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에 익숙한 작가의 장편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책 읽기의 또 다른 모험 중 하나이다. 인더풀-공중그네-면장선거로 이어지는 작품 속에서 만난 이라부 박사 이야기는 결국은 여러 개의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형태고, 가장 최근에 읽었던 '오 해피데이' 역시 단편 모음이었다.
물론 작가가 언제까지나 단편만을 쓸 수 없으니 독자도 언젠가는 그 작가의 장편을 만나보아야 하겠지만 자칫 실망이라도 안게 되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장편으로 먼저 익숙해진 하루키의 경우 단편을 보고는 꽤나 적응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최악'이냐 '한밤중에 행진'이냐를 놓고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갈등했다. 어차피 장편을 읽을 거라면 두꺼운 '최악'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을 듯한데-실제로 상당히 두껍다- 처음 접하는 장편이니만큼 적당한 분량의 '한밤중에 행진'이 더 좋을 것도 같아 거짓말 안 하고 20분 이상을 고민했다. 그리고 고른 책이 '한밤중에 행진'.
결론적으로 책은 재미있다.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무겁지 않음'이 분명 이 책에도 적용되었고, 그 덕분에 속도를 내어 책을 읽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었다. 다만 몇 군데 번역의 오류가 옥의 티라고나 할까. 특히 후반부에 나오는 흡사 성룡 영화의 전매특허인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방불케 하는 내용은 이 책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더불어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능력이 이 책에서도 발휘되었으니 떠오르는 야쿠자 '후루다', 주인공 양아치 '요코야마', 천재 사회 부적응자 '미타'와 이런 소설에서는 빠질 수 없는 절정의 미녀 '구로가와'까지 등장인물마다 나름대로의 캐릭터가 확실히 살아 있어 이야기 전개에 훨씬 박진감을 더해준다.
물론 바나나, 하루키, 류와 같은 정통 문학 작가들의 작품처럼 이 책에서 무언가를 얻는다든지 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니 기대하지 말자. 오쿠다 히데오는 원래부터 그런 작가가 아니니까. 세상 모든 작가들이 같은 형태의 작품만 쓰면 얼마나 재미 없겠는가.
자, 준비가 되었다면 '한밤중에 행진'속으로 뛰어 들어가 보자. 현금 10억엔보다 짜릿한 도쿄 도심 한복판의 추격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을!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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