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메이저리그 대신 정착한 일본 프로야구에서 한국 대표 에이스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첫 해인 1998년 1승 평균자책점 4.68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두게 되지요.
물론 메이저리그 진출과 관련되어 동계 훈련을 착실히 못했고, 일본 프로야구에의 적응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래도 자존심은 많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9년엔 다행히 6승 5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2.84라는 성적으로 체면치레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주니치 드래곤스는 센트릴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때 국내 언론에서는 이상훈 선발-선동렬 마무리, 이종범 1번이라는 한국인 트리오가 만들어 내는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 기대감을 한 껏 드러냈었습니다.
물론 이상훈 선수가 선발로 뛰기도 했었지만 손가락 혈류장애로 마무리로 전환한 이력이 있는데도 말이죠. 지금생각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기자들이란 참 어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상훈 선발, 과연 괜찮은가’ 이런 기사를 써 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쨌든 1999년 시즌이 끝나면서 이상훈은 소속구단의 재계약 요청도 뿌리치며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메이저리그에서 그가 처음 시작한 팀은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트리플 A 팀인 ‘포터킷’이었으며 성적은 45경기 출전 5승 2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07 및 73 탈삼진의 괜찮은 성적을 올립니다.
그리고는 같은 해 드디어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승격되어 마운드에 오르지만, 그 꿈도 잠시.
9경기에 등판, 승패 없이 3.09의 평균자책점을 남긴 채 마이너리그로 강등되고, 2002년 오클랜드 산하 트리플A 팀인 새크라멘토 리버캐츠에 트레이드 되자 시즌 중 4억 7000만원의 연봉으로 LG에 복귀, 7승 2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1.68의 성적으로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그 때 그가 마운드에서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저렇게 던지고 싶어서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정규시즌 4위로 가을잔치에 초대된 LG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2승으로 따돌리고 플레이오 프에 진출하는데, 이 때 2경기 모두 이상훈 선수가 완벽한 마무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기아 타이거즈와의 플레이 오프에서는 1승 2패의 벼랑 끝에서 이상훈이 1점차를 완벽히 막아주면서 기사 회생, 결국은 역전으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게 되는데요, 인생은 참 아이러니 한 것 같습니다.
2승 3패로 승수에서 몰렸지만 당시 9회까지 3점차로 이기면서 3승3패를 만들 수 있었던 순간, 이상훈 투수는 9회말에 이승엽 선수에게 동점 3점 홈런을 내주었고, 이어 등판한 최원호 투수가 마해영 선수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우승을 넘겨주게 됩니다.
여담으로 당시 LG 트윈스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과 이상훈 선수와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합니다.
시즌 중 합류한 이상훈 선수에게 김성근 감독은 ‘머리를 자르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삼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머리에 애착이 강한 이상훈 선수에겐 절대 따를 수 없는 지시였기에 당연히 거부했겠지요.
그러자 김성근 감독이 “네가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다른 선수들에겐 내가 뭐라고 하겠니” 묻자 그래도 자를 수 없다고 버틴 이상훈 선수에게 김성근 감독은“그럼 자르지 마라. 대신 다른 선수들에게도 그렇게 하겠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은근히 이상훈 선수의 책임감-물론 에이스로써의 책임감이겠지요-을 강조한 얘기였고, 이상훈 선수는 성적으로 보답했습니다.
뭐 믿거나 말거나 한 내용이니 진실 여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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