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의 끝 무렵쯤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끝물일 때쯤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즈음에 대학교란 곳에 입학을 했다.
‘민주화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격렬한 시위와 떨어트려 놓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학생운동이 그렇게 갑작스레 시들어진 것은
그 학생운동의 주인공들이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직장인이 되어 버렸던 데다 고도의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문화가 전국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도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이 있긴 했지만 멋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것인지 본인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때는 그랬다.
그리고 그 때는, 그러니까 학생운동이 한창 활발하던 때에는 노동운동도 활발했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조를 결성해
그들의 고용주에게 정식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는 노동운동을 벌였었고
그래서 당시 ‘노사 관계’, ‘노동 운동’, ‘노조 활동’ 같은 단어는 신문의 사회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기도 했었다.
그 때는 그랬다.
내가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로는 진심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이었다고 했다.
훨씬 오래 전 전태일 열사가 그랬던 것처럼.
중학교 졸업 후 ‘학비를 달라’는 자신의 말에 싸대기로 응답한 어머니에 화가 나서 그 길로 집을 떠난 장만호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아니 가출 이후 염색 공장에 취직해 우연히 접하게 된 노동운동을 통해 최연소 노조위원장까지 했던 장만호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우연히 당한 교통사고로 한 쪽다리의 허벅지 대부분을 잃게 된 그는 8천만원쯤 되는 보상금을 받게 됐고
그 돈으로 노조 활동을 할 때 알고 지내던 선배인 신포카가 운영하던 돼지갈비 집을 인수한다.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신포카카 가게 운영 노하우까지 전수해주며 부탁했던 것.
노조활동을 하던 장만호가 작은 가게지만 그래도 식당 ‘사장님’이 된 것.
장만호가 입원해 있는 동안 그를 간호하랴, 딸 현진을 돌보랴, 또 술주정과 줄담배라는 독특한 성품 (?)을 가진 괴팍한 시어머니에게서 시집살이를 하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아내 선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줄 똑바로 잡고 살아간다.
노조 활동을 하다 알게 된 두 사람은 같은 뜻을 가진 ‘동지’로 만났다가 발전한 인연인 만큼 서로간의 믿음은 끈끈했다.
심지어 선경은 장만호가 입원해 있는 동안 신포카의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며 수입을 벌기까지 했다.
그런 선경이 장만호에게 말한다.
“식구들과 김 오르는 밥상에 둘러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밥을 먹어 보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야”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몰려 온다고 했던가.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터지며 육체적 고통만큼 마음의 고통도 컸겠지만 그녀의 소원은 하나였다.
많은 돈도 아니고, 화려한 선물도 아닌 식구들과 김 오르는 밥상에 둘러 앉아 편하게 밥 한끼를 먹는 것.
대구 비산동의 공단 근처에 있어서 ‘공단숯불갈비’인 장만호의 가게에는 사람이 있었다.
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하지 정맥류를 참으며 주방을 담당하는 윤씨 아줌마가 있었고,
강간 비슷하게 당한 사건으로 인한 임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했지만 강퍅한 시어머니와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으로부터 딸을 데리고 도망친 정현수 아줌마도 있었고,
남편의 암 투병으로 전 재산을 날려 식당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전업주부였던 침산동 아줌마도 있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아들을 데리고 온 초로의 아버지가 있었고,
늘 혼자 와서 2,500원짜리 돼지갈비를 1인분만 시켜 먹어 선경과 윤씨 아줌마에의 불만을 가득 샀지만
불평없이 웃음으로 대한 장만호를 보고 한 달에 한 번씩 30명이라는 회식인원을 데리고 오는 시장의 아줌마도 있었으며,
공장의 다양한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랬다.
그 곳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큰 가게의 사람들에게는 사연이 없겠느냐만 깔끔하지 못하고 (더 정확하게는 지저분하고)
대신에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그 곳에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사연이 있었다.
비루한 가난함으로부터 생길 수 밖에 없는 그런 사연들.
남들처럼 보란듯이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들.
하지만 장만호의 아내 선경은 늘 목마름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오붓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장사를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가족이 함께 김 오르는 밥 상에 둘러 앉아
아무 걱정 없이 따뜻한 밥 한끼를 할 수 없다고.
다른 사람들이 먹는 밥과 고기를 그토록 팔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그럴 수 없다고.
그리고 그 가게에는 특별한 사람들도 있었다.
함께 노조 활동을 하다가 스님이 된 경우형, 이제는 스님이 된 도원 스님. 어느 날 소문을 듣고 느닷없이 장만호의 가게를 찾아 온 그는
스님이면서 고기와 소주를 먹고는 탱화를 그려주고 떠난다.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밥이 하늘이듯 그 밥을 먹는 사람이 바로 하늘이다. 한 그릇의 밥을 하늘처럼 섬기는 마음으로 장사는 절로 잘 될 것이다.
사람을 돈으로 보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늘처럼 모시는 마음으로 장사를 해.
그 마을 끝까지 잃는다면 네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또 한 사람.
장만호가 노조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그에게 ‘노동법 해설’이라는 책을 건네주며 교육을 시켜주고 그를 노조 활동의 세계로 안내했던,
장만호에게 있어 늘 우상이었고 선생님 같은 선배였지만
공장에서 퇴직을 당하고 노조 활동 이력이라는 주홍글씨 떄문에 다른 공장에 취직을 못한 채 공사판을 전전하는 황동하까지.
그런 황동하에게 장만호는 손을 내밀었다.
후식으로 ‘약차’를 제공하고, ‘라면보다 싼 돼지 갈비’라는 홍보 문구로 온 국민이 힘들었던 IMF 시절 오히려 대박을 낸 장만호는
사업을 키우기 위해 황동하에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민다.
이제 공사판을 그만 돌아다니고 함께 식당을 키워 전국적인 조직을 만들어 노조 활동을 지원하자고 자신이 늘 믿고 따랐던 우상이었던 황동하에게.
하지만 돈을 벌게 되자 황동하는 변했다.
노조 활동을 통해 가진자로부터 당하는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고자 했던 그의 정신과 삶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돈이 주는 쾌락에 중독되어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가 완전히 바뀐 채
장만호가 얘기한 노조를 후원하는 전국적인 조직은 더 이상 그의 이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프랜차이즈 지점 개설과 영업을 위해 언제나 밖을 돌아다니던 장만호의 등에 칼을 꽂고 만 것이다.
장만호가 채용한 직원을 그가 없는 사이에 자신의 사람으로 교체하거나 해고를 하는가 하면 프랜차이즈 상호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하여 장만호는 더 이상이 그 이름을 쓸 수 없게 된 것.
심지어 그는 장만호에게 회사를 떠날 것과 앞으로 다시는 돼지 갈비 사업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각서를 내밀기까지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어서 공장에 취직한 후 노조 활동을 하던 하던 장만호가
우연히 당한 교통사고로 프랜차이즈 회사의 사장님이 되었다가 가장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사람 인생 알 수 없다’라고 하는가 보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고 했나 보다.
자신이 하늘처럼 믿었던 사람에게 처절한 배신을 당한 장만호는 다른 사업으로 황동하를 보란 듯이 이겨 보겠다며
마치 무엇에 씌인 사람처럼 생활하다가 전 재산을 털어 시작한 오리 고기 가게가 갑자기 불어 닥친 조류 독감에 결정적인 타격을 받아
재기 불능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경은 이혼을 제안한다.
자신의 소원은 함께 김 오르는 밥상에 앉아 함께 따뜻한 밥 한끼 하는 거였다고.
그런데 지금까지의 장만호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리고 자살을 하기 직전 우연히 그 곳을 지나던 경찰에 의해 자살이 실패로 돌아가고
경찰이 사준 따뜻한 육개장 한 그릇을 먹으며 장만호는 밥 한 끼의 의미를 되돌아 본다.
이후 스스로 찾아간 도원 스님에게 소개 받은 식당을 운영하면서 장만호는 딱 네 가지의 메뉴만 준비한 채 장사를 한다.
따스한 밥 한 그릇.
따스한 국수 한 그릇.
따스한 국밥 한 그릇.
따스한 비빔밥 한 그릇.
그리고 장만호는 다짐한다.
나를 알던 이들이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식당,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주 오래된 식당의 주인이 될 거라고
장만호는 따뜻한 밥 한끼의 의미를 찾아 그토록 먼 길을 돌아온 것이다.
[삼시 세끼]라는 TV를 볼 때, 정선 편 보다는 만재도 편을 보면서 특히나 느꼈던 것은 한 끼의 의미, 그리고 그것이 주는 소중함 같은 것들이었다.
한 끼가 세 번 모여 세끼가 되니 그 밥 한끼를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리고 가끔씩 본가에 들르면 칠순이 넘은 어머니는 꼭 손수 지으신 따뜻한 밥 한끼를 내어주시며 먹고 가라고 하신다.
이제는 연세가 있어 힘드실까 봐 나가서 먹자고 해도 직접 지으신 밥과 소박한 밑반찬 몇 개와 막 끓인 된장 찌개를 내어 주시며 먹고 가라고 하신다.
그래, 어쩌면 어머니가 그렇게 하신 데에는 따뜻한 밥 한끼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가 느꼈었던 무언가의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깟 밥 한끼가 뭐라고.
그깟 따뜻한 밥 한끼라 대체 뭐라고.
그렇게 난 어머니가 해 주신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배부르게 집으로 돌아 온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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