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믿거나 말거나 인류가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서인지 사람들은 인간의 존재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크게 궁금해하지 않아 합니다.
뭐 많은 사람들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로부터 진화했다는 학창시절 배운 내용 때문에 궁금해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입니다.
대체 닭이 달걀을 낳아서 그 달걀이 부화되어 닭이 되어 또 다시 달걀을 낳는 과정을 반복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존재하던 달걀이 부화되어 닭이 되어 달걀을 낳는 과정을 반복한 것인지.
바로 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정면으로 건드린 영화가 있으니, 바로 에단 호크 주연의 [타임 패러독스]인데요
영화의 원제인 ‘Predestination’는 ‘예정, 숙명, 운명’과 같은 뜻을 같고 있으며 한국 제목인 타임 패러독스는 ‘시간의 왜곡 (역설)’이라는 뜻인데요,
제목만 봐도 영화의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놀라운 상상력과 예측불허의 반전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Fizzle Bomber’라는 연쇄 폭파 테러리스트로 시끄러운 1970년 11월 6일의 뉴욕.
뉴욕의 어느 바에 곱상한 외모의 한 남자가 손님으로 들어 옵니다.
‘미혼모’라는 필명으로 여성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단어 당 4센트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그의 이름은 존 (사라 스누크).
바에서 바텐더와 이런 저런 얘기하던 중 두 사람은 내기를 합니다.
존이 하는 이야기가 놀라우면 위스키 한 병을 공짜로 주고 별로 놀랍지 않으면 바텐더에게 20불의 팁을 주기로.
그리고는 남자의 기나긴 독백이자 고백이 시작됩니다.
1945년 고아원에 버려진 제인. 그렇습니다. 그 곱상한 외모의 남자는 ‘제인’이라는 이름의 여자였습니다.
태어나길 여자로 태어났고 성장도 여느 여자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성장했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탁월한 두뇌를 바탕으로 공부를 잘했다는 것과 싸움 실력이 좋았다는 것.
그런 그녀가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그녀의 앞에 ‘Space Corp’라는 회사에서 한 남자가 찾아 옵니다.
그리고는 여자 우주 비행사를 뽑는데 지원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하는데 그녀는 주저 없이 그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이후 수 많은 다른 지원자들과의 경쟁에서 체력, 지구력, 지적 능력 등 승승장구 하던 제인은
그만 다른 지원자와의 주먹 싸움을 벌였다는 이유로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 모집에서 중도 탈락하는데요,
처음 자신에게 지원을 권유했던 로버트슨의 어떻게 손을 써보겠다는 얘기에 기대를 품고는
낮에는 가정부로 일하고 밤에는 식탁 예절 같은 교양 수업을 받으며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피하다 제인은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그녀에게 ‘예쁘고 사랑스럽다’라고 말해준 이 남자와 제인은 금방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요,
고아로 태어난 것이 서러워서 자신의 아이는 꼭 남편과 함께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키우고 싶어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순결을 유지했던 제인은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남자는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나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결국 혼자 딸을 출산한 제인은 출산 후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를 의사에게 듣게 되는데 바로 그녀가 양성인,
즉 남자와 여자 모두의 생식기를 갖고 있으며 출산 과정에서 출혈이 심해 자궁과 난소를 제거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남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출산 불과 며칠 후 그녀가 낳은 딸은 누군가가 납치하여 사라지게 되는데요.
이후 그녀는 몇 번의 큰 수술을 더 받고는 완전한 남자로 살아가게 되었고,
자신을 임신시키고 아이를 납치해 갔다고 믿는 그 남자에 대한 증오심을 자양분 삼아
이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전반부이자 이 영화의 절반에 해당되는 내용인데요,
영화가 약 100분쯤 되니까 여기까지가 50분정도 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좀 지루합니다.
아무래도 50분이나 되는 긴 시간을 한 등장인물의 성장과정과 인생에 대한 독백으로 진행되다 보니 지루할 수 밖에 없는데요.
그래서인지 [타임 패러독스]는 개봉 당시 200개 이상의 스크린 확보했음에도 82,246명의 관객, 646,075,908원의 수익을 올리는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지금부터입니다.
영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루한 50분을 견디면 충격적인 반전과 놀라운 상상력을 만나게 되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전반부의 내용을 머리 속에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인, 그러니까 성전환 수술을 받아 존으로 살고 있는 남자의 얘기를 다 듣고 난 바텐더는
만약 그 남자를 당신의 앞에 데려다 주면 바로 죽일 거냐고 묻자 제인은 당연하다는 대답을 하고
바텐더는 그 남자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고는 바의 지하실로 데려갑니다.
바로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서인데요.
바텐더는 ‘템포럴’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간 총국의 핵심 요원 (에단호크)이었던 것입니다.
시간 총국이란,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에 있었던 엄청난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는 임부를 수행하는 비밀 기관으로
바로 Fizzle Bomber를 찾아 없애서 10,000명 이상의 사망하는 연쇄 폭발 사고를 방지하고자 했고
그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이 바로 템포럴이었으며,
오래 전 제인에게 찾아와 우주 비행사가 되길 권했던 남자인 로버트슨이 바로 시간 총국의 총괄관리자였던 것입니다.
어쨌든 템포럴은 존을 데리고 존이 제인이었던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데 그들이 도착한 시간은
바로 제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에 빠졌던 남자를 만난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여기서 첫 번째 반전이 등장합니다.
제인이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바로 자신, 그러니까 성전환 수술을 통해 남자로 살고 있는 존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즉 여성이었던 어린 시절의 제인과 남자로 다시 태어난 나이 든 존이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며
제인이 임신하고 출산한 아이는 바로 존의 아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사람이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 납니다.
제인이 출산한 아이를 몰래 납치한 사람은 다름 아닌 템포럴이며, 그는 시간 여행을 통해 그 갓난 아기를 1945년 어느 고아원 앞에 놓아 둡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제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자라고 성장하는데요.
맞습니다.
존이 성 전환 수술을 하기 전의 제인이 바로 템포럴이 고아원 앞에 놓아둔 아기 입니다.
조금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중하면서 잘 따라와야 합니다.
‘1945년 고아원의 제인 -> 미래에서 온 자신 (존)과의 사랑, 임신과 출산 -> 아기의 납치 ->
1945년의 고아원 앞에 놓인 아기 -> 제인이라는 이름으로 성장’
이런 끊을 수 없는 순환 과정이 제인이자 존인 사람에게 벌어진 것입니다.
근데 충격적인 반전은 한 번 더 일어 납니다.
시간 총국의 총괄 관리자 로버트슨이 제인을 ‘여성 최초의 우주비행사’라는 달콤한 말로 유혹한 이유는
그녀가 고아인데다 남편이나 아이 같은 얽매일 곳이 없었다는 것인데요, 사실은 시간 여행을 통해 Fizzle Bomber를 잡을 요원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 여행이란 것이 아무래도 많은 체력을 소모하다 보니 신체에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연쇄 폭탄 살인범을 잡는 임무다 보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템포럴과 시간 여행 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존 (제인)은 시간 총국의 요원으로 지원,
Fizzle Bomber를 잡기 위한 요원으로 활동하다 폭탄이 터지는 현장에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는 피부이식 수술을 받게 되는데요,
피부 이식 후 얼굴 모습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는데 그 모습이 바로 템포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인과 존, 템포럴 모두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충격과 함께 오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자신이 자신을 과거로 안내해서 자신을 만나 자신을 낳고 그 자신을 납치해서 고아원 앞에 놓아 두고는
자신으로 성장하게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으며 오묘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 반전이 하나 더 일어 납니다.
이 부분은 이 영화 최고의 반전이자 이야기 구성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한데요.
제인이자 존이면서도 템포럴인 요원은 로버트슨으로부터 휴식이자 은퇴를 권유 받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 시간 여행 탓으로 건강에 무리가 왔을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그렇게 Fizzle Bomber는 잡지 못한 채 은퇴하는 템포럴.
동시에 그와 함께 했던 시간 여행 장비도 멈추게 됩니다.
긴 여행 끝에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한 휴식을 취하려는 템포럴.
하지만 멈춰야만 했던 시간 여행 장비가 고장이 나며 그는 또 다시 시간여행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알고 봤더니 로버트슨이 휴식을 준 것이 아니라 연쇄 폭파범의 단서를 주며 추적하라는 지시가 장비 안에 숨어 있었고,
템포럴은 할 수 없이 그 단서를 쫓아 또 다시 시간 여행을 하고는 마침내 폭파범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나 힘들고 고생해서 찾으려 했던 폭파범을 찾고 보니 그는 다름 아닌 늙어 버린 자기 자신.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그토록 긴 여정- 여자에서 남자로, 과거로, 과거에서 더 과거로, 다시 미래로, 또 다시 과거로- 을 지나왔던 것인데요.
템포럴은 일말의 미련도 없이 폭파범이자 자기 자신을 총으로 쏴서 죽여 버립니다.
이 장면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요
폭파범은 제인이 존으로, 다시 템포럴로 변하면서 긴 시간여행을 하게 만드는 존재이자 근본 이유입니다.
그래서 그 존재가 없다면 어쩌면 제인이자 존이면서 템포럴은 긴 시간 여행을 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어쩌면 템포럴은 미련 없이 자기 자신을 죽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폭파범이 없으면 제인이자 존이면서 템포럴은 존재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제인을 임신 시킨 것도 자신이며, 제인이 낳은 아이도 자신이며, 그 아이를 납치 한 것도 자신이며,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존 (제인)을 다시 과거로 보내 자기 자신인 제인을 만나게 한 것도 자신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죽인다는 건 결국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서두에서 제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얘기를 했는데요,
바로 이 부분 때문이며 이 얘기는 존이 바에 찾아갔을 때 템포럴이 존에게 물었던 얘기이기도 합니다.
백혈병을 낫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골수 이식입니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자신에 맞는, 그러니까 부작용이 없는 골수와 기증자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또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데요.
그런데 골수 이식이라는 것에 금기 시 되는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자식의 골수를 부모에게 혹은 손자의 골수를 조부모에게 이식하는 것을 금기 시 하는 것인데요, 바로 윤리적 이유 때문입니다.
제가 의학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전해 들은 얘기로는 골수를 기증 받은 사람은 골수를 기증한 사람의 성격을 닮아 간다고 합니다.
나아가서는 사고 방식이나 입 맛도 닮아간다고 하는데요 (이 부분까지는 진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경우는 있어도 부모가 자식을 닮는 다는 것은 뭐랄까요,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서라도
좀처럼 생각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골수는 형제자매나 모르는 사람의 것을 받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사실 타임 머신 혹은 타임 슬립이란 것도 이런 부분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내가 과거로 가서 어떤 부분을 바꿔버리면 현재의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혹은 과거로 가서 내 부모를 이별하게 만든다면 현재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것들인데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이클 제이 폭스가 주연한 [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입니다.
마티 맥플라이 (마이클 제이 폭스)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과거에서 만난 학창 시절의 엄마와 아빠.
하지만 청소년 시절의 엄마가 마티를 좋아하게 되자 미래에서 갖고 온 사진에서 자신과 형제들의 모습이 조금씩 지워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시간 여행이란 굉장히 흥미롭고 호기심 가득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굉장히 위험하며 무섭기도 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아 함께 SF 3대 거장인 로버트 하인라인의 단편 [All You Zombie]를 원작으로 했다고 하는데요,
원작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영화 만으로도 충분히 충격과 반전을 전달받았다고 할 수 있을 듯 하고,
그런 반전과 충격을 받게 한 결정적인 요소로 제인이자 존을 연기한 사라 스누크의 연기에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젊은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조디 포스터를 합쳐 놓은 듯한 꽃 미모를 가진 이 배우는
1인 2역을 완벽히 소화하며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에단 호크가 오히려 조연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지요.
길었던 영화 감상 평을 마무리하며 여기까지 글을 읽은 분들께 다시 묻고 싶습니다.
‘닭이 먼저일까요, 달걀이 먼저일까요?’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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