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렬이나 최동원 혹은 김시진처럼 언론의 주목을 받는 스타는 아니었지만, 마운드에서 자기 역할을 다 하면서 좋은 기록을 남겼던 장호연 선수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일화가 몇 개 있는데요, 지금부터 그 일화들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로는 단체 훈련을 게을리 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동계 훈련이라고 불리는 것인데요.
장호연만큼 '스토브리그'에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선수는 없다고 할 정도로 시즌만 끝나면 이슈가 되었던 선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연봉조정신청자 명단에 단골로 올라왔고, 1991년에는 처음으로 연봉조정위원회 결정을 거부하고 6개월 동안 야구장을 떠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선수생활 12년 동안 제대로 단체 훈련에 참가한 횟수는 단 3번일 정도로 장호연과 어울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연봉 협상 문제로 동계 훈련에 참가지 못한 그는 스위스로 스키를 타러 가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단순히 놀러 간 것이 아니라 하체 단련과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자신만의 훈련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해 장호연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원래 남들 보는 데서 잘 뛰지 않고 남들 없는데 가서 많이 뛰거든요. 뭔가 보여주려고.”
단체 훈련을 많이 빠졌지만 은퇴 당시 그가 남긴 기록을 보면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두 번째로 ‘0대 1로 지는 투수보다는 10대 9로 이기는 투수가 낫다’라는 얘기를 한 이유입니다.
언뜻 들으면 점수를 많이 지더라도 이기는 투수가 좋은 거지 아무리 잘 던져도 지면 아무 의미 없다고 해석될 수 있지만, 그것은 와전된 것이라고 하면서 장호연은 아래와 같이 얘기합니다.
“점수를 많이 줘도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라, 투수는 지고 있는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실점을 끊어 내고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라는 뜻이었다네요.
마지막으로는 이른바 ‘벤츠’ 사건입니다.
한 번은 오프 시즌 중 벤츠를 타고 동료 및 감독과 코치 앞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외제 차가 흔하고 많은 선수들이 외제차를 타고 다니지만 그 때만 해도 엄청난 가격의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선수도 없었을 뿐더러, 외제차는 그룹 고위층이나 타고 다니는 차였는데 '일개 선수'가 벤츠를 타고 나타났으나 구단에서는 난리가 났던 모양이었습니다.
그 때 장호연은 ‘프로선수는 몸이 재산인데 내 몸을 내가 보호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불평을 했다는데요, 아무튼 보통 선수는 아니었던 듯 합니다.
어찌됐던 장호연은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하며 ‘조라이더’ 조용준 선수와 박명환 선수 같은 좋은 투수를 길러 냅니다.
여수중학교 시절 투수와 유격수를 번갈아 하던 조용준 선수는 효천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투수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타자를 하게 되지만, 2학년 때 감독으로 부임해 온 장호연이 그의 재능을 날아보고 투수로 키웠다고 합니다.
당시 134Km에 머물던 최고 구속이 그 해 말쯤엔 143km까지 올라갈 정도로 장호연 감독이 공을 들여 키웠는데, 특히 그의 전매 특허였던 슬러이더는 장호연의 지도를 바탕으로 개발한 공이라고 하니 선수 키우는데도 일가견이 있던 건 분명한 듯 합니다.
그런 그의 지도 능력은 그가 선수였던 시절 이미 나타났는데요, 어느 핸가 연봉 협상 문제로 혼자 모교인 충암고에서 연습하고 있을 때 공만 빠를 뿐 제구력과 변화구가 형편 없던 한 후배에게 자세를 교정해주고 슬러이더를 전수해 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2학년이었던 이 후배는 3학년이 되면서 전국구 스타로 올라섰고. 한 때 두산 베어스의 주축 투수였던 박명환 선수입니다.
하지만 햇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인가요.
신일고 감독 시절인 2004년 장호연은 대한야구협회는 그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공식적인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뜻이며 그것이 현재까지 그가 야구계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당시 징계 이유는, 장 감독이 2002년 제자인 K군이 메이저리그나 국내 프로야구에 진출할 경우 계약금과 연봉의 일부를 받기로 학부모와 대리인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협회는 장 감독이 개인의 영리를 위해 선수를 거래 대상으로 삼아 아마추어 야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점에서 제명까지 검토했지만, 당시 스스로 계약을 파기했고 잘못을 뉘우쳐서 징계 수위를 낮췄다고 합니다.
정삼흠 선수도 그렇고 장호연 선수도 그렇고 선수 시절의 명성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실추시킨 안타까운 사례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투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 활약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징계를 풀어줘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현장으로 돌아와 덕아웃에서 능글맞게 웃으면 경기를 관찰하는 지도자인 ‘짱꼴라’ 장호연을 보고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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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newsid=20110227111906160&srchid=IIM%2Fnews%2F39223117%2Fc8a6539e73cc0df7e1e486cf90220131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newsid=20110629114005009&srchid=IIM%2Fnews%2F43036616%2F7d6cc5835ba8fa6caea40d2c6889f59b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newsid=20120406113731533&srchid=IIM%2Fnews%2F52397265%2F97d6a8f3f0e47f1702b7c9e8ed9d980ahttp://cafe.daum.net/KBOjersey/VxVD/9?docid=1G0vd|VxVD|9|20101209215835&srchid=IIMIZqf5400#A162303254D00D2671F192D&srchid=IIMIZqf5400
# 자료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rx_scv&logNo=134536133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uthndimaggi&logNo=140174618373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tunnerpun&logNo=80068113088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yzan1453&logNo=100104690062
http://mlbpark.donga.com/bbs/view.php?bbs=mpark_bbs_kbo&idx=356666
http://sports.media.daum.net/general/news/moresports/breaking/view.html?newsid=2004052404100123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15730
http://gall.dcinside.com/list.php?id=tigers&no=1672668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kyjjang78&logNo=140016066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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