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두 달간 쉬면서 대형 서점에 자주 간 일이 있었다. 대형 서점에 갈 때마다 나는 책을 보는 순서가 있다. 다시 말하면 책을 고르는 과정은 나에게 하나의 종교적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우선 소설 코너로 가서 국 내외 작가 막론하고 신간 소설을 훑어본다. 우선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먼저 찾아본 후-마크 레비, 하루키, 오쿠다 히데오, 김진명, 조정래 등의 소설을 좋아한다-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찾아본다. 특히 역사 소설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친일 사관에 입각한 역사가 아닌 소위 '언더그라운드' 의 생생한 역사와 비화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베스트 셀러 코너로 발걸음을 옮긴다. 소설뿐 아니라 인문, 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베스트 셀러를 파악함으로써 트렌드도 알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내 취향의 좋은 책과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운이 좋다고 표현한 것은 대체적으로 베스트 셀러와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좋은 것이 꼭 나에게도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듯하다.
그런데 지난 여름 서점에 갈 때마다 표지가 눈에 띄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이 바로 '빅 픽처'였다. 처음 표지만 봤을 때는 무슨 언론사 기자가 취재한 뒷 이야기를 담은 책인 줄 알고 책을 훑어 봤는데 그냥 소설이었다. 그래서 그냥 책을 덮었던 것이 빅 픽처와 내가 처음 만났던 순간이었고, 이후에는 그냥 지나쳐가기만 했다. 일상 속에 내 주변을 쉽게 스쳐가는 사람들처럼.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 되었을 때 이 책은 우연하게 나를 다시 찾아왔다. 책을 검색하다 보니 베스트 셀러 상위에 올라 있고, 독자들의 서평도 대단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다 읽을 때까지 책을 덮을 수 없었다는 둥, 흡입력이 올해 읽은 책들 중 최고라는 둥 극찬의 극찬들 뿐이었다. 거기에 책의 소재가 그런 대로 나쁘지 않은 것 같기까지 하니 이 책을 한 번 읽어봐야 겠다라는 생각에 덜컥 구매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보통 이런 심리 스릴러 물은 다음 내용이 궁금해야 하고, 그 덕분에 빨리 다음 페이지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렇지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을 너무 장황하게 펼쳐 놓았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함에 있어서도 너무 복잡하고 길었다. 무엇보다 어설프게 문학적인 표현까지 구사하려 하다보니 내용 자체가 지루하기 짝이 없고 나아가 다음 페이지의 내용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지경까지 가버린 것이다.
결국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포기했다. 어디 읽다가 포기한 책이 한 두권이겠냐만 도저히 더 읽을 수가 없어서 책을 그냥 덮어 버렸다. 끝까지 읽는다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혹시 그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원어는 좋은데 번역하고 나니 책이 이 모양이 됐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
어찌 됐든 이건 아니다 싶었다. 책도 상품이고 보면 한 권의 책을 팔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기법이 도입되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과장을 하거나 과대 포장을 해서는 안 될진데 이 책은 그것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또 한 번 절감했다.
남들에게 좋은 책이 나에게도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고를 때도 처음 느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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