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국내 영화 감독 중 이 감독의 영화는 꼭 본다’라고 하는 감독이 두 명 있는데 한 명이 최동훈 감독이고 또 한 명이 류승완 감독입니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을 통해 다양한 장르, 하지만 제대로 된 오락 영화를 만들어 온 최동훈 감독은
이야기 전개의 짜임새를 통해 몰입도를 증폭 시키는 데에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 [짝패]라는 영화를 통해 ‘한국형 액션’의 붐을 만들어 냈던 류승완 감독 역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리], [주먹이 운다], [부당거래], [베를린]과 같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재미와 함께 메시지도 전달하기도 하는 감독인데요.
최근에 두 감독이 정면 대결을 펼쳤습니다.
최동훈 감독은 [암살]이라는 시대극으로,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이라는 오락 영화로 맞붙었었는데요, 누가 이겼는가라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이
두 감독 모두 천만 관객을 넘기면서 2015년 대표적인 흥행 감독이자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습니다.
특히 최동훈 감독은 시대극 (역사물)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에도 성공하며 또 한 번 마이다스의 손이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제가 본 영화는 [베테랑]인데요, 지금부터 그 얘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국내 굴지의 재벌 신진그룹의 서자 조태오 (유아인). 본처가 아닌 후처 혹은 밖에서 낳아 온 아들이라 정통성이 없는 조태오는
이런 본인의 약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안하무인으로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마약을 하기까지 하는 등 망나니 중에 개 망나니처럼 살아 갑니다.
다른 건 몰라도 ‘가오’까지 떨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찰 서도철 (황정민)은 유쾌 발랄하지만 원칙과 정의를 소중히 여기는 경찰로
오팀장 (오달수), 미쓰봉 (장윤주), 왕형사 (오대환), 윤형사 (김시후)와 한 팀에 속해 있습니다.
어느 날 화물기사 배씨는 일은 시키고도 돈을 제대로 주지 않는 신진그룹 본사에서 꼬마 아들과 1인 시위를 하는데
마침 그 현장을 본 조태오는 비서실장이자 사촌 형인 최실장 (유해진)에게 방으로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 신진그룹의 하청 일을 받아 다시 배씨에게 일을 준 중간업체 사장 전소장 (정만식)도 등장하는데요,
이 상황에서 조태오는 비상식적이면서도 비정상적인 제안을 합니다.
배씨가 전소장과 글러브를 끼고 싸워서 이기면 못 받은 돈을 주겠다는 것인데요,
어린 아이 앞에서 할 짓이 아니라고 판단한 배씨는 거부하지만 재벌 3세의 입김을 두려워한 전소장은
먼저 글러브를 끼고 무방비 상태인 배씨에게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퍼붓습니다.
물론 함께 있던 배씨의 아들은 보고 싶지 않고 어린 마음에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자신의 목과 고개를 꽉 쥐고 시선을 고정시켜 억지로 볼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조태오 때문에 울면서 그 광경을 다 볼 수 밖에 없었고요.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한 배기사에게 조태오는 밀린 돈 외에 치료비 등의 명목으로 몇 천 만원을 주지만 모욕감이 앞선 배기사는
아들을 택시 태워 먼저 보내고 다시 조태오의 방으로 찾아 갑니다.
하지만 조태오의 폭력에 목숨을 잃게 되는데요, 조태오 일당은 배기사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하고 위로금을 유가족에게 전달하며 입막음을 하려 합니다.
그런데 배기사의 아들에게 아버지가 폭력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서도철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이 영화의 핵심 줄거리는 바로 이 과정을 그려 내는 데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아쉬웠던 점 한 가지와 괜찮았던 점 한 가지씩을 가질 수 있었는데요, 먼저 아쉬운 점으로는 유아인의 연기였습니다.
스스로도 [베테랑] 촬영 당시 다른 영화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배역에 몰입하기 어려웠다고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유아인이 연기한 망나니 재벌 3세라는 캐릭터에 공감을 얻거나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그 정도로 망나니처럼 사는 재벌 3세는 없다고 보기 때문에 조태오라는 캐릭터의 설정 자체가 어색했지만
그것은 각본의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우선 그의 목소리 톤이 영화의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어울리지 않았고,
표정 연기 역시도 이 역할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딘가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자신의 회사 광고 모델이자 스쳐 지나가는 연인 다혜 (유인영)를 폭행하거나 하대하는 모습들은 너무도 어색해서 개운치 않았습니다.
[완득이]의 유아인에게서는 그런 느낌을 전혀 가질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유아인이 이런 역할에는 어울리지 않거나
아니면 본인이 얘기한 것처럼 동시에 다른 영화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 집중이 안 됐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만,
후자의 경우 그것은 배우 본인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괜찮았던 점으로 생각한 부분은 명동 한복판에서의 액션 씬입니다.
서울의 가장 중심인 명동에서의 자동차 추격장면, 서도철과 조태오의 격투 장면은 우리 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들이라 더욱 실감났는데요,
사실 명동에서의 액션 장면을 처음 담은 영화는 [퀵]이었습니다.
[퀵]을 보면서 이제 우리 나라도 누구나 오고 가는 거리에서도 이런 액션 장면을 담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베테랑]은 그것을 뛰어 넘는 실감나는 액션을 명동에서 담아냈기 때문에 더욱 볼만했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며
‘역시 류승완’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자본주의가 낳은 새로운 신분제에 대한 통쾌한 복수’로 묘사합니다.
영화 자체의 줄거리가 그렇다 보니 당연한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시원한 오락 영화 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가 재벌 3세를 만날 일도 없고, 그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기 때문에
사실 조태오라는 캐릭터를 쉽게 실감할 수 없을 뿐더러 조태오가 꼭 재벌 3세가 아니더라도,
이를테면 조직폭력배의 보스 역할이라도 이 영화는 비슷한 내용을 담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조태오라는 캐릭터와 유아인의 연기에 공감하거나 몰입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감독의 전작 [부당거래]와 직접 비교를 해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검사와 경찰, 그들의 은밀한 거래와 경쟁 혹은 공생 관계에 대해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야기 자체에 초점을 맞춘 채 하나씩 그 베일을 벗겨 냅니다.
검사도 악이고 경찰도 악입니다.
당연히 액션도 없습니다.
검사와 경찰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최소한 한 번은 만나게 되는 존재이며, 그래서 더 현실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테랑]의 흥행이 [부당거래]의 5배나 된다는 것은
확실히 다양한 액션이라는 볼거리와 요소요소에 걸쳐 있는 코메디 같은 오락성 때문이며
현실 세계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내용을 류승완 감독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선과 악이라는 구도로 담아낸
‘류승완이 가진 힘’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황정민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입니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몇 몇 사실 때문에 사실 황정민이라는 배우는 ‘진실성’이 없는 배우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진실성이 없는 배우가 하는 연기도 그 배우 자체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이 영화를 보면서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의 연기에는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입견을 가진 채로 영화를 보면서도 몰입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의 연기는 진실성이라는 단어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의 연기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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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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