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모 동호회에서 엠티를 갔는데 특정 주제에 대해 토론하다가 한 선배가
‘사춘기’라는 단어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자 ‘발정기’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모두들 뒤집어지며 웃었는데, 기실 따지고 보면 사춘기라는 특정 시점이
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될 수 밖에 없는 시점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 않을까 한다.
단순히 ‘性’ 그 자체라기 보다는 이성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그러니까 같은 무리가 아닌 나와는 전혀 다른 무리의 구성원에 대한 지극히 각별한 관심이랄까 아무튼 뭐 그런.
그리고 그런 사춘기라는 만국 공통의 특성은 때론 소설에서 (해변의 카프카 등) 그리고 때로는
영화에서 (몽정기, 아메리칸 파이 등) 잊혀질만 하면 등장하는 단골메뉴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처음엔 가슴으로 배구를 하는 건가라며 좀 특이한 소재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족구는 발로하는 배구이니 가슴으로 하는 배구라는 종목이 새로 나왔나 싶었다 (거짓말이 아닌 사실이다!).
예전 [출발 비디오 여행]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스치듯이 지나간, 그러니까 일본 영화라는
단 한가지의 단서만 가진 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보신 분들은 동감을 하겠지만 이 영화는 전형적인 청소년 드라마 구조를 갖고 있다.
흡사 [스윙걸스]처럼. 아니 ‘처럼’이 아니라 판에 박은 듯 빼다 박았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여자의 가슴을 보고 싶어하는 사춘기의 남자 중학생 5명은 그 5명이 전부인 배구단원들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배구는 6명이 하는 종목이다!)
하지만 인원도 부족하고 실력도 없어 ‘바보단’이라고 놀림을 받지만 정작 본인들은 배구에 뜻이 없기 때문에
별로 상처를 받지도 않는데 어느 날 이 학교에 ‘테라시마 미카코’라는 예쁘장한 여 선생님이 전근을 오고는
바로 배구단 고문 (일본식 표현인 듯 한데 코치 또는 관리자 정도인 듯 하다)을 맡게 된다.
하지만 미카코가 본 배구단은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라 어떻게든 단원들의 사기를 올리고자
대회에서 1승만하면 단원들에게 가슴을 보여주겠단 약속을 울며 겨자먹기로 하게 되고,
이런 약속에 교내에 알려지면서 학교에서 짤리고 만다.
그 소식을 접한 단원들은 의기소침하여 선생님의 가슴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동안 쑥쑥 키워왔던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시합에서 질 위기에 놓여 있다가,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과거 자신을 선생님으로 인도한
선생님과의 회상 과정에서 어떠한 감동을 받고는 부리나케 뛰어 배구장에 '짠'하고 나타나
‘난 해고 됐지만 여전히 너희들의 선생님이야’라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로 아이들을 감동시키자
아이들은 결국 경기에는 지지만 한 세트를 따 내는 기적과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는,
정확하게 기승전결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며 있어야 할 곳에 감동이 있고 (그것이 억지든 아니든)
과거로의 회상이 있는 뭐 전형적인 그런 구조란 얘기다.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다음 이야기가 뻔하게 예측이 되기 때문에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감동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루한데,
그래서 이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당히 고민이 된다.
쉽게 말하면 [스윙걸즈]에서 받았던 감동이 판에 박은 듯 이어지는 구조 덕분에 감동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
그.래.도.
굳이 이 영화의 장점을 꼽자면
마치 한국 청소년들과 똑같이 생긴 천진난만한 일본의 중학생들이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공감’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는 표를 주고 싶다.
사실 중고등학생 시절 여 선생님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았던 남자가 과연 누가 있으랴.
그래서일까, 이야기 곳곳에 ‘공감’을 통한 웃음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장면이 배치되어 있어 크게 지루하지는 않다.
또한 [그 후로 수프만 생각했다]라든지 [도쿄밴드왜건] 같이 아기자기한 이야기 중심의
전형적인(?) 일본 소설처럼 이 영화도 나름의 기승전결은 속에서
나름대로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가진 영화로 그런대로 보는 맛이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사춘기라는, 어떻게보면 우리네 인생에서 황금시절을 표현해 냄에 있어서
한국의 [몽정기]와는 달리 너무 웃음 중심으로만 풀어내지 않고
담백하게 담고 있어서 지긋이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이 매력이랄까.
인터넷에서 그리고 TV에서 보여지고 들려지는 요즘 청소년들에 대한 경악할만한 뉴스 속에서
미성년자 입장불가였던 [귀여운 여인 (Pretty Woman/ 줄리아 로버츠 주연)]이라는 영화를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을까 고민했던 순수했고, 어찌 보면 순진했던 그 시절을
살짝 떠 올려볼 수 있었다는 얘기와 함께 이 영화에 대한 소감을 마무리 하려 한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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