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로 돌아온 박재홍은 데뷔 후 첫 5년만큼의 성적은 아니지만, 2009년까지는 매년 두 자리 수 홈런에 두 자리 수 도루 (2008년 제외)의
꾸준한 성적을 기록했고, 2008년엔 개인 기록 중 두 번째로 높은 0.318의 타율과 19홈런까지 기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2007년 김성근 감독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이 신인 때 부정 타격을 지적하며 쌍방울 선수단까지 철수시키면서 마음의 짐을 씌웠던 감독이 바로 자신의 감독이 된 것이지요.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김성근 감독은 모든 선수를 자식처럼 대하기 때문에 특별한 편애도 특별한 무관심도 없이 필요에 따라 그를 꾸준히 기용해 주었고 박재홍은 거기에 맞춰 이름 값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9년은 박재홍에게 또 한 번 시련이 닥친 해였습니다.
4월 롯데와의 경기에서 롯데 주장 조성환이 채병용의 투구에 얼굴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가 광대뼈 함몰이라는 큰 부상을 진단 받은 상황이 벌어졌는데, 바로 다음 공격의 박재홍 타석 때 롯데 투수 김일엽이 박재홍의 무릎 쪽으로 빈 볼을 던지면서 일어난 사건이었는데요.
당시 김일엽이나 야구 관계자들은 그 공이 변화구였기 때문에 빈 볼까지는 아니라고 했지만, 나중의 인터뷰에서 박재홍은 그 공이 직구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어쨌든 문제는 그 빈 볼에 화가 난 박재홍은 마운드로 뛰어 올라가며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그런 박재홍을 롯데 코치인 공필성 코치가 뒤에서 껴안다시피 하며 말렸습니다.
그런데, 박재홍은 그를 알아보고도 그에게 욕설을 했고 그 욕설을 들은 공필성 코치 역시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경기가 끝난 후에도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고 박재홍을 불러내며 큰 싸움으로 번질뻔한 사건이었습니다.
박재홍은 자신보다 한참 선배인 공필성에게 잘못한 것을 나중에 사과했지만,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기 때문에 2010년 기아 투수 윤석민이 롯데 팬들에게 까인 것보다 더 많이 까이고 더 많은 야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8월 20일 롯데와의 사직 원정경기 연장 10회초 1사 만루 상황에서 대타로 들어서 롯데 팬들의 엄청난 야유를 뚫고 3루 강습 안타를 날려 결승타점을 기록하며 사직구장 전체를 침묵시키기도 했었습니다.
2009년 시즌이 끝나고 박재홍은 FA자격을 얻어 SK구단과 계약금 4억, 연봉 4억의 계약을 체결했지만 2010년 82경기에만 출전하며 8홈런 1도루로 하락세를 비켜가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2011년에는 '내가 김강민의 땜빵이냐'는 얘기를 했다가 김성근 감독 경질 직전에 1군 엔트리가 말소되면서 74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10월 3일 잠실 LG전에서 벤자민 주키치를 상대로 드디어 300홈런을 달성 했고, 10월 6일 문학구장에서의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8회 대타로 나와 안타를 치며 장종훈, 양준혁, 송지만, 장성호에 이어서 프로통산 5번째로 3,000루타를 기록하면서 동시에 만 39세 29일의 나이로 송지만이 가지고 있던 최고령 3000루타 타이틀 (만 37세 5개월 18일)도 갈아 치웠습니다.
그리고는 시즌 후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성적과 선수협 회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팀에서 외면 당하고 다른 팀에서도 찾지 않아 은퇴를 하게 됩니다.
통산 0.284 타율, 300홈런, 267도루, 1081타점.
만약 33도루만 추가했다면 대한민국에서 전무후무한 그리고 유일한 300-300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 당시 나이나 도루 성공율 등을 감안하면 사실 300도루는 달성하기 어려운 기록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박재홍 선수가 드러난 기록으로는 '호타준족'이지만 도루 성공율로만 보면 70%를 넘은 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고, 가장 많은 43도루를 기록했던 1998년의 도루 성공율도 69%입니다.
그리고 그가 은퇴할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선수협 회장이라는 것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인데요.
본인이 몸 값만 현실적으로 낮추면 대타로라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선수였음에도 예나 지금이나 노조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대기업에게는 한 물 간 선수가 선수협 회장까지 하고 있으니 굳이 데려다 쓸 일이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선수협 회장은 본인의 의사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떠밀어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하는데 조금 안타깝기도 합니다.
나아가 그의 성격도 많이 잘못 알려진 부분도 있습니다.
사실 박재홍은 '야구장에서는 야구만'이라는 철학이 있어서 기자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치 메이저리그 시절 김병현 선수처럼 인터뷰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고요.
그래서 '내 마음에 안 드는 애들은 모두 까버리겠다'는 어설픈 권위주의에 휩싸인 기자들의 기사들에 의해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가 앞서 언급했던 2004년 기아 시절 부진할 때와 2009년 공필성 코치와 문제가 생겼을 때는 기자들도 팬심에 묻어 그를 엄청 까댔더랬습니다.
그리고는 2013년 5월 18일.
자신의 등 번호였던 62번을 영구결번 시키지 못하고 후배인 한동민 선수에게 물려주며 은퇴식을 통해 정말 선수로써는 그라운드를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은퇴식을 기획했던 대해 SK 구단에 대한 팬들의 원성이 좀 많았습니다.
사실 박재홍의 전성기였던 현대의 후신이 넥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넥센 전에 하는 것이 좋을 뻔 했는데, 2009년 엄청나게 까였던 롯데와의 경기에서 은퇴식을 했으니 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설상가상 그날 경기까지 강우 콜드로 끝날 만큼 날씨가 좋지 않아 은퇴하는 순간마저도 그의 야구 인생처럼 순탄하지는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는 우리나라 야구 선수 중 유일하게 250홈런-250도루를 기록한 선수이며 300홈런-300도루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기록은 쉽게 나오지 않을 듯 합니다.
홈런 타자들의 도루 능력이 높지 않아서인데 기아 타이거즈의 김도영 선수가 이 기록을 땔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리틀 쿠바 박재홍.
그가 팬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전설로 남길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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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출처
http://dorock.tistory.com/1061?top3
http://blog.daum.net/seaoflee/883
http://gimpoman.tistory.com/1625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zmania&logNo=40179008162
http://blog.daum.net/baseball_time/654?srchid=BR1http://blog.daum.net/baseball_time/654
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newsid=20090424095403403
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newsid=20130507103403596
http://mirror.enha.kr/wiki/%EB%B0%95%EC%9E%AC%ED%99%8D
#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zmania&logNo=40179008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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