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인듯 아닌듯 한 앞 글들에서 사이코 패스에 대해 살펴봤다면 이번엔 소시오 패스를 다룬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를 살펴볼까 합니다.
아무래도 소시오 패스는 사이코 패스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함께 얘기하면 더 이해가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박찬욱 감독 특유의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바탕에 깔고 있으며
그 위에 [양들의 침묵]처럼 다양한 상징을 얹어 놓은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들의 침묵]처럼 보는 사람들에 따라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본인의 18번째 생일에 갑작스레 사망한 아버지 리차드의 장례식에 생전 알지 못했던
삼촌 찰리가 인디아의 집으로 찾아오자 인디아는 당황스러워합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장례식 후 찰리가 집에 머물며 엄마 이블린과 테니스도 같이 치고 쇼핑도 함께하는 등
다정한 시간을 보내며 가깝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며칠도 안 돼서 말이죠.
아버지가 죽기 전 인디아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사냥을 나가는 등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에 엄마와 삼촌을 보며 인디아는 굉장히 불편해합니다.
하지만 그런 인디아와는 상관없이 이블린은 어느 순간부터 찰리를 더 이상 시동생이 아닌 남자로 생각하게 됩니다.
반면 찰리는 이블린뿐 아니라 인디아에게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그녀를 데리러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로 찾아가거나 동급생인 윕으로부터 위험한 순간에 처했을 때 갑자기 등장하여 그녀를 구해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디아는 삼촌 찰리가 가정부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는가 하면
아버지의 죽음을 위로하고자 오랜만에 찾아온 고모 할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한편, 찰리의 이런 모든 행동은 형 (인디아의 아빠)이 죽기 전에 마련해준 뉴욕의 아파트로 인디아와 함께 둘이 떠나기 위해서였는데요
처음엔 거부감이 심했지만 한 집에서 시간을 계속 보내면서 자기도 모르게 찰리에게 끌리게 된 인디아는 그런 찰리의 요구에 응하고 맙니다.
하지만 함께 집을 떠나기 직전 찰리가 엄마인 이블린을 죽이려 하는 상황에서 총을 쏴서 찰리를 죽이고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언뜻 보면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지루할 수 있는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영화의 곳곳에 숨겨진 장치들을 알아야 하는데 지금부터 그것들에 대해 풀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찰리가 소시오패스라는 점, 그래서 소시오 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앞에서 언급한 사이코패스와 차별화되는 소시오 패스의 가장 큰 차이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교감이 가능하고 목표를 위해서는 타인의 감정을 이용할 줄도 알기 때문에
소시오 패스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겉으로 봤을 땐 굉장히 멀쩡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었는데요,
찰리는 정확하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역할입니다.
①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시종일관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장례식 추도 모임에서 형의 사망 소식을 듣고 유럽에서 급하게 귀국했다는 거짓말을 본인 입으로 얘기하면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뿐 아니라 이블린과 인디아에게도 신뢰를 심어 줍니다.
또한 가보지도 않은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웠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이 모녀는 찰리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보여주는 모습대로 그녀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편을 잃은 상실감에 빠진 이블린과 쇼핑도 함께 하고 테니스도 치는 등 여가 활동도 함께 하는가 하면
시종일관 매너 있는 행동으로 그녀를 대하며 그녀의 환심을 삽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한 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을 함으로써
겉으로 봤을 때는 멀쩡한 사람으로 보이는 소시오 패스의 성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② 목표 달성을 위한 장애물은 과감히 제거한다.
찰리는 ‘여태까지 당신의 손발 노릇을 해왔지만 더 이상은 나도 힘들다’라는 얘기를 하는 가정부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합니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을 죽인 것이죠.
또한 자신의 소시오 패스 성향을 알고 있는 인디아의 고모 할머니 역시도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 버리는데
그녀가 비밀을 이블린과 인디아에게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한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행동을 하는데 역시나 소시오 패스의 전형적인 성향입니다.
③ 찰리는 관심을 받고 싶어 했다.
어린 시절, 찰리는 형이자 인디아의 아버지인 리차드가 자신보다는 이제 막 뛰어다닐 수 있는 있는 나이가 된
막내 동생 조나단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관심을 쏟자 리자드의 관심을 얻기 위해 친동생인 조나단을 산채로 모래 구덩이에 묻어 버립니다.
또한 그가 인디아의 아버지인 리차드를 살해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 기증한 병원에 스스로 들어가 몇 년을 지낸 찰리를 리차드가 뉴욕으로 보내 혼자 살게 하려고 하자
자신과 피를 나눈 사이인 형과 그의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상실감에 그를 죽이고 만 것입니다.
자신에게 따뜻한 관심 대신 외로움과 상실감을 주려 한 대상을 살해한 것인데요,
‘성장 과정에서의 환경적 요인이 더 많이 작용된다’라는 소시오 패스가 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을 혼자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해서
나에게 외로움과 상실감을 주는 사람을 제거하려는 단계까지 이른 것입니다.
이런 소시오 패스 성향을 지닌 인물을 표현함에 있어 박찬욱 감독은 관객들을 향해 몇 가지 덫을 놓습니다.
인물을 너무 직선적으로 표현하면 재미없다고 생각해서였는지 관객들로 하여금 오해를 할 수 있는 장면들과
또 그 안에 몇몇 암시들을 숨겨 두었는데요 이번에는 그 내용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찰리의 목표가 이블린인 것처럼 보여지도록 초 중반에 장치를 걸어둔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블린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이블린으로 하여금 자신을 좋아하도록 한 것인데요
특히 인디아까지 셋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와인을 마시며 ‘어린 와인과는 비교할 수 없죠. 풋내가 나서.’라는
이블린을 유혹하는 듯한 말을 통해 인디아의 질투도 동시에 유발합니다.
두 번째로는 영화의 중반 이후 인디아가 점점 찰리에게 동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찰리를 가운데 두고
모녀 지간인 ‘이블린 vs 인디아’라는 대결 구도를 보여 주는데요, 즉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활용하여 엄마와 딸이
한 남자를 두고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입니다.
함께 뉴욕으로 가자는 찰리의 제안에 짐을 꾸린다거나 행방불명된 (찰리에 의해 살해된) 윕의 행적을 찾기 위해
집으로 찾아온 경찰에게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하는 인디아의 행동, 생일 선물로 단화가 아닌 성인으로써의 여자를 상징하는
하이힐을 선물하며 직접 인디아에게 신겨주는 모습을 보며 질투를 느껴
인디아에게 ‘개인적으로 난 네 삶이 파괴되는 걸 빨리 보고 싶어’라고 하는 이블린의 대사들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인디아는 찰리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등장한 날부터 그를 불편해했으며 그가 가정부와 고모 할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를 경찰에 신고하려고까지 했습니다.
즉, 어떻게든 그를 주위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를 없애려는 마음을 이미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인디아의 마음은 영화 중간에 나오는 그녀의 대사에서도 등장합니다.
우선 인디아가 이블린의 머리를 빗겨주면서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나갔었을 때를 얘기하는 장면에서
목표물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을 때까지 5시간 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침묵과 긴 기다림을 필요로 했던 경험과
‘때로는 나쁜 짓을 해야 더 나쁜 짓을 안 하게 된다’라는 리차드가 해준 얘기를 이블린에게 들려준 것입니다.
언뜻 보면 “대체 이 상황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이 장면은 인디아가 찰리를 없앨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즉 찰리라는 ‘목표물’을 정확히 사냥할 수 있을 때까지 그와 동화되어 가는 척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린 것이죠.
그리고 그를 죽인 것은 더 나쁜 짓, 즉 엄마인 이블린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디아가 찰리를 죽일 것이라는 암시는 영화의 초반 부에 등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침대 위에서 시계의 초침 소리에 따라 양 팔과 다리를 휘젓는 장면인데,
이 모습은 어린 시절의 찰리가 동생인 조나단을 모래 구덩이에 파묻은 후 그 위에서 했던 행동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에
이 동작은 살인을 의미하는 것이고, 같은 동작을 인디아가 했다는 것은 찰리를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찰리뿐 아니라 인디아 역시도 소시오 패스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상대방의 감정을 이용하고 때를 기다려 결국은 목표를 달성하고 마니까요.
이 외에도 박찬욱 감독은 다양한 상징을 영화에 숨겨 두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찰리가 지속적으로 착용하면서 살인의 도구로 사용했던 리차드 (인디아의 아버지)의 벨트는
인디아로 하여금 자신과 아버지를 동일시하도록 하여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도록 한 것이지만
-실제 인디아가 윕에게 위험한 순간을 당했을 때 그 벨트로 윕을 죽이고 인디아를 구하죠-
인디아는 오히려 자신과 아버지의 특별함을 상징하는 벨트를 찰리가 쓰는 것을 못마땅해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보면 인디아가 아버지의 벨트를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죠.
그리고 찰리가 소시오 패스긴 하지만 소아성애자가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인디아가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와인을 마셔보라고 권하는가 하면 늘 신고 다니던 단화 대신 하이힐을 선물로 주는 장면,
윕을 죽이고 그를 파묻을 때 인디아에게 삽질을 하라고 하는 장면 등을 배치했는데요
미국은 열여덟 살이면 성인 취급을 해주기 때문에 ‘너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얘기해주는 장면입니다.
여기까지 [추격자], [오피스], [양들의 침묵] 그리고 [스토커]를 활용해 마치 시리즈처럼 사이코 패스와 소시오 패스에 대해 긴 얘기를 했는데요 이제는 제가 영화까지 동원해서 이 얘기를 한 이유를 정리해 볼까 합니다.
제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리고 여러 영화를 통해 얘기한 것처럼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 패스 성향은
오롯이 개인의 자발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작게는 가족부터 크게는 우리 사회로부터의
무관심과 왕따로부터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따뜻한 배려를 보인다면 사이코 패스와 소시오 패스는 현저히 줄어들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요즘의 우리는 여러 가지로 점점 더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안 좋아지니까 취업도 어렵고 그러다 보니 먹고사는 것 자체가 어려워져 모두가 각박해졌습니다.
아니, 각박해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나의 생존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접하게 되는 뉴스들은 돈 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욕심에 관한 것들이거나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돈 잘 쓰는 사람들의 얘기로 가득하니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처한 상황에 대해 스트레스 받는 것을 넘어 신세한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화와 울분이 안으로 자꾸 쌓이다가 한 순간에 폭발하면서 묻지마 폭행과 묻지마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인데요.
다시 말하면 잠재적인 사이코 패스 혹은 소시오 패스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 주변에서 계속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 전체가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이상의 묻지마 폭행이나 묻지마 살인 혹은 지극히 잔인한 연쇄 살인범들의 출현을 막기 위해,
그리고 주변에 관심과 배려를 쏟을 수 있는 여력을 갖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또 그 안에서 각 개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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