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그래 봄인 것이다.
누가 뭐래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꼭 어디론가 가야할 것만 같은 그런 봄이다.
도대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 싫다해도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우리는 봄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봄에 관한 추억이 있어?"
누군가가 밥을 먹다말고 내게 물었다. 그 질문을 듣고 바로 대답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 내게 봄에 얽힌 추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것이다'가 아니라 없다. 어린 시절 봄 운동회 기억이라도 나야하는데 딱히 봄이라는 계절과 연관된 기억은 그리 크거나 넓지 않는 뇌건만 아무리 뒤져봐도 없는 것이다.
여름이면 해변가나 계곡과 관련된, 가을이면 여행과 관련된, 겨울이면 눈(雪)과 관련된 추억이 개미가 기어가듯이 살살 기어오르는데 막상 봄과 관련된 추억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없는 것 같애"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나의 대답에 그 사람은 말했다.
"연애를 해. 그럼 봄에 관한 추억이 생길거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이미 봄에 관한 추억이라면-그의 표현대로라면 연애에 관련된 추억이라면- 앨범이 100권은 넘게도 있을 법한, 이제 더 이상은 추억은 귀찮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사실 봄이 연애의 계절이라는 것에 대해 반대할 생각은 없다. 아니 봄은 연애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인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에 관한 추억이 연애로 단정지어진다는 것에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연애에 관한 것이든 그 어떤 것에 관한 것이든 봄에 관련된 추억이 하나도 없다는 것 때문에 나의 봄은 불편한 것 같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만들어가기도 모자란 짧은 봄이건만 누군가에게는 탈출하고 도망가고 싶은 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무는 한 쪽으로는 햇 빛을 받지만 동시에 다른 한 쪽으로는 그늘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는 힘겨운 봄을 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위로하면 나의 봄도 편안해질 것 같다.
내게 봄은 그런 것이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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