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생 때 강남 역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버스 중앙 차로도 없었고, 지금은 모 통신사의 대리점이 있는 위치에는-현재도 그 대리점이 아직 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햄버거 체인점이 있었고 그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언젠가 하루는 햄버거 가게 앞 계단에 앉아 2시간 정도를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는데 보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DMB도, 휴대 전화도, PMP도, 그리고 당연히 아이폰도 없던 시절이라 사람들은 크게 세 분류로 나뉘었다. 이어폰을 들으며 걷는 사람,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동하는 사람, 혼자서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하지만 비슷하게는 생겼어도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없듯이, 단순히 세 분류로 나뉘는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른 차림을 하고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사람을 연구한다는 학문, 인문학. 그 규정도 범위도 모호한 인문학이라는 것이 출판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어 쏟아지는 책의 종류만도 거짓말 조금 보태면 머리카락 수만큼 많은 듯 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으니 바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이라는 책이다.
다른 독후감에서도 언급했지만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대충 훑어만 봐도 ‘나에게 맞는’ 책인지 아닌
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데, 처음 이 책을 서점에서 봤을 때 바로 이거다 싶었고, 그 생각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세계사가 움직인 현상을 설명
한 이 책은 술술 읽다 보면 어느 새 이야기의 끝에 다다라 있을 정도로 쉽고 친근하게 정리 되어 있
다.
특히 중세 시대 근대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딜레마에 종교와 철학이 미친 영향에 대한 설명은 학교나
교과서에서 쉽게 알 수 없는 내용들로 그 전후 상황과 사회적 배경이 정리 되어 있어 너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감탄하고 또 감탄을 했다.
어떻게 보면 인문학이란,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닌 ‘사회적인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더 나아가서는 그 사회적인 현상이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닐까.
그래도 난 사람들이 좋다. 그들이 좋다. 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한 번쯤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 그것이 내 천성인 듯 하다.
그래서 작은 바램 하나는 이런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 그거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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