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존칭 생략)본 포스팅은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토대로 종합하여 제가 정리하였고 마지막 편에 출처를 한 번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혹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같은 해 (197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에 등판한 최동원의 기록은 전년도에 이어 해외에서도 '혹사'를 끊을 수 없는 그의 운명을 보여줍니다.
대회 내내 좋은 투구를 보이던 최동원이 마지막 쿠바전에서 참혹한 결과는 만들어 낸 것에 대해 어떤 분은 이 대회 직전 네덜란드에서 열린 할렘 국제 야구대회에서 쿠바를 만나 3이닝 무실점으로 막았기 때문에 최동원이 쿠바를 얕본 것이 아닌가라고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9월 5일을 빼고는 매일 등판하여 선발로 나서면 완투, 구원으로 나서도 1이닝 던진 것은 한 번이고 최소 3이닝에서 길게는 5.1이닝까지 던졌으니 준결승까지 7경기에서 36.1이닝을 던진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산술적으로 보면 경기당 5이닝을 살짝 더 던진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매일 던진 것이라는 점 (요즘 프로야구에서 매일 5이닝을 던진다고 생각 해보시면 이 기록이 혹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미 국내에서 혹사 당할 대로 당한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동원의 등판은 심하다고 해다 상관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쿠바 전에서 떨어진 체력, 팔꿈치-어깨-무릎 등의 이상으로 2이닝만 던진 채 강판 당하게 되었다고 생각 됩니다.
그리고 결승전 후 당시 김응룡 감독이 '믿었던 에이스 최동원에게 건 기대가 너무 쉽게 무너졌다'라는 인터뷰를 했는데 그럴 거면 혹사를 시키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때는 김용룡 감독도 젊었던 시절이라 혈기 왕성한 마음에 그렇게 얘기했을 수도 있고 또 기자들이 일부러 그렇게 편집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2013년 한화의 송창식 투수가 정말로 '노예' 수준으로 혹사를 당했는데 문득 78년 세계 선수권 대회의 최동원이 떠오르네요.
어쨌든 나중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시합에 나가 '던지지 않았다'고 했던 날은 거의 없었다. 그 말이 없으면 던지고 온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투수들이 매일 던지는 줄 알았다"고 회상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많은 공을 던졌는지 또 얼마나 대단한 투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때 최동원에 대해 재미있는 일이 하나 생기게 됩니다. 바로 그의 직구 구속에 관한 것인데요 최동원의 구속이 150km도 안 된다, 150km를 넘는다 말이 많았는데 잠시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최동원 본인에 의하면 그의 최고 직구 속도는 157km라고 하는데 그 기록이 바로 이 대회 (1978년 세계 야구선수권 대회)에서 나온 기록입니다. 나중에 그의 인터뷰 기사를 잠깐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국내에서 잰 것이 아니라 세계대회 때 이태리에서 잰 기록이 157km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대회 참가했던 쿠바도 인정한 것을 보면 사실로 보여집니다.
1980년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당시 쿠바의 신문기사에 최동원을 '수퍼 소닉'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는데요, 쿠바에서는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를 '수퍼 소닉'이라고 불렀으며 그 때 쿠바 투수 중에는 160km를 던지는 투수도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최동원을 그에 준하는 투수로 평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동원의 직구 구속에는 말들이 많은데 그 부분도 살펴 볼까 합니다.
1979년 어떤 신문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 신문에 '최동원 140km, 박철순 135km, 양상문 132km'라는 부분이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다른 기사에는 박철순이 139km를 던졌다는 기사도 있고, 1981년에는 최동원의 스피드가 145km라는 기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상한 것이 어떻게 2년이 지났는데 구속이 더 빨라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전 기아 투수 윤석민처럼 고등학교 입학 때보다 졸업 때가 구속이 훨씬 빨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미완성의 선수가 많은 훈련을 하고 코치의 도움을 받아 폼도 연구하고 하면서 점점 성장해가는 시기에나 있을 일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같은 폼으로 주전을 뛰며 수 많은 공으로 수 많은 이닝을 던지며 혹사당한 에이스 투수가 2년 뒤에 직구 구속이 더 빨라진다는 것인 상식적으로 조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5km라니요. 직구구속을 5km 빠르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야구팬들이라면 다 아실 겁니다.
문제는 스피드 건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79년 구형 스피드 건이 1982년에 신형 스피드 건이 들어 왔다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도 1980년을 전후해서는 구형 스피드 건을 썼는지 원조 괴물투수였던 에가와 스구루의 직구 최고 속도가 138km로 측정되지만 실제 그가 던진 영상을 보면 그 이상은 훨씬 되어 보입니다.
특히 조범현 현 KT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대학 선발 때 공을 받아봤는데 빠른 직구가 바로 앞에서 솟는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훅 하고 올라올 정도'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경남고 시절 포수를 지낸 이재녕 씨는 최동원의 볼을 받았을 때 손가락 5개가 부러졌다고 했고, 해태 타이거즈의 전설적인 타자 김성한 역시 대학시절 최동원에 대해 "당시 한양대에 150km 이상 던지는 피칭 머신이 있었는데 최동원을 공략하기 위해 연세대 경기를 앞두고 한양대에 가서 그렇게 훈련을 했어도 최동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한 것을 보면 그의 직구 속도와 위력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 때까지의 혹사로 인해 최동원이 더 이상은 150km가 넘는 직구를 던지기 어려웠다는 점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프로시절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9년은 어떻게 보면 최동원에게 휴식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기록은 없지만 사건 하나가 터지게 됩니다. 바로 그 유명한 박철순의 최동원 구타 사건인데요 당시 기사들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3월 21일 대통령기 쟁탈 대학 야구 준준결승에서 연세대가 동국대에게 지자 선배들이 기합차원에서 후배들을 구타했고, 학년은 같은 3학년이지만 학번이 빠른 박철순이 최동원을 구타해서 최동원이 야구부를 이탈했다는 내용인데 좀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내용이 좀 심각합니다.
최동원은 '단순히 기합 차원에서 몇 대 맞은 게 아니라 린치였다. 지난 3월 12일 중앙대와의 연습 경기 때 신통치 못했다고 10대나 맞았는데 이번에 또 맞아서 다쳤던 허리가 다시 다쳤고 전치 17일의 진단이 나왔다'라고 합니다.
더구나 1년 전인 1978년, 가을 연고전에 앞서 엉덩이 뼈를 맞아 한동안 일어서지도 똑바로 누울 수도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하기도 했는데요, 최근 각 대학의 체육학과의 신입생 공고문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듯이 당시에도 운동선수 세계에서는 구타가 만연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고 최동원은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하고 당시 연대 감독이었던 이재환 감독은 '최동원의 버릇을 고쳐 놓겠다'고 하며 굉장한 신경전이 벌어졌는데요.
고등학교 때부터 혹사 당해온 최동원은 대학 1학년 때부터 2년간 역시 굉장한 혹사를 당하며 연대의 에이스를 넘어국가 대표 에이스로 떠올랐고, 이재환 감독은 그를 혹사시키면서도 최동원과 그의 아버지가 팀의 분위기를 망친다며 탐탁치 않았던 차에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때 이재환 감독은 '감독직을 걸고라도 최동원을 더 이상 야구 못하게 하겠다'라고 까지 했다고 하니 작은 사건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최동원만한 선수, 그러니까 최동원을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는 연세대로서는 그의 복귀를 요청할 수 밖에 없었고, 최동원은 다시 학교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어떻게 신경전이 풀어졌는지에 대한 내용은 찾기가 어려운 것이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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