이며 이 책은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빌어 그 얘기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아쉬운 부분은 아무래도 번역이다.
기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번역자들은 양윤옥 씨나 양억관 씨처럼 일본어 번역의 경험의 풍부한 분들이어서
문장 자체가 매끄럽고 그래서 특별한 거부감이 없었다.
단순히 번역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문장을 ‘디자인’하는 실력이 좋았다고 할까.
하지만 이 책의 문장들은 굉장히 거칠다.
문장과 문장이 이어지기 보다는 각 문장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어색하기만 했다.
그저 번역만 해 놓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외국 책은 번역자도 중요하다, 라는 얘기로 감상평을 마무리할까 한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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