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1983년에는 이만수 선수의 실력이 만개 하며 이영만 타격상 수상자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홈런 1위 (27개), 타점 1위 (74점), 타율 0.294를 기록하며 MVP와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고는 1984년부터 5년 연속 3할 타율과 두 자리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1984년에는 프로야구 최초로 트리플 크라운 (홈런 23개, 타점 80점, 타율 0.340)을 기록하며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수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의문을 제기합니다.
‘공격형 포수’라는 말처럼 이만수 선수는 공격에는 소질이 있었으나 투수 리드 및 경기 운영이라는 포수 본연의 임무에는 약하지 않았나라는 것인데요, 우선 김시진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옵니다.
"현역 때 많은 포수들과 호흡을 맞춰봤지만 포구능력에 있어서 이 감독이 최고였다. 내가 한창 공이 좋았을 때 서로 맞지 않으면 이 감독이 '마음대로 던지라'는 사인을 냈다. 슬라이더든, 커브든 뭘 던져도 놓친 적이 없다. 정말 든든했다"
이 내용만 보면 포수로써의 능력도 상당했을 듯 한데요, 이제부터는 기록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우선 도루 저지율 표를 한 번 보시겠습니다.
주요 포수 도루 저지율 | ||
이름 | 시기 | 저지율 |
박경완 | 1991년~2005년 | 0.379 |
장채근 | 1986년~1995년 | 0.325 |
이만수 | 1982년~1995년 | 0.380 |
(지명타자로 뛴 1996~1997년 기록은 제외)
도루 저지율 자체는 소위 말하는 ‘수비형 포수’들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1982년~1985년까지 4년 연속 4할이 넘는 도루 저지율을 기록하였지요.
다음은 주요 포수들의 실책 기록입니다.
주요 포수 에러율 | |||
이름 | 총 게임 수 | 에러 | 게임당 에러율 |
이만수 | 1,313 | 61 | 0.046 |
조인성 | 800 | 39 | 0.049 |
장채근 | 734 | 38 | 0.052 |
박경완 | 1,492 | 85 | 0.057 |
진갑용 | 952 | 66 | 0.069 |
(지명타자로 뛴 1996~1997년 기록은 제외)1
상기 표를 보면 김시진 감독의 인터뷰가 이해가 갑니다.
포수의 실책이란 결국 뒤로 빠트리는 공에 대한 것이 대부분일 테고 그것은 결국 블로킹이나 미트질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기록을 놓고 보면 이만수 선수는 수비를 잘했던 포수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쉽게 말하면 마운드 위의 투수로 하여금 안정감을 갖게 해 주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만수 선수의 기록을 보다가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1986년 출장 경기수 부문인데요, 이 때 이만수 선수는 59경기에만 출전할 정도로 경기수가 적었습니다.
은퇴한 1997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80경기 이상을 출전한 선수인데 유독 1986년에만 경기수가 적길래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허리 부상이었을 거라는 간략한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이유는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만약 허리 부상이 그 이유라면 그 해에 이만수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100호 홈런을 기록한 것은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시 해태의 김봉연 선수와의 통산 100홈런 달성 경쟁은 영호남의 대표타자간의 대결로도 많은 관심을 모았었습니다.
97홈런을 먼저 달성했던 김봉연 선수가 주춤하는 사이 이만수 선수가 99호까지 폭풍처럼 홈런을 몰아치며 100홈런 달성이 유리했으나, 잠시 주춤하는 사이 다시 김봉연 선수가 99호를 달성하며 타이를 이루는 등 꽤 대단한 경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는 이만수 선수가 대구구장에서 장외 홈런으로 100호 홈런을 기록하였는데요, 허리 부상으로 단 59경기만 출전하면서도 16홈런을 만들어 내면서 달성한 대기록이라 실로 놀라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1997년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은퇴식 없이 이만수 선수는 한국 프로야구를 떠나게 됩니다.
당시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마흔 살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싶었던 이만수 선수와 세대 교체를 원했던 구단과의 갈등 때문에 은퇴 아닌 은퇴를 하고는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고 한 팀을 상징했던 선수치고는 한 없이 초라해 보이는 마지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후에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불펜 코치로써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하고는 SK 와이번스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어 ‘팬티 쇼’도 팬들에게 보여주고 팬들이 뽑은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올스타’ 포수 부문에도 선정되는 등 여전히 팬들과 교감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이후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전임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과의 일들이 안 좋게 비쳐지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을 테니 3자 입장에서 추측으로 이러니 저러니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당대 프로야구 최고의 아이콘이자 여러 가지 기록을 보유했었고 한 팀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선수.
하지만 그 마지막이 너무도 아쉬웠던 선수.대기록들과 함께 16시즌을 프로에서 뛰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는 선수.등 번호 22번이 영구결번 되는 2003년에도 국내에 있지 않았던, 아니 있을 수 없었던 선수.
하지만 새로운 팀에서 감독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바로 그 선수, 이만수.2012년 이만수 ‘감독’은 어떤 모습으로 팬들에게 비춰질지 상당히 궁금해 집니다.
<통산 기록>출전- 1,449경기/ 타율-0.296/ 홈런-252개/ 안타-1,276개/ 볼넷-554/ 타점-861개/ 실책-61개도루 허용-744개, 도루 저지-456개, 도루 저지율-0.380
- http://blog.daum.net/hgjking/9620324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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