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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읽어주는 남자: 낫 아웃!

[KBO 프로야구] 역대 최고 포수 열전!- 박경완: 두 번째 이야기

by Robin-Kim 202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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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이야기 보러 가기

 

어쨌든 95년부터 97년까지 매년 두 자리 수 홈런을 때려냈고, 타점 역시 각각 46-74-48을 기록하면서 타석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보이며 1996년과 1997년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쌍방울이 페넌트레이스 2위와 3위를 차지하는데 기여합니다.

 

이후 박경완은 IMF 때문에 재정난에 허덕이던 쌍방울을 떠나 이근엽+김형남+9억원에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 됩니다. 당시 박경완이 트레이드 되자 조범현 코치가 술을 엄청나게 마셨다고도 하네요.

 

1998년 현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박경완은 주전포수로 출전하며 바로 우승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해에 가장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김원형이 연거푸 빈 볼을 던지다 퇴장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벤치에서 나온 사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빈볼을 던졌던 김원형에 대해 박경완은 시합 후 먼저 밥이나 먹자며 전화를 할 정도로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 했던, 그러니까 두 사람은 그런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2000년 박경완은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0.282 타율과 함께 40홈런과 95타점을 기록했으며 5월 19일 대전 한화 전에서 KBO 최초의 4연타석 홈런 기록도 만들어 냈는데요, 당시 빈 볼을 우려해 김재박 감독이 교체하지 않았다면 5연타석 홈런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해 MVP를 수상하게 되는데 수상 소감에서 뜬금없이 '내년에는 20-20을 해 보고 싶다'라는 얘기를 하는데 발이 빠른 선수가 아니었던 박경완의 그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냥 재미로 한 얘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2001년 박경완은 정말 20-20을 달성하고 마는데요 (24홈런 21도루)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대한민국 포수 중 유일한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002년까지 현대에서 뛴 박경완은 FA를 통해 SK로 이적하게 됩니다.

 

당시 박경완이 SK로 이적하게 된 배경에는 조범현 감독과의 인연이 있었습니다.

 

쌍방울에서 현대로 이적할 때 나중에 조범현이 “다시 같이 야구를 해 보자. 언젠가 그럴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했고 박경완도 “코치님이 오든 제가 가든 그렇게 합시다”고 했었다고 하는데요, 마침 SK 감독이 된 조범현의 부름에 박경완은 주저 없이 SK로 향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박경완의 인터뷰를 보면 "솔직히 조코치가 SK로 오지 않았다면 난 현대에 남았을 것이다. 많은 배려를 해준 현대를 떠날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고민하다 결국 나를 키워준 조감독을 선택했다"라고 한 부분이 있는데 사람의 인연이란 무서운 듯 합니다.

 

 

 

SK로 이적한 뒤에도 꾸준히 2할 대 중반의 타율과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하던 박경완은 2003년 팀이 페넌트 레이스 4위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가을 잔치에 초대되었습니다.

 

당시 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2승 무패로, 플레이오프에서 KIA 타이거즈를 3승 무패로 이겨 창단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에게 시리즈 전적 3승 4패로 밀려 준우승하는데 기여 하더니 2004년에는 0.295의 타율과 34홈런, 79타점을 기록하며 두 번째 홈런왕에 등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2006년 시즌 후 감독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아래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2007, 2008, 2010 시즌 팀이 우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당시 나이가 들면서 잦은 부상 때문에 덕 아웃에 있게 되는 날도 종종 있었는데 그 때도 김성근 감독은 박경완으로 하여금 포수에게 사인을 내게 할 만큼 투수리드에 관해서는 그를 '절대적'으로 신임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잦은 부상으로 출전 회수가 줄어들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성근 감독이 사퇴하고 이만수 감독이 부임하면서점점 기회를 잃어가던 중 2013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합니다.

 

총 23년간 2043경기 출장, 0.249 타율, 314홈런과 995타점, 106개의 실책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긴 여정을 끝낸 것입니다.

 

사실 박경완의 기록 중 아쉬운 점이 있다면 포수 최초 2,000 경기 출장과 1,000타점이라는 기록의 직전에서 은퇴했다는 것인데요, 총 2,043경기 출장 중 포수로 출장한 경기는 1,990 경기라고 합니다.

 

10경기만 더 출장했다면 당시로써는 KBO에서 유일무이한 포수 2,000 경기 출장이라는 대 기록과 함께 1,000타점도 기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어쨌든 그는 은퇴를 선언했고 탐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등 번호인 26번에 대한 영구 결번과 함께 2군 감독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선물했습니다.

 

보통 선수가 은퇴를 하게 되면 연수부터 시작해서 코치를 거치는 것이 정석인데 박경완은 은퇴하자마자 2군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2014년 4월 5일, 그의 영혼의 파트너 김원형 코치의 시구를 받는 은퇴식과 함께 선수로서는 영원히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사실 포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애매모호합니다.

 

타자로서는 다양한 수치가 집계되는 반면 포수의 실책이나 도루 저지율 등은 집계 되기는 하지만 쉽게 찾아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투수 리드 같은 부분은 정량적으로 집계 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이만수 감독이 SK 감독이었을 때 2군 코치진에게 포수 평가를 요청하면서 '투수 리드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하지 말고'라는 말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가 얘기한 메이저 리그 일화를 보더라도 투수 리드라는 것이 얼마나 평가하기 힘든 부분인지 알 수 있으며, 또 유독 일본과 우리 나라에서만 포수에게 그런 덕목이 요구되는지 이해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반면에 2007년인가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김경문 감독은 '박경완의 공 배합과 싸워야 한다'라고 얘기한 것을 보면 포수의 투수 리드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포수로써의 정량적인 성적인 통산 도루 저지율을 보면 (2012년까지 기준) 박경완은 0.3843으로 4위에 해당하지만 출장 경기수 대비로 본다면 1위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baseball&no=203546)

 

 

투수가 믿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박경완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마운드의 투수를 심리적으로 편하게 해준다는 인상을 참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조인성이나 진갑용이 박경완에 훨씬 못 미치는 포수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조인성은 LG시절 심수창과의 사건에서도 나타나듯이 투수를 편하게 해주기 보다는 선배 역할을 하는데 중점이 맞춰진 선수라는 인상이 강하며 진갑용 역시도 작년 한국 시리즈를 보면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삼성 왕조 시절, 한국 시리즈에서 위기의 순간에 마운드에 오른 삼성 투수가 신예 심창민 선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전년도에도 한국 시리즈를 경험하긴 했지만 여전히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큰 경기에 등판한다는 것이, 그것도 위기의 순간에 등판한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는지 진갑용이 원하는 코스로 공을 던지지 못했었습니다.

 

보통 그럴 때면 베테랑 포수가 마운드로 올라가 어린 투수를 다독이며 심적 안정을 취하게 해줘야 하는데, 진갑용은 왜 던지라는 데로 안 던지냐는 짜증이 잔뜩 섞인 몸짓을 심창민 선수에게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부분이 최고의 포수와 잘하는 포수의 차이점이라고 봅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2군에서 불려와 데뷔 후 가장 큰 무대에 섰던 김광현이 승리투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김광현이 박경완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한 것도 바로 박경완이 포수로써 가장 중요한 역할인 투수의 심리적 안정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 다독여 주는 것만으로 투수가 심리적 안정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뛰어난 블로킹, 타자에 맞는 공 배합 (투수리드), 도루 저지와 같은 것들이 기본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박경완은 이미 검증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니 그가 마운드에 올라 몇 마디 해주는 것만으로도 젊은 투수들은 심리적 안정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포수는 참 힘들고 어려운 위치입니다.

 

유일하게 투수를 포함한 모든 야수를 바라보는 위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조율해야 하고, 블로킹도 도루 저지도 중요하며 볼 배합과 같은 투수 리드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타자가 내야 땅볼을 치면 혹시 모를 악송구에 대비해서 1루수 뒤로 뛰어가야 합니다.

 

무거운 장비를 차고 수비하는 내내 앉았다 일어 났다를 수백 번 반복해야 하기도 합니다.타석에서도 실력이 나쁘면 엄청 욕먹습니다.

 

 

 

그래서 프로야구에 포수 기근 현상이라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베테랑은 있지만 정말 잘하는 포수는 없다라는 것이지요.

 

그런 와중에서 역대 최고의 포수가 누구냐고 저에게 묻는다면 쉽게 얘기하지는 못하겠지만 조심스럽게 박경완이 아니겠느냐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지난 아시안 게임 때인지 2009년 WBC 때였는지 박경완이 윤석민의 공을 받아 보더니 '내가 20승 투수로 만들어 줄 수 있는데'라고 한 얘기를 아직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라면 윤석민을 정말 20승 투수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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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출처 및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haehfdlbn&logNo=50191987623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kqkds&logNo=50168817781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ojomance&logNo=30165392591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ky_fund&logNo=70177860562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broad_ich&logNo=10178483548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jw7775&logNo=20197964128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mbsIdx=815161

http://sports.media.daum.net/sports/baseball/netizen/talk/#read^bbsId=F001&articleId=592423&tracker=off

http://blog.daum.net/jschoi5206/7757736

http://blog.naver.com/feelsosadhd?Redirect=Log&logNo=100208768077

http://blog.daum.net/leemin215/13381945?srchid=IIMBZWJq300#AK-13_RESIZED.jpg&srchid=IIMBZWJq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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