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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읽어주는 남자: 낫 아웃!

잊혀진 그때 그 스타 (1)- 정삼흠: 첫 번째 이야기 (선동렬과 술 내기 일화)

by Robin-Kim 2024.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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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1년을 맞은 프로야구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스타들을 배출해 왔습니다.

 

1982년, 그러니까 원년의 박철순부터 최근의 류현진까지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많은 기록을 세웠고 세우고 있는 선수들이 계속 나오면서 팬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선수들도 좋지만 선수시절 좋은 성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은퇴 후 기억 속에서 사라진 저평가 된 선수들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이를 테면 ‘그 땐 그랬지’와 같은 오래 전 추억에 관한 얘기인데요, 그래서 현역으로 뛰고 있지 않은 선수들 중 제 기억에 남은 괜찮았던 선수들을 몇 명 추려 보았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 보시죠~.


 - 1985년 데뷔, 1996년 은퇴할 때까지 12년을 한 팀에서만 뛴 투수

 

-  통산 106승 121패, 47세이브의 현재까지 최다패 2위의 성적임에도 평균자책점은 3.62로 좋았던 투수

 

- 최동원 이후 금테 안경으로 유명했던 투수

 

- 선동렬과의 술 대결로 유명한 투수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한 번 들으면 잊혀질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LG 트윈스의 정삼흠 선수입니다.

 

* 정삼흠 전 선수


야간 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 특유의 동그란 안경테와 더불어 ‘부엉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는 ‘두뇌파 투수’라는 별명도 있었습니다. 

 

그가 두뇌파 투수라는 별명을 얻은 데는 다양한 변화구와 노련한 경기 운영이기도 했지만, 도박의 일종인 훌라를 기가 막히게 잘 쳐서 기자들 사이에서 얻은 별명이기도 합니다.

 

잠깐 그 얘기를 하면, 예전에는 원정 경기를 하게 되면 기자들도 같이 따라가서 경기 일정 동안 잠을 자면서 취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자들끼리 훌라를 치다가 정삼흠 선수를 불렀는데 기자가 100전 100패로 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부터 전화해서는 ‘따고 배짱이냐’며 으름장을 놓아 정삼흠 선수를 다시 불러 기자들끼리 짜고 쳤는데도 역시 기자들이 다 털렸다고 합니다.

 

도박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아야 하는 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두뇌파 투수라는 별명이 어느 정도 어울리는 듯 합니다. 이른바 수 읽기에 능하다는 것이니까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지금은 없어진 명지고등학교 야구부에서 뒤늦게 야구를 시작한 정삼흠 선수는 운좋게도 고려대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당시 명지고등학교는 야구로 알려진 학교가 아닐뿐더러 정삼흠 선수가 고3일 때는 전국대회 성적이 1승 2패라는 기록만 있었기 때문에 고대에 들어갔던 것이 ‘운 좋게’라고 표현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습니다. 

 

당시 대학야구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장신 유망주’라는 정도로 표현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운 좋게 들어갔을 뿐 그라운드에서 그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79학번 양상문이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81학번 동기들 역시 선동렬, 안언학 같은 전국구 스타들이었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정삼흠 선수는 본인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휴학을 하고는 실업 구단인 포철에 입단하는 것이었는데요, 실업야구에서 그는 1984년 신인왕을 차지하게 되고 그 덕에 당당히 1차 3순위 지명을 통해 프로구단인 MB 청룡에 입단하게 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남기게 됩니다.

 

* 81학번 대학별 스카우트 관련 기사

 

입단 첫 해 41경기에서 7번의 완투와 3번의 완봉을 포함, 총 9승 12패 5세이브라는 성적을 기록하는데, 당시 평균자책점이 3.13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신인으로써 정말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아마도 수비나 공격에서 뒷받침 해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하지만 이듬해는 2년차 징크스를 버리지 못하고 총 18경기에만 등판해서 1승 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61이라는 성적을 남기게 되지만 3년차에는 다시 부활하여 총 33경기에서 2.86이라는 좋은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물론 당시 6승 13패라는 좋지 않은 기록도 남겼는데, 평균 자책점을 보면 역시나 공격과 수비가 문제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가 잘 던진 1987년 MBC 청룡은 승률이 5할에 못 미치는 0.495를 기록하면서 5위를 차지했고, 그가 못 던진 1986년에는 승률 0.590을 기록하며 리그 3위를 차지했으니 아이러니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1987년에는 그 유명한 선동렬 선수와의 취중대결이 있기도 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광주 원정 경기 전날, 대학동기인 두 사람은 같이 저녁을 먹다가 술 한 잔씩을 하게 되고, 한 잔이 한 병을 부르고 한 병이 10병을 부르다가 날이 밝아 서로 숙취가 가득한 채로 경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선동렬이 완봉승을 거두고 정삼흠은 7회에만 3실점, 총 5실점하면서 패전투수가 됐다는 일화입니다.  

아직까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선동렬에게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MBC 구단에서 대학 동기인 정삼흠을 이용하여 일부러 선동렬에게 술을 많이 먹였다는 얘기도 있고, 워낙 자존심이 강한 두 사람이라 서로 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술을 마셨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어찌 됐든 밤새 술 마시고 마운드에서 공을 뿌렸던 두 사람이 대단하긴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두 번째 이야기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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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 https://namu.wiki/w/%EC%A0%95%EC%82%BC%ED%9D%A0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7151

https://www.horse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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