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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어디까지 가 봤니?

헤이리 예술마을- 예술이 조금 아쉬운 곳 (5)

by Robin-Kim 201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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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예술 마을에서 제일 볼 만한 것 (곳)이 근현대사 박물관이라고 했었는데요

예쁜 카페와 식당을 보러 온 게 아니라면 한길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와 갤러리도 괜찮은 곳이지만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고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이 곳인 아닐까 합니다.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어 내일이 있는 것이라 결국 지나온 시간들이 짧던 길던

모두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역사이기 때문이지요.

 

 

* 예전에는 양장점이 꽤 많았다. 특히 '시내'라고 불리는 명동 쪽은 서양 옷으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양장점과 다양한 서양 제품을

  판매하는 양품점이 많았는데, 나도 어른들을 따라 다녔던 기억이 있다. 정말 '그 땐 그랬지'가 저절로 나오는 모습.

 

 * '급구. 미싱사 0명, 시다 0명'. 예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구인 벽보.

 

* 50~6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면 서울만해도 초가 지붕과 기와 지붕이 섞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 곳에서 실제로 보니

  꽤 실감이 났다. 나아가 사는 사람을 불편했겠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웠다.

  문득 백사마을에서 사진을 한참 찍고 있던 나에게 불평을 하던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산다는 건 어쩌면 그런 불편한 진실을 떠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불량식품부터 구슬까지, 없는 게 없었던 그 시절 문방구.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 어릴 때만 해도 동네 문방구는 아이들의

  집결지, 그러니까 하루에 최소한 한 번은 꼭 거쳐가야 하는 곳이었다.

 

* 둘림판 아저씨와 붕어빵 아저씨. '꽝'이 왜 그렇게 크던지. 어쩌다 선물을 타게 되면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 마냥 기뻐했었다.

 

 

* 만화가게 안 가 본지가 어느 덧 30년 가까이 된 듯하다. 지금 만화가게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한 권 보거나 빌리는데 50원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 돈 아끼려고 주인장 몰래 친구랑 몰래 보던 만화책 바꿔보기도 하곤 했었다. 그러면 50원에 두 권 보는 거니까.

 

 

* 그 시절 학교에 다니던 그 꼬마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면서 살고 있을까?

 

*지금은 보기 힘든 동네 골목 어귀의 솜틀집 간판 그리고 포크송 백과. 예전에 정기벅으로 포크송 백과라고 해서 보면서 기타를 칠 수 있게

 악보가 실린 두툼한 책이 나오곤 했었다. 기타를 치시던 삼촌 덕분에 나도 그 책을 꽤 많이 봤었는데 그 때는 지금처럼 노래의 소비 주기가

 짧지 않아서 인기있는 곡들을 모아서 악보를 찍고 책으로 나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래도 최신곡을 즐기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빠르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 듯하다.

 

* 1973년 어느 날의 신문. 한자와 한글을 섞 어 우리에게 최신 소식을 전해주던 소중한 매개체였다.

 

*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벽보. 선거 후보 포스터와 당시 사회 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벽보들.

  '썩은 자는 유흥가로, 애국자는 일터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 교복과 교련복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옷 가게. 그런데 지금도 고등 학교에 교련 과목이 있는지 모르겠다.

 

* 예전 주막집의 모습. 저런 항아리에 막걸리나 탁주를 담아 마셨을 그 때 어르신들이 보시면 참 좋아하실 듯한 모습.

 

* 방앗간과 참기름집. 1980년대 초반만해도 청담동 어느 구석에도 있었던 기름집이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참기름집에서 짜 먹는 맛이 진짜 좋았는데.

 

* 1950년대 이 곳 저 곳을 떠돌아 다니며 장사를 하던 새우젓 장수의 쉬는 모습. 그 때는 젓갈도 돌아 다니며 팔았었나 보다.

  피곤한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 각종 광고판에 우편함, 빨래까지 걸려 있던 동네 골목의 모습. 넉넉하지 않던 살림만큼 넉넉하지 않은 공간을 활용한 골목의 모습은

   그 시절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 동네 구멍가게 내부 모습. 저 안 쪽으로 다양한 술병들과 이제는 건강의 문제로 멀리하게 된 '미원'이 눈에 들어 온다.

 

* 쌀 가게 모습. 예전엔 쌀 안먹는 집이 없으니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던 쌀 가게 아저씨가 동네 통장을 주로 하곤 했었다.

 

* 우리 집에도 저런 TV가 있었다. 미닫이 화면 덮개도 있었는데, 사진의 TV에는 안테나가 없네.

  케이블 TV가 없던 시절에는 말 그대로 TV안테나와 지붕의 안테나를 통해 흘러가는 공중파를 잡아서 TV를 보아야만 했다.

  그래서 태풍이 지나가거나 바람이 많이 불고 난 다음 날에는 꼭 누군가 지붕위에 올라가서 안테나 위치를 조절하며 '잘 나와?'라고 물으면

  방에서 TV를 지켜보던 사람이 잘 나오는지 아닌지를 대답해주는 풍경이 자주 있었다.

  정말 이제는 보기 힘든 예전의 모습이 불과 20년 전에도 있었다면 믿겠는가.

 

* 예전 마당 한 쪽에는 사진처럼 펌프로 물을 끌어 올려 대야에 그 물을 받아 세수를 했다. 우리 집에도 저런 펌프가 있었는데

  펌프질이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 오래 전 부엌의 모습. 각종 살림 살이를 쌓고 또 쌓던 그 시절 어머니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 요즘 '수선집'의 효시라고나 할까. '삯 바느질' 간판이 괜히 심금을 울린다.

  그 때의 삯 바느질이라 함은 궁핍한 살림을 의미하는 대명사였으니까.

 

* 어느 옥상의 모습. 빨래도 널고 즉시 쓰지 않는 살림 살이나 장독을 놓기도 하고 아령이나 역기와 같은 바벨을 두고 운동도 하는 그야말오

  '다용도 실'의 역할을 했더랬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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