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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읽어주는 남자: 낫 아웃!

불멸의 투수 최동원 (3): 언제나 나의 영웅

by 알킴 202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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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존칭 생략)본 포스팅은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토대로 종합하여 제가 정리하였고 마지막 편에 출처를 한 번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에 입한 최동원은 고등학교 시절 못지 않은 괴력을 뽐내면서 역시 혹사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됩니다.

 

1977년 1학년 대학리그 결승에서 만난 성균관대를 상대로 총 30명의 타자를 맞아 16개의 삼진을 뺏으며 완봉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춘계리그에서 다신 만난 성균관대를 상대로 삼진 11개를 거두며 완봉, 춘계연맹 결승리그에서 고대를 상대로 탈삼진 12개, 한양대를 상대로 탈삼진 8개를 거두며 완투를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백호기에서 당시 실업야구 최강이었던 한국화장품과의 경기에서 6.1이닝, 5안타, 1홈런 등 총 4실점을 했는데요 결과만 놓고 보면 고개를 갸웃 거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재박, 정순명, 김유동, 김호인, 심재원, 김일환, 조흥운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상대로 약관의 20살, 그것도 고등학교 시절 혹사를 당하고 대학에 와서도 연투를 한 선수치고는 굉장한 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적을 바탕으로 최동원은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실업-대학 야구 올스타 전에 출전하게 됩니다.

 

지금처럼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이라 90년대 농구대잔치처럼 당시 아마야구는 대학올스타와 실업 올스타간의 올스타전이 있었는데요 최동원은 3차전에 등판해서 무실점, 탈삼진 8개의 완봉승을 거두게 됩니다.

 

혹자는 올스타전이니까 선배들인 실업 선수들이 대충 해준 것 아니냐고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올스타 전은 왕중왕 전 성격이 있었던 데다 실업 선수들은 후배들과의 경기에서 지면 망신이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 거둔 대학 1학년 생의 성적이라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는 그 해 연세대에게 4관왕을 안기고 니카라구아에서 열린 수퍼 월드컵 대회에 출전하게 되는데, 이 대회를 위한 대표선수 선발전에서 5회까지 단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는 괴력을 발휘하더니 본 대회에서 한국이 최초로 우승하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러자, 그 대회를 지켜보던 MLB 관계자에 의해 한국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팀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게 됩니다.

 

바로 볼티모어였는데요, 대회 기간 동안 최동원 관찰하고는 구체적인 계약 금액 등은 얘기하지 않았지만 입단 의사가 있으면 경기 경력이나 집안 형편 등을 자세히 적어 보내달라며 미국 내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많은 야구 팬들은 77년 수퍼 월드컵에서의 우승이 이선희의 활약 때문이었다고 알고 있지만, 제대로 따지면 최동원의 공헌도 무시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개최국인 니카라과의 농간으로 6강 결선리그에서 니카라과전이 끝나고 30km를 이동해서 콜롬비아 전을 치르는 더블헤더에 이어 다음날은 푸에르토리코전을 치르는 황당한 경기일정 때문에 출전 당시에는 4강도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요, 이 때 최동원이 팀을 구하게 됩니다.

 

두 번째 경기였던 콜롬비아 전에서 1피안타 (홈런) 완투승을 거두고, 다음날 푸에르토리코 전에서는 경기 초반 위기에 구원 등판하여 연장 12회까지 가는 혈투 끝에 승리하면서 최소한 3위를 확보했던 것인데요.

 

 그 덕분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관심을 받게 됐는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혹사는 여전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만 19세의 최동원이 이 대회에서 소화한 이닝수가 30이닝이 넘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과거 에이스들이 모두 연투 혹사를 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그건 국내 대회에서나 가능했지 70년대 북중미 선수들 상대로는 불가능했다고 보면 됩니다.

 

국제대회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의 선수들이 포진해 있으니까요.더구나 푸에르토리코는 전년도(76년) 세계선수권에서 쿠바와 함께 공동 1위였던 북중미의 야구 강국이었습다.

 

아쉬운 것은당시 수퍼월드컵 대회에서 최동원의 자세한 성적을 찾아 보기 어렵다는 점인데, 어찌 됐든 어떻게 보면 공식적인 입단 제의라고 볼 수는 없지만 약관의 스무 살 선수, 그것도 미국에서 보면 야구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한국의 선수에게 메이저리그 팀에서 관심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의미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맞이한 1978년. 대학 2학년이 된 최동원은 통일대기 야구 대회에서 연세대를 우승으로 이끌고, 춘계리그에서도 동국대, 동아대, 한양대를 각각 완투 (3실점), 무실점, 무실점으로 막아냅니다.

 

또한, 백호기에서는 실업팀을 상대로 2차전 상업은행과 준준결승 (8강전)에서 한일은행을 상대로 삼진 13개를 뺐으며 완투를 하고는 준결승전에 또 다시 등판, 경리단을 상대로 1안타만을 내주며 결승전에 진출하지만 박철순이 버턴 공군에 패하며 준 우승에 머물게 됩니다.

 

물론 결승전에 최동원이 또 다시 등판했는지는 기록을 찾지 못했지만 등판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출전한 경기 수와 던진 이닝 그리고 만들어 낸 성적은 대단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합니다.

 

(경리단은 당시 육군에서 운영했던 실업 야구팀(?) 같은 성격인 듯 한데 그냥 쉽게 또 다른 상무라고 생각해야 할 듯 합니다. 찾아봐도 정확하게 나오는 곳이 없네요.)

 

 

 

* 최동원과 아버지 최윤식 씨

 

그리고 출전한 대통령기 대회에서 최동원은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내는데요, 바로 준결승에서 만난 동아대 임호균과의 맞대결에서 무려 1박2일을 던진 것입니다.

 

첫 날 14회까지 0:0을 기록한 두 팀은 다음 날 계속된 경기에서 18회까지 이어졌으며 18회에 터진 연세대 김봉연의 솔로 홈런으로 결국 연세대가 이긴 이 경기는 최동원이 완투 능력, 경기 운영 능력과 더불어 체력까지 대단한 선수란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더불어 임호균이란 투수의 엄청난 능력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특이할 만한 점은 2012년 임호균의 인터뷰를 보면 그 때가 최동원의 전성기라고 얘기했다는 것인데요 (정확히는 '최동원은 한전에서도 같이 있었는데 그땐 이미 전성기를 지난 시기였다. 최동원의 볼은 1970년대 연세대와 실업 초창기가 가장 좋았다.'라고 표현).

 

다시 말하면 이미 프로에 진출했던 당시 최동원은 전성기를 지난 시점이라고 봤을 때 그가 프로에서 남긴 엄청난 성적은 말로 성명하기 힘들 뿐입니다. 최동원의 프로 기록은 나중에 다시 살펴 보겠습니다.

 

그리고는 결승전에서 또 다시 선발 등판, 9이닝 완투를 하며 임호균과의 맞대결인 18이닝을 포함, 혼자서 42이닝을 책임지고 연세대를 우승으로 이끕니다.

 

그리고 우승 인터뷰에서 '한 게임 더 던질 수 있는 기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역시 최동원이란 말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 이 대회에서 그의 기록을 잠시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4차례 선발 등판하여 모두 승리 투수- 33이닝 무실점 (연속 27이닝 포함)- 144명의 타자를 상대로 49개의 삼진을 잡는 동안 16개의 안타만 허용- 총 42이닝 동안 2자책점만을 허용하여 평균자책점이 무려 0.429- 준결승, 결승 연달아 375개 투구

 

그가 얼마나 혹사를 당했는지 왜 임호균이 그 때가 최동원의 전성기라고 했는지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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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투수 최동원 (4): 언제나 나의 영웅

(편의상 존칭 생략)본 포스팅은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토대로 종합하여 제가 정리하였고 마지막 편에 출처를 한 번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혹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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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투수 최동원 (2): 언제나 나의 영웅

(편의상 존칭 생략)본 포스팅은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토대로 종합하여 제가 정리하였고 마지막 편에 출처를 한 번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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