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현실 공간이 아닌 온라인 상의 SNS란 것으로 옮겨졌습니다.
한 때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는 물론 사이월드의 ‘일촌’부터,
최근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인스트그램 ‘팔로워’로 이어지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가 변한 것인데요,
여기에는 우울하며서도 위험한 함정 (?)이 숨어 있습니다.
현실이 아닌 가상 공간에서 친구를 맺고 관계를 확장시켜가는 과정에서 친밀도 높은 서로 간의 관계가 아닌
‘팔로어 (친구)’와 ‘좋아요’라는 숫자에 집착하게 되면서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관심병’이라고 흔히들 부르는 뮌하우젠 증후군 입니다.
뮌하우젠이라는 사람은 18세기 독일 낭만주의에 흠뻑 물들어 있던 전형적인 한량 백작이었는데요,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자 여러가지 해보지도 않은 무용담을 꾸며냈는데 이를 흥미 있게 여긴 루돌프 라스페 (Rudolf Raspe)라는 사람이
그를 소재로 [허풍선이 뮌하우젠 백작의 놀라운 모험]이라는 이야기를 출간했고 이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
리고는 수많은 독자들의 과장이 덧붙여지면서 점점 더 황당무계하고 기기묘묘한 모험담으로 변모해갔습니다.
이후 영국의 의사였던 리처드 애셔 (Richard Asher)가 상당히 많은 환자가 의사의 관심을 받기 위해 병을 꾸며내고 있음을 밝혀내고
이를 뮌하우젠 증후군이라 명명하면서1 알려진 일종의 정신질환인데, 쉽게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관심병’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뮌 하우젠 증후군과 비슷한 심리적 질병으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허언증(mythomania)’이 있습니다.
‘공상 허언증’이라고도 불리는 이 질병은 단순히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거짓말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 병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TV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농담처럼 얘기하는 허언증은 본래의 의미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허언증은 심리학에서 리플리 증후군 (Ripley Syndrome)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심리적 질병도 있는데요,
1955년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 (The Talented Mr. Ripley)]의 주인공으로부터 유래된 질병입니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이 건설한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으면서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보통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거짓말을 일삼게 되고,
이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행동하게 되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상) 허언증과 일맥 상통합니다.
리플리 증후군은 SNS와 맞물려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을 포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현실과 그 욕구가 만든 자신과의 괴리가 커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잘 느끼는 사람이 SNS에 의존하게 되면
허구세계를 만들어 리플리 증후군을 겪게 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관계에 있어서 친밀도 보다는 숫자를 더 중요시 하게 되면서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포장하는 일이 많아지는데요,
최근에 SNS 스타로 유명한 호주의 에세나 오일이라는 여성이 ‘자신의 모습은 모두 거짓’이라며 그
와 함께 ‘소셜 미디어는 모두 거짓’이라며 탈퇴를 얘기하기도 했고,
SNS에서 인기 있는 사진들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글들이 화제를 모은 것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어떻게 SNS를 이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맨처스트 유나이티드의 전 감독인 퍼거슨은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SNS와 뮌하우젠 증후군을 소재로 한 스럴러 영화로 [소셜 포비아]가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기성 세대’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영화의 배경 자체가 현실과 온라인을 넘나드는데다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용어들도 ‘키워’ (키보드 워리어)나 ‘현피’ 같은
온라인에서 젊은 친구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인데요 일단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한 탈영병의 자살 소식에 남긴 악플로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며 실시간 이슈에 오른 익명의 여성 ‘레나’.
그녀에게 최근 온라인 상의 뜨거운 화두인 김치군과 된장녀 얘기가 오고 가며 온라인은 달아 오릅니다.
그리고 경찰 공무원 지망생 지웅(변요한)과 용민(이주승)은 인기 BJ 양게가 생중계하는 현피 원정대에 참여하는데
그들의 레나의 집을 방문 했을 때 그녀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고 비난의 화살은 순식간에 이들 원정대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그러자 경찰 공무원 시험에 불리한 기록이 남게 될까 불안한 지웅과 용민은 레나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하며
실제 범인을 잡아 비난에서 벗어나자며 현피 원정대와 함께 범인 찾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나씩 들어나는 실체는 오히려 용민을 범인으로 지목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인데요,
레나가 원래는 ‘베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상에서 활동했던 악명 높은 여성으로 그에게 ‘키워’ 맞짱을 떴다가
오히려 신상까지 털리며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던 사람이 상당수였고 그 중의 한 명이 ‘도더리’라는 닉네임을 쓰는 용민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용민은 레나 (베카)를 만나게 된 카페에서 자신을 서울대 출신이고 형은 하버드에서 공부 중이라는 등
자신을 과대 포장해서 소개한 부분이 베카에 의해 알려지면서 활동을 접고 은둔자의 삶을 살았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더욱 용민을 범인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영화는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앞서 얘기했던 SNS의 대표적인 폐해인 뮌하우젠 증후군을 그대로 담아낸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얼굴이 가려진 채 익명으로 소통하는 온라인 상에서 관심을 받기 위해 일부러 악플을 단다든지,
스스로를 과대 포장한다든지, 또 그런 내용들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확산되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없는 세상에서도, 휴대 전화가 없는 세상에서도 우리는 사람을 만났고 친구를 만났으며 우정을 나누며 관계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매개체는 술이 될 수도 있었고 함께 듣던 음악이 될 수 있었으며 함께 떠났던 여행이거나 함께 즐겼던 운동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빠르고 더 손쉽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요즈음에는 소셜 미디어라고 부르는 SNS를 제외하고 나면
딱히 매개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관계의 숫자는 더 많아졌지만 관계의 깊이가 없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이 외로워지고 그럴수록 반대로 스스로를 포장하면서 더 많은 숫자뿐인 관계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적으로 봤을 때 이 영화는 꽤나 탄탄한 구조를 가진 스릴러 물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 이전에 상업 영화를 감독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홍석재 감독은 젊은 나이답지 않게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을 선보였는데요,
무엇보다 '레나의 죽음은 타살'이라는 전제를 하고 그 정황과 증거들을 하나씩 끼워맞추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레나의 자살 현장에서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곧 자살할 사람이 세탁기를 돌리지는 않죠,
레나의 아파트는 2층처럼 보이지만 뒷 베란다로 통하면 범인은 현피 원정대가 오기 전에 도망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레나의 아파트 현관문이 열려있다는 점 등이 레나의 죽음은 타살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이야기의 시작부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타살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경찰 공무원 지망생인 지웅과 용민은 혹시나 시험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더더욱 이 사건을 타살이라고 주장하며
현피 원정대와 함께 진짜 범인을 찾아 나서는 것이죠.
사실 이런 방식은 '이것을 타살이다'라는 것을 밝혀 나가는 것보다 굉장히 치밀한 이야기 구조를 필요로 합니다.
'타살이냐 아니냐'를 밝히는 것은 수 많은 노이즈와 단서들로 충분히 이야기를 밀도있게 만들 수 있지만
'타살'이라고 전제를 한 후 그 범인을 찾아가는 것, 특히 이미 존재가 드러난 인물들 (이 영화에서는 현피 원정대)중에서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린다는 것은 등장 인물들 간의 관계와 각종 정황 증거들을 치밀하고 설계하지 않으면 자칫하면 어설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게 어설퍼 보이면 마지막 반전의 위력이 훨씬 약화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상업 영화로는 처음인 감독치고는 꽤나 훌륭하게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제 긴 이야기를 마무리 할까 합니다.
힙합 레이블인 일리네어 레코즈에서 발표하면서 유명해진 [연결고리]라는 노래에 ‘너와 나의 연결 고리’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매개체’라는 단어를 이들은 연결고리라고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제는 아무 의미 없는 숫자가 아닌
관계의 깊이를 더해주는 따뜻한 연결고리인 매개체를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Leggie...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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