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에 25승 투수가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그것도 왼손 투수로써.
1984년 한국계 일본인 김일융 (일본명:미우라 히사우)은 10년이 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생활을 접고 전격적으로 삼성에 합류하게 됩니다.
요미우리에서 70년대 중 후반 15승 투수로써 맹활약하다가 전성기가 지난 시점에서 삼성에 합류했지만 많은 야구팬들은 제 2의 장명부 신화를 써주기를 기대했고, 그는 곧바로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미 일본에서 최고 평균자책점(1977년, 1978년), 최우수 구원 투수(1978년), 최다 탈삼진(1979년) 및 최우수 투수(1978년) 등 다수의 기록과 수상경력을 가진 선수였기 때문에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한 수 아래인 한국 프로야구라서 조금 쉬웠을까요. 그래서 데뷔 첫 해인 1984년 16승 10패, 2.27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듬해, 34경기에 출장하여 25승 6패, 평균 자책점 2.79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남기며 팀을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고, 본인은 최다승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1986년 역시 13승 4패, 평균 자책점 2.35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는 3년이라는 굵고 짧은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는 일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지금과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단일 시즌 동안 그보다 많은 승리는 올린 선수는 장명부 선수가 1983년에 30승, 1984년에 최동원 선수가 27승 외에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특히 왼손 투수로는 아직까지 그의 기록을 넘은 선수가 없으며 1995년 당시 LG 소속이던 이상훈 선수가 20승 5패, 평균 자책점 2.01의 엄청난 성적을 거둔 것이 가장 근접한 성적이었습니다.
물론 그가 활약했던 3시즌 동안은 삼성 라이온즈 최초이자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만수 선수와 잠깐 돌아보면 어느 순간 1루에 있었다는 전설의 3할 타자 장효조 선수가 활약했을 때라 승을 올리기는 좀 더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한국에서의 시즌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최고의 컴백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선수 말년을 보내는 그는 1992년에 은퇴를 하게 됩니다.
한국 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과연 그의 기록이 의미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찌됐든 국내 리그에서 남긴 그의 성적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가끔은 토끼처럼 톡 튀어나온 그의 앞니까 기억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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