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때 홍도 여행을 가기 위해 새벽 일찍 목포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가야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라 밤 기차를 타고 도착했었는데, 아직 배가 출발하려면 시간이
한참 남아서 아침이나 먹자고 한 식당에 들어 갔다. 식사를 다 마치고 주인 아주머니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아직 배 시간이 남았으니 안 쪽 방에 들어가서 한 숨 자고 있으면
깨워준다는 말에 전라도 인심 한 번 좋다는 생각과 함께 뜨근한 아랫목이 있는 방에서 한숨
붙이려는 순간,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목포는 항구도시인만큼 조폭들이 많은 꽤 무서운
도시라는 이미지가 불현듯 머리 속에 등장했고, 그 생각은 곧바로 식당 아주머니가 나를
새우잡이 어선 같은 곳에 팔아 넘기려고 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감에 마음 놓고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그렇게 졸음에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과 사투를 벌이던 중 방 안으로 한 사람씩 들어오더니 이내 방은 나를 포함해
4~5명으로 꽉 찼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그들도 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호의로 잠시 쉬러
왔다고 하며 여기저기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더니 이내 지쳐 보이는 눈을 감았다. 그 때 얼마나 긴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지.
그랬다.
군사정권의 매스미디어 장악에 따른 강제적 이미지 세뇌 작업 때문이었는지 전라도, 특히 항구 도시 목포는 조직 폭력배가 많은
이른바 ‘조폭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그 때만 해도 강했다. 원양어선이나 새우잡이 배에 잡혀 갔다거나 그와 비슷한 뉴스를 접하면
사람들은 목포를 먼저 떠올렸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인식 속에 ‘조폭=부산’이라는 등식이 자리잡았다.
2000년 즈음에 개봉해서 장동건을 연기파 배우로 만들며 흥행몰이를 했던 영화 [친구] 이후 올해 초 뉴라이트의 자본이 투자되었다는
소문 때문인지 ‘살아있네’라는 유행어 하나만 남긴 채 흥행몰이에는 실패한 하정우와 조진웅, 최민식 주연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까지,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가 그 이유가 아닐 듯싶다.
대한민국에서 조폭 영화는 [조폭 마누라]와 [두사부일체]에서 방점을 찍고는 여러 아류작들을 쏟아내다가 최근 시들어졌다.
그래서 조폭 영화가 나온다고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또야?’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외면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최근에 또 다시 부산 조폭을 대상으로 한 코믹 영화가 개봉했으니 바로 [미쓰 GO]다.
고현정이 주연이라서 [미쓰 GO]인가 싶었지만 정작 [미쓰 GO]로 등장하는 인물은
따로 있는 이 영화는 공황장애를 가진 여자 (고현정)가 이야기를 주도한다는 것
외에는 기존의 돈과 마약이 얽힌 조폭 영화 혹은 경찰 영화 (예: 사생결단 등)와 큰
차이점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다만 자기 옷이 아닌 듯한 옷을 입은 듯한 연기를 선보인-연기를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고현정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 꽤 들었다. 연기는 오히려
괜찮았다.- 고현정이 TV가 아닌 영화 연기에서 연착륙 했다는 점과
성동일, 이문식, 유해진, 고창석, 박신양이라는 연기력이 보증된 배우들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볼거리를 선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재미를 밑바탕에 깔고 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엇보다 등장인물 중 가장 핵심인물인 ‘빨간 구두 (유해진)’는 두 조직 폭력배와 비리 경찰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 전개를 보다
역동적으로 만드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그냥 여기까지만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어떻게 ‘빨간 구두’가 여객터미널의 CCTV를 백주 대낮에 장악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냥 재미있게 영화 한 편 보자 싶은 생각으로 본다면 꽤 괜찮은 영화라고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사건의 인과관계라든지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할까라고 따지고 들지 않는다면 말이다.
더불어 부산 항구부터 달동네 골목길까지 부산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거나 –실제로 부산에서 촬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만화 일러스트,
그리고 영화 끝에 등장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디바 ‘웅산’의 노래는 덤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혜택이 아닐까 싶다.
참, 한 가지 정보를 굳이 언급한다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자리를 뜨지 말았으면 한다.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아주’ 짧은 이야기가 숨어 있으니까.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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