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덜 복잡한 주말 오후의 지하철.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습관적’으로 책을 펼쳤다. 여기서 습관적이란 말은 뇌에서 책을 읽으라고 명령을 한다거나 의식이 어떤 작용을 해서 책을 펼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나도 모르게 책을 펼친다는 얘기다.
하루키가 변했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하루키는 글을 시각화하는데 몇 안 되는 글귀들이었다. 이를 테면 ‘햇빛을 마신다’와 같은. 그 길고 두꺼운 장편 소설 중에서 발견하기도 힘든 몇 가지 글귀 때문에 그의 작품이 좋았다는 것이 어쩌면 이해가 안 될지 모르지만 여하튼 나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 읽고 있는 1Q84는 담백하다. 그래, 그냥 담백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키의 담백함을 한창 느끼고 있는데 어느 정거장에서 노 부부가 올라 탔다. 사실 노부부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만 ‘중년의 부부’라는 표현은 더 어색한 듯 하니 그냥 노부부라고 하자. 책을 읽는 와중에 어떻게 노부부가 탔는지 아냐고는 묻지 말자. 그냥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면 한 번쯤은 슬쩍 그네들을 쳐다보는 것쯤은 책을 읽으면서도 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그 노부부는 커다란 수레 가방-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을 마주 잡고 올라탔으니까.
올라타자 마자 아저씨는 예의 지하철 잡상인들이 파는 소소한 물건을 팔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아주머니는 한 쪽에 그냥 서 있었다.
내가 책에서 눈을 떼게 된 이유는 물건을 팔기 위한 아저씨의 목소리도 아니고, 그 아저씨가 파는 물건이 신기해서도 아니다. 그저 같이 올라타서 한 쪽에 가만히 서 있는 초로의 아주머니 때문이었다.
왜 저 아주머니는 함께 물건을 팔지도 않으면서 이 곳에 '함께' 등장했을까.
물건이 시원찮게 팔리지 않자 아저씨는 이내 철수 작업에 들어갔고, 그 때 가만히 서 있던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도와서는 함께 다음 칸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노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일까, 마주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함께 한 세월 동안 같은 곳을 보며 살아왔을까, 아니면 마주보고 살아왔을까.
마주 본다는 것, 그것이 어려운 일임을 안다. 옆으로 서서 손을 잡고 함께 앞으로 걸어가는 것보다 마주보고 서서 함께 손을 맞잡고, 같은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임을 안다.
시선을 다시 책으로 옮겼다. 활자가 눈에는 들어오지만 머리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몇 번 가로저었다. 나도 아까의 노부부처럼 그렇게 오랜 세월을 누군가와 마주보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렇게 누군가와 마주보고 살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그것도 담백하게-
Leggie...
'끄적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년 後 뒷모습- (0) | 2010.12.07 |
---|---|
편지 (0) | 2010.12.04 |
술 이야기 (0) | 2010.11.24 |
어느 일요일 이야기 (0) | 2010.11.22 |
휴무 (0) | 2010.04.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