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시절 많은 사람들은 한국 영화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 영화를 왜 돈 주고 봐?’라며 비디오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는
어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외국 영화는 리처드 기어나 숀 펜 혹은 로버트 드니로가
나온 영화는 꼭 본다거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는 꼭 본다거나 하면서
유독 우리 영화에 대해서는 선택에 대한 기준 자체가 전혀 없이 그냥 극장에서는
안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 문제는 선택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임권택 감독이 [씨받이]라는 영화로 해외에서 우리 나라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수상을 한 후 [장군의 아들], [서편제] 등의 영화가 인기를 얻었고 그와 함께
한국 대표 영화 감독으로 우뚝 서면서 임권택이냐 아니냐 오로지 단 하나의 기준이
있었을 뿐 딱히 한국 영화로 관객을 유도하는 기준은 없었다.
소위 말하는 안성기나 박중훈 같은 충무로의 ‘티켓 파워’ 역시 명확한 선택의 기준은 아니었다.
그냥 추석이나 설날 그들이 출연한 영화는 연기력이 보장된 ‘나름 볼만한’ 영화였을 뿐이었다.
나 개인적으로도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딱히 있지는 않다.
한국 영화든 외국 영화든 예고편을 보거나 TV에서의 각종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접했을 때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드는 영화를 보는 정도라고나 할까.
어차피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까. 그리고 요즘 같은 세상엔 꼭 극장에서 보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꼭 본다’라고 생각한 감독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짝패], [부당거래], [주먹이 운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같은 영화들에서
자신만의 색을 완전히 꽃 피운, 특히 [아라한 장풍 대작전]과 [짝패]를 통해
‘한국형 액션’이라는 것을 표현해 낸 류승완 감독이고,
또 다른 한 명이 바로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등을 연출하면서
상상력을 동반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하는 최동훈 감독이다.
그.래.서.
도둑들이란 영화가 개봉한다는 얘기를 처음 접했던 순간부터 이 영화는 극장에서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우선 출연 배우들부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해숙, 김윤식, 오달수,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 김수현 같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화려한 연기파 배우들은
물론 취권 3, 첩혈쌍웅 2의 홍콩배우 임달화까지 그들의 연기를 영화 한 편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고
무엇보다 연출이 최동훈 감독이라는 점, 다시 말하면 이처럼 대단한 출연진으로
또 어떤 탁월한 드라마를 만들 것인가라는 기대감이 극장에 가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 것이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중년배우 김윤식의 등산 장비를 이용한 화려한 와이어 액션은 물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는 ‘역시 최동훈’이라는 결론으로
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고나 할까.
전지현의 안 좋은 꿈을 사고는 결국 홍콩에서 죽는 순간에
‘내가 꿈을 잘못 샀어요’라고 하는 김해숙의 대사는 소름 끼치게
만들기 충분한 설정이었으며, 마지막까지 보석을 손에 넣기 위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 구조, 한국 영화에서도 과연
가능할까라고 생각했던 것을 실제로 구현해 낸 총격전과
곳곳에 배치된 전지현의 화려한 패션과 함께 몸매 감상용 장면까지.
2시간이 넘는 런닝 타임 동안 쉴 틈 없이 펼쳐지는 드라마와 액션의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전개는
과연 최동훈만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생각이다.
다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동전도 앞면과 뒷면이 있듯이 좋은 점이 있으면 아쉬운 점도 있기 마련으로
몇 가지 궁금한 점이랄까 아쉬운 점이 남는데
그 첫 번째가 오달수와 김수현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역할이다.
치밀한 이야기 전개의 결말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두 배우는 과연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조금 궁금하다. 특히 이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오달수가 맡은 역은 없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데
굳이 이 역할을 만든 감독의 속내는 무엇일까? 단순히 유머러스 혹은 재미를 위해서만이었을까?
그리고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담배를 피우고 싶게 만든다.
우리 나라 영화에서는 유독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아마도 TV에서 법적으로 담배 피우는 장면을 넣을 수 없으니까
영화에서라도 실컷 넣자라는 심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등장 인물들의 담배 피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김윤식과 이정재는 물론
김해숙, 전지현, 임달화 등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곳곳에 담배를 피워대니 보는 사람마저 담배가 자동으로 생각 난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 점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어쨌든 15세 관람가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차지하고서라도 최동훈 감독은
최동훈 감독이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충무로를 움직이는
100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어떤 잡지에 실렸는데
(정확히 100인지 50인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상위권에 위치한 사람들 중에 봉준호 감독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었다.
그리고 이제는 최동훈 감독도 그 리스트 상위에 올라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만든 영화가 바로 [도둑들]이며,
벌써부터 그의 차기 작품이 기다려지고 또 기대된다.
그는 그런 영화 감독이다.
Leggie...
'영화 읽어주는 남자:엔딩 크레딧'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 명작 다시 보기 (3)- 레인 맨 (Rain Man):인간관계의 매개체에 대한 고찰 (0) | 2012.10.16 |
---|---|
고전 명작 다시 보기 (2)- 오드리 햅번 (0) | 2012.08.30 |
미쓰 GO-조폭 영화의 또 다른 변종 (0) | 2012.06.25 |
가슴배구단-추천 할까 말까 할까 말까 (0) | 2012.06.13 |
미스 리틀 선샤인- 콩가루 가족 이야기 (0) | 2012.06.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