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혹은 지구 멸망을 소재로 한 영화는 꽤나 많이 있습니다.
소재로 보면 자연 재해나 외계인 침입, 혹은 바이러스에 의한 것처럼 다양할 수 있겠지만
내용 적으로는 크게 보면 그것이 멸망 과정을 다룬 것이냐 멸망 이후를 다룬 것이냐의 차이일 뿐인데요.
[나는 전설이다], [애프터 어스]와 같은 영화들이 멸망 후의 모습을 다루었다면
[2012], [딥임팩트], [우주전쟁] 같은 영화들이 멸망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의 공통점들은 바로 ‘헐리웃’ 영화들이라는 점인데요,
아무래도 인류의 멸망을 소재로 하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규모 (스케일)이 커질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엄청난 금액이 자본이 투여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브루스윌리스 주연의 오래 전 영화 [아마게돈]만 보더라도 엄청난 자본이 투여됐음을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봉준호 감독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합니다.
2004년 홍대 앞 만화가게에서 우연히 접한 프랑스 만화 ‘Transperceneige’에 반한 그는 당시 [괴물]의 프리 프러덕션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찬욱 감독과 이태헌 대표(현 오퍼스픽쳐스 대표)에게 역으로 제안해, 그 두 사람이 만화의 판권 구입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는데요,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이라면 헐리웃의 지구 멸망 영화처럼 천문학적 규모의 제작비가 투여되지 않아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라도 쉽게는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요.
물론 결과는 450억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되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설국열차는 두 가지 부분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첫 번째는 기후 변화로 인해 혹독한 빙하기에 접어든 지구에서 마지막 남은 인류를 태운 기차가 멈추지 않고 끝없이 달린다는 것,
두 번째는 그 기차 안에서 신분에 따라 타는 위치가 정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설국열차의 제작자이자 회사 사장인 윌포드는 가장 앞 칸, 그 뒤가 기차 운영자 (국가의 고위 공무원과 같은)들과 돈 많은 사람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양갱 같은 것이 배급품으로 주어지는데 만족해야 하는 이른바 천민들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대립구조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겠지만, ‘꼬리 칸의 사람들 vs 호의호식하는 앞칸 사람들’입니다.
즉, 좋은 것만 먹고, 문화 생활을 즐기며 좋은 교육을 받는 앞칸 사람들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는 꼬리 칸 사람들이
더 이상의 차별대우를 참지 못하고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며 앞칸으로 무력 전진하는 하는 것이 줄거리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민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또 다른 계급 사회,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자본주의의 약점 등에
얘기하며 이 영화가 그런 것들을 지구 멸망을 배경으로 잘 풀어 냈다고 얘기하는데요, 개인적인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 영화의 어딘가에 보면 꼬리 칸 사람들은 사실 이 기차로 인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 대화가 나옵니다.
즉, 빙하기에 접어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사를 하는 상황에서 이 기차는 그들에게 얼어 죽지 않을 공간을 제공해주는,
이른바 자비를 베풀었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매일 같이 단백질 막대기 같은 식량을 주기까지 합니다.
물론 영화 후반부를 보면 그 먹을 것이 바퀴벌레를 갈아 만든 것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먹을 것도 주고, 살 곳도 주었는데
먹고 살만하니 더 좋은 것과 더 좋은 환경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사실 이 기차는 그들, 꼬리 칸 사람들을 굳이 태우지 않았어도 상관없었습니다.
그저 자기들끼리 호의호식하며 기차 안에서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는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이제 와서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앞칸 사람들을 나쁜 놈으로 몰아 봍입니다.
이 것은 노숙자에게 최소한의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하고 나니 그 노숙자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인 것이죠.
만약 처음부터 동등한 입장에서 기차를 타게 됐다면 모를까 이 영화의 기본 전제 자체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꼬리 칸 사람들의 ‘저항’을 ‘폭동’으로 묘사하고 싶습니다.
어찌 됐든 꼬리 칸 제일 앞칸까지 가는데 성공합니다.
기차를 탈취하는 데는 실패하고 기차는 폭발하고 맙니다.
최후의 생존자 두 명은 요나 (고아성)와 유치원 나이쯤 되어 보이는 흑인 남자 아이 단 두 명인데요,
결국 이 두 사람이 인류를 다시 재건해야 하는 임무를 맡으며 영화는 마무리 되는데
개인적으로 17살의 동양 여자와 6살쯤 되어 보이는 흑인 남자 아이가 인간이라는 종족을 번식시켜야 하다니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에 대한 상상으로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크리스 에반스,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에드 해리스 같은 유명한 외국 배우들이 출연하고
그러다 보니 대사의 80% 이상이 영어이다 보니 감독만 한국의 봉준호일 뿐 그냥 헐리웃 영화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만 250개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었는데,
물론 해외에서는 약 450만~500만 달러의 수익 정도 밖에 내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지만 표현하기 쉽지 않았던 것들을 엄청난 상상력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했다는 점,
450억원이라는 제작비와 무려 5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기차 세트, 1년 3개월이라는 프리 프러덕션 기간, 200여명의 해외 스태프들까지.
봉준호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운영하여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가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던 영화 [설국열차]였습니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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