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개체: 어떤 일이나 작용 따위를 양쪽의 중간에서 맺어 주는 것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
오래 전 친구가 한 말 중 유달리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는데, 인간이란 단어 그 자체의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것이다. 사람 人과 사이 間이 합쳐져서 생기고 쓰이고 있는 단어이니 친구 얘기가 틀린 얘기는
아닌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게 더 정확한 뜻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관계, 즉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떻게 규정되느냐가 너무도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누구도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누군가의 아들 혹은 딸,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형제자매, 누군가의 삼촌이나 고모 혹은 이모, 누군가의 선배, 누군가의 후배,
누군가의 직장상사 또는 직장 후배, 누군가의 군대 동기 혹은 선임병이나 후임병처럼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관계의 연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는 언제나 대상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가 있다.
1988년 개봉되어 신들린듯한 더스틴 호프만의 자폐증 연기와 톰 크르주의 신인 시절 연기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레인 맨].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을 떼지 않았던 것은 따로 있었다.
불법 자동차 중개상인 찰리 (톰 크루즈)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수 밖에 없는 자폐증을 가진 레이먼 (더스틴 호프만)의 관계를,
생면 부지의 두 사람의 관계를 ‘형제’라는 이름으로 연결시켜준 매개체, 그들의 아버지가 찰리 (톰 크루즈)에게 남긴 두 가지 유산
중 하나인 1949년형 뷰익 자동차였다.
찰리가 가족을 등지고 그 누구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 혼자서 살아가게 된 것도
언제나 자신에게 냉담했던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1949년 형 뷰익을 16살 때 몰래 몰고 나갔다가 아버지의 신고로 경찰서에서
이틀을 지내야 했던 찰리는 질풍 노도의 시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해서 가출을 하게 되고 이후 그 누구의
도움이나 지원도 없이 혼자서 험난한 세상살이를 하게 된다.
기억 너머에 조차 존재하지 않던 형 레이먼을 만나게 된 것도
어느 날 들려온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은
찰리는 아버지의 유언장에서 가족을 버리고 떠나게 된
뷰익 자동차와 장미만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나머지 300만 달러에 달하는 유산은 그 누군가에게
상속되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는 그 누군가를 찾기 위해 월부룩에 있는 한 보호소로
뷰익 자동차를 몰고 찾아가는데 그 곳에서 세 살 때 헤어진
하지만 기억의 저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자폐증 환자인 형 레이먼을 만나게 된다. 처음 만났을 땐 서로 누군지도 몰랐지만
어렸을 때 한 번 운전해봤던 뷰익 자동차를 보고는 어린 시절 기억을 되짚어 내자 찰리는 그가 어린 시절 함께 살다가 어린
찰리를 다치게 할까 봐 일찌감치 아버지에 의해 요양원에 보내졌던 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레이먼과 월부룩에서 LA까지 6일간의 여행을 하면서 함께 타고 간 것도
레이먼에게 남겨진 유산의 절반을 차지하기 위해 찰리는 몰래 그를 데리고 LA로 돌아가게 되는데 비행기 폭파 사건과 고속도로
자동차 교통사고에 대한 기록을 외우고 있는 레이먼의 공포심 때문에 결국 아버지의 유산인 뷰익을 타고 국도를 통해 먼 길을
떠나면서 겪게 되는 형제만의 6일간의 여행이 펼쳐진다.
1949년 형 뷰익 자동차와 함께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극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아버지와 형제를 ‘가족’으로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연결시켜주는 매개체가 바로 뷰익 자동차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또 하나의 매개체가 등장한다.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인 [레인 맨]이 바로 그것인데 영화 속에 나타난 바로는 찰리가 어린 시절 두려움을 느낄 때면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줬던 상상 속 존재가 ‘레인 맨’이다. 평생 외아들인줄 알고 살았을 정도로 기억에 흔적조차 남지 않았던 형이
사실은 살아오는 내내 레이먼이란 이름대신 발음이 비슷한 ‘레인 맨’이란 이름으로 함께 했었던 것이다.
사실 서두에 얘기했던 사람이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수 많은 관계 중에서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언제나 우리에게 애잔한 ‘감동’을 선물한다. 때로는 눈물짓게 하며 때로는 감동에 가슴이 벅차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미워하게도 하지만 결국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바로 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영화는 마지막에서 레이먼의 대사를 통해 그런 ‘감동’을 선물하며 눈물짓게 한다.
336시간/ 20,160분/ 1,209,600초.
찰리가 레이먼을 만나러 가기로 한 2주 후라는 시간을 레이먼은 그렇게 되뇌이며 이제는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피붙이인
동생을 다시 볼 가슴 벅찬 순간을 그렇게 기억하고 기다릴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감동과 눈물을 뒤로한 채로 말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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