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이수미의 ‘여고시절’이라는 노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학창시절, 특히 고등학생 시절은
우리를 한 없이 추억에 젖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요즘의 학생들처럼 인터넷과 휴대 전화가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보다는 마음을 듬뿍 담아 직접 써 내려갔던 편지가 있었기에,
남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무데서나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어른을 무시하기 보다는
빵집에서 스치듯 만난 이성에게 애틋한 감정을 전할 길이 없어 애태웠던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 시간을 두고두고 회상하면서 낭만 가득한 추억을 돌이켜 보는지 모를 일이다.
서울의 진덕 여고로 전라도 벌교 출신의 나미가 전학 오면서 영화 써니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싸움 짱 춘화, 쌍꺼풀에 목숨 건 장미, 욕에서는 둘 째가라면 서러워할 진희, 깡다구로 뭉친 금옥,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사차원 복희 그리고 도도한 얼음공주 수지. 나미는 이들의 새 멤버가 되어
다시는 잊지 못할 여고 시절을 ‘써니’라는 이름으로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간다.
비버리 힐스. 돈 많은 변호사를 아버지로 둔 셰어는 역시 같은 동네 단짝 친구인 디온과 함께
학교에서 인기 있는 여학생이다. 마치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1995년으로 날아간 것처럼
등교 전에 수백 벌의 옷과 신발 중에 그 날 입을 옷을 컴퓨터로 결정하는 셰어,
그리고 셰어만큼 패션 센스가 뛰어난 디온. 그러던 어느 날 그녀들의 학교에 타이라는 학생이 전학을 오면서
영화 Clueless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영화 모두 고등학생 시절, 그러니까 질풍노도의 여고 시절을 표현한 ‘성장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확실히 많은 차이점을 보여준다.
먼저 써니의 주인공들은 부유한 사람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 않는다.
극 중에서 가장 잘 사는 아이로 나오는 수지 (민효린)인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기 보다는 이야기를 받쳐주고
보다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클루리스는 주인공 셰어와 디온이 비버리 힐스에 살만큼 부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잣집 딸들이다.
수 백 벌의 옷과 수십 켤레의 신발, 우울하면 언제든지 쇼핑을 하면서 긁어댈 수 있는 크레딧 카드를 가진
아이들이다.
그러다 보니 두 영화가 주는 재미 자체가 다르다.
써니의 재미는 ‘공감’이다.
건축학개론이 그랬고, 응답하라 1997이 그랬듯이 그 때 그 시절, 군사 정권 시절의 전형적인 중산층의 모습을
담아냈기 때문에 내 지나온 시절과 자연스럽게 겹쳐지면서 ‘그 땐 그랬지’가 떠 오르는 반면
클루리스는 오래 전 국내에서도 인기 있었던 미국 드라마 ‘비버리 힐스 아이들 (Beverly Hills 90210)’처럼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네들의 생활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를테면 ‘미국 부잣집 아이들은 저렇게 노는구나’라는 호기심이랄까?
특히 써니에 등장하는 80년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소녀시대’와 ‘핑클’이라는 또래 모임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빵 터지는 재미와 함께 공감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 1995년 미국엔 이미 바지를 엉덩이까지 내려 입는 옷차림 문화가 유행이었다.
두 번째로 화자가 틀리다.
써니의 화자는 25년이란 시간이 지나 서로 다른 삶의 무게를 가진, 그래서 누구는 힘들어하고
누구는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아줌마들이 화자가 되어 지난 여고 시절을 얘기하는 반면,
클루리스는 그냥 그 때의 여고생이 하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써니에는 추억이 있고, 클루리스에는 그네들만의 문화가 있다.
그리고 이것 다시 첫 번째 차이점에서 얘기했던 공감과 호기심이라는 재미로 연결된다.
세 번째로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써니에서는 라붐 주제가로 유명한 리차드 샌더슨 (Richard Sanderson)의 ‘Reality’와 오버랩 되는
애틋한 여고생의 사랑이 있다면 클루리스에서는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랑이 있다.
첫 눈에 반한 친구 오빠의 잘 생긴 친구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그 시절 풋풋한 여고생의 사랑으로 그려지면서
재미와 공감을 주는 것이 써니라면, 키스라는 사랑의 신체적 표현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클루리스다.
이것은 문화적 차이로 설명할 수 있겠는데, 오랜 시간 동안 보수적인 문화를 유지해왔으며 군사정권의 강력한
미풍양속 단속으로 인해 감정 표현이 있어 서툴거나 폐쇄적일 수 밖에 없는 그 시절 우리의 문화와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고 청소년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인격체로써 개인의 생각과 표현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미국 문화의 차이일 듯 하다.
단적으로 수업 내용만 봐도 우리는 선생님이 앞에서 해주는 얘기라는 그대로 받아 적거나 암기하는 것이라면
미국은 ‘토론’이라는 과목이 있을 정도로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문화 그 자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마지막 차이점은 행복한 결말이냐 가슴 아픈 결말이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써니의 결말이 행복한 것이냐 아니냐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행복해 보이는 모습 속에서는
모임의 리더인 춘화의 죽음이라는 슬픈 결말이 숨어 있다. 중년의 나이에 많은 돈을 모았던 그녀들의 리더인
춘화는 암으로 죽어가는 과정에서 다시 만난 친구들에게 가진 재산을 나눠주는데 그것이 과연 행복하기만한
결말인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반면 클루리스는 언제나 자신의 주위를 맴돌던 양오빠 조시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서로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키스로 끝나는 전형적인 해피엔딩 구조다. 1시간 40분 가까이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수 많은 사건들의 끝에 소위 ‘칙릿’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그렇듯 16살 고등학생의 사랑으로 끝나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면 길게 여운이 남지는 않는다고 봐도 될 듯 하다.
물론 두 영화의 공통점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인공 혹은 등장인물들이 착하다는 것이다.
써니에서의 학교 짱 하춘화의 그 무리는 전학생 나미와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어 ‘써니’라는 모임 이름까지
만들었고, 클루리스의 셰어와 디온은 새로 전학 온 타이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보통의 3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준 전학생을 따돌림 하거나 괴롭히는 그런 박힌 돌이 아니라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실 클루리스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엠마]를 원작으로 1996년의 시대에 맞게 변형한 영화로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또 다른 영화 [엠마 (소설과 제목이 같음)]와 종종 비교되곤 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클루리스가 1995년, 영화 [엠마]가 1996년에 개봉했으니 (기네스 펠트로 버전) 어떻게 보면 ‘짝퉁’이 먼저 나와서
인기를 더 받았다는 사실이 재미 있기도 하다.
“가장 찬란했던 순간 우리는 하나였다”
10대 시절이 가장 찬란했는지 20대 시절이 가장 찬란했는지 그것은 개인이 보낸 시간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내 나이 때의 문화를 생각하면 무엇을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고 엄하기만 했던 학교 문화,
성적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교육 현실 속에서도 친구들과 보냈던 그 시절이 화려하진 않았어도
추억할 거리가 너무도 많은 시절임에는 분명한 듯 하다.
그래서일까. 학생시절 짝사랑했던 선생님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그 선생님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Leggie...
* 어린 시절 꽤 귀엽고 미인이었던 알리시아 실버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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