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인 1991년. 그는 야구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6,7년 계획으로 갔는데 SBS에서 해설위원 제안이 왔고 고민을 하다 '결국 미국만 공부인가 생각'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귀국해서 야구 해설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최동원은 전혀 다른 방향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당시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다고 떠들던 김영삼이 대통령 한 번 돼보겠다고 정 반대의 길을 걸어 온 노태우, 김종필과 야합하자 그 사실에 동조할 수 없었던 노무현이 분당하여 만든 민주당에 입당, 14대 총선에서 광역의원에 출마한 것이지요.
사실 부산이라는 지역만 놓고 봤을 때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으로 출마했다면-실제로 중고등학교의 대선배인 김영삼이 최동원을 좋아해 민자당에서 요청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선이 쉽게 될 수도 있었겠지만, 부산일보 성금 전달, 선수협 창립 등과 같은 그의 성격으로 봤을 때 민주당에 입당하여 출마한 것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그의 구호가 '민주자치를 위한 선발투수, 건강한 사회를 향한 새 정치의 강속구'였는데 그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음에도 6천여 표 차이로 낙선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팬들은 말이 많은데 정치 이야기 하려는 공간이 아니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업을 하게 됩니다.
골프웨어 수입이었는데 본인 말로는 사회를 알고 싶어 성공이나 실패에는 관심 없이 경험을 쌓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존심이 센 최동원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 말을 100% 믿을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사업이 망하면 벌어 논 돈 따 까먹는 건 둘 째 치고 빚을 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세상 어느 누가 성공과 실패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최동원의 사업이 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95년 초의 한 인쇄 광고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백인 여자, 흑인 여자, 백인 아이의 뒷모습을 올 누드로 찍었었는데 항의 및 비난 전화가 하도 많이 와서 사업을 접었다고 합니다.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이지요. 더구나 광고모델이었던 골프선수 페인 스튜어트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 불운까지 겹치면서 사업은 문들 닫게 됩니다.
이후 그는 각종 TV 오락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비추다가 2001년 한화 이글스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시 야인으로 돌아왔고, 2005년부터 당시 한화 감독이었던 김인식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에서 2년간 투수코치, 다시 2007년부터 2년간을 한화 2군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하게 됩니다.
그가 현장에 복귀할 때 주변에서는 과연 강성 이미지와 독불장군의 성격을 가진 최동원에 대해 코치 자질에 대한 의문이 많았으며, 특히 본인이 대 투수였기 때문에 과연 후배들을 따뜻하게 가르칠 수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김인식 감독 인터뷰를 보면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후배들을 가르칠 때는 한 없이 따뜻하게 가르치는 것을 보고 주변의 이미지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인간 최동원은 전형적인 외강내유의 성격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코치시절 류현진의 구속이 그의 지도를 통해 5km나 늘어난 것에 대해 자신은 밸런스를 잡는데 약간의 도움만 줬을 뿐이라며 류현진의 뛰어남을 칭찬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1년 7월 22일 목동 야구장에서 펼쳐진 '레전드 리매치, 경남고 vs 군산상고' 경기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최동원은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었습니다.
2010년부터 대장암을 앓아왔었고 장기간 항암치료를 받아왔기에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는데요, 동생 최수원 씨의 말을 빌면 당시 건강 때문에 최동원이 경기장에 나가는 것을 극구 만류했지만 최동원이 마지막임을 직감했는지 고집을 꺾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당시 그의 모습을 보고 많은 야구팬들과 최동원의 팬들이 걱정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다이어트로 필요 없는 살을 빼서 그렇다'라고 한 것을 보면 지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 듯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때까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배신한 롯데 감독에 대한 미련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뒤인 2011년 9월 14일, 대한민국을 평정했던 대 투수 최동원을 그렇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은퇴했을 때의 나이가 불과 32살이었으며 향년 53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천재는 신도 질투하여 생을 일찍 거두어간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기도 하네요.
사실 최동원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마 시절은 물론 프로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김봉연이 그를 회고하면서 "대학교 때 그렇게 권해도 술 한 잔, 담배 한 모금 하지 않았던 친구였는데…"라고했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했으며 밤 10시 취침, 아침 7시 기상을 철칙으로 삼았고 채식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고기도 거의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 인생을 왜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하는지 알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그는 롯데를 떠난 후 롯데는 한 번도 그에게 손을 내민 적은 없었지만 그는 언제나 롯데를 그리워 했으며 병상에 누워서도 롯데를 사랑했습니다.
한 기사를 보면 최동원의 어머니 김정자 여사가 20년 넘게 보관하고 있는 500여장의 엽서를 보면 앞면엔 공을 들고 웃고 있는 최동원 사진, 뒷면엔 롯데 자이언츠 11번 최동원 드림이라고 되어 있다고 합니다.
1980년대 중반, 최동원이 최고의 스타였던 그 시절 만든 엽서들인데 기념으로 몇 장도 아닌 500장이나 보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김정자 여사는 "이 엽서들은 아들이 언젠가 롯데에 돌아오면 팬들에게 사인해서 나눠주려고 아껴뒀던 것들이다. 아들이 갑자기 돌아와 '어머니, 엽서 어디 있어요' 하고 찾을 것 같아 버리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17일 전인 8월28일, 마지막으로 병상에서 다섯 개의 공에 사인을 했는데 휴가 나온 아들 최기호 씨가 근무하는 부대의 동료들이 그의 팬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최동원은 그들에게 사인볼을 주고 싶다고 우겼고 펜을 쥘 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억지로 벽에 기대 앉아 앞·뒷면에 정성껏 사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사인볼 앞면에 '11.8.28 최동원'이었고 뒷면에는 흘림체로 서명을 하고 'No.11'이었는데요, 롯데 유니폼을 벗은 지 23년이 지났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번호가 11번이라 믿고 그렇게 자신을 증명하는 두 가지 상징을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인 볼 중 세 개는 아들이 가지고 들어갔고, 하나는 어머니가 또 하나는 동생이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최동원을 롯데는 끝까지 못 본체 하다가 그가 세상을 뜨고 나서야 영구 결번을 하네 행사를 하네 염병을 떨었습니다.
그래서 최동원 사후에 그에 대한 추모 열기를 어떻게든 자기네 이익으로 연결하고 했었지요. 그래서 제가 롯데라는 기업을 싫어합니다.
단지 야구 구단 운영에서 뿐 아니라 기업 운영에서도 롯데는 자신이 어려울 때 도와줬던 사람들을 가차없이 내치는 걸로 유명합니다. 신문기사 찾아보면 롯데월드 입주자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최동원은 좋은 일도 많이 했습니다.
1984년 정규시즌 MVP로 선정돼 받은 레코드 로열 XQ 승용차를 그 자리에서 방위성금으로 내놓았고 겨울이면 익명으로 트럭에 연탄을 실어 부산시에 보내곤 했는데 동생 최수원 씨에 의하면"형은 '부산 팬들이 나를 아껴줘서 내가 이만큼 컸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형이) 남몰래 한 일인데 내가 뒤늦게 이런 얘길 하는 게 잘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망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은퇴 후 2009년에도 부산 사직구장에 자신이 수상했던 각종 트로피·메달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니폼·기념구·글러브·모자 등을 기증했고 그 물건들은 오늘도 사직구장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최동원을 기리기 위해 최동원 (사)최동원 기념 사업회 (이사장 권기우)는 2011년부터 부산은행·BN그룹은 물론 전국의 야구팬들로부터 기부금을 모아 동상 제작비 1억 원을 마련하여, 2013년 9월 사직 구장 앞 광장에 최동원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사이영상과 일본의 사와무라상처럼 '최동원 투수상'을 제정해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이미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 야구 원로인 천일평 OSEN 편집인,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 허구연 MBC 해설위원, 선동열 기아 타이거즈 감독이 최동원 투수상 선정 위원직을 수락했고 최동원 기념 사업회 이사이기도 한 양상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을 보면 한국의 '사이영상'을 제정할 때 어떤 투수 이름으로 해야겠느냐를 놓고 팬들 사이에 다양한 얘기가 오고 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최동원 상'을 적극 지지합니다.
제가 아무리 1982년부터 타이거즈 팬이어도 이 것만은 최동원 상을 지지합니다.
박철순, 선동렬, 송진우, 박찬호 같은 엄청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前 선수들도 있지만 배짱, 구위, 실력 등을 전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 최동원 만한 선수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방금 이름이 언급된 사람들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로에서 은퇴할 때까지 최동원만큼 혹사 당했다면 과연 그들이 남긴 기록들을 남길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답은 최동원 밖에 없습니다. 앞서 제가 써온 포스팅을 보면 그 이유를 명백히 알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그가 혹사를 당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에 대해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몇 년 전 그것에 대해 최동원이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 상황에 다시 그렇게 던지라고 하면 던지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그 상황이 다시 반복된다 해도 던질 것'이라고 할 정도로 팀을 생각하고 또 그만큼 자신감이 충만했던 최동원.
오른손에 송진을 묻힙니다. 그리고는 유니폼 하의 발 고리 양쪽을 한 번씩 튕기고는 오른 손을 벌려 안경을 살짝 올립니다.
마운드에서 언제나 똑같이 반복되던 최동원의 투구 전 동작입니다. 이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지기 싫어했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뛰어난 실력에 더해진 자신감으로 평생동안 마운드를 호령했던 최고의 투수, 최동원.
그는 언제나 저의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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