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0월.
대한민국의 첫 번째이자 대규모 국제 행사였던 서울 올림픽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 우리는 꽤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됩니다.
바로 영등포 교도소에서 공주 교도소로 이송 중이던 재소자 (在所者) 일당이 탈옥한 후 서울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였던 사건인데요,
단순히 인질극을 넘어 당시 탈옥수들의 두목격이었던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강한 메시지로 전달되기도 했었던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 영화 [홀리데이]는 소위 ‘지강헌 사건’이라고 불리던 당시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제작되어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혹은 알고 있지 못하는 우리 세대에게 소개되었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발전된 모습으로 치장하기 바빴던 정부에게 강남의 이른바 ‘판자촌’은 없어져야 할 눈엣가시였고,
돈이 없고 ‘빽’이 없어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 둘씩 모여 삶의 터전을 이루었던 터라 쉽게 그곳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택한 방법은 몇 십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불과 몇 년 전 용산 참사에서도 볼 수 있었던, 용역 깡패 동원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배려보다는 자신들의 이익과 치적에만 몰두하던 공권력은 용역 깡패를 동원하여 판자촌을 철거시켰고
그 과정에서 지강혁 (이성재)의 동생이 경찰 김안석 (최민수)의 총에 맞아 죽고 맙니다. 지강혁은 공권력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공무집행 방해로 징역 7년, 보호감호 10년 형을 받아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무려 17년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지강혁이 수감된 교도소의 소장으로 김안석이 부임하면서 지경혁은 호시탐탐 그를 죽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제나 실패하고 그 대가로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요,
이 영화는 이처럼 ‘지강혁 vs 김안석’이라는 대립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실제로도 그런 대립 구조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기본적인 뼈대는 괜찮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후에는 다들 아시다시피 죄수 이송 중에 탈출, 함께 탈출한 일당과 함께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른바 ‘동가식 서가숙’하는 생활을 하면서 돈도 훔치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도 만나는 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이 영화는 크게 세 가지 부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첫 번째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전개가 몇 곳 눈에 들어 옵니다.
먼저, 탈옥한 후 지강혁 일당은 왜 전임 대통령 (전두환)을 찾아갔느냐 하는 것인데요,
탈옥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를 저지른 후 숨어살아도 모자랄 판에 왜 굳이 그런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을 감행하여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빠트리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고,
그러다 보니 이야기 전개가 어느 순간 훅 떠버린 느낌이 들어 매끄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실화의 주인공 지강헌의 행적을 찾아 보니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는데요
아무래도 작가가 극의 흐름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오히려 무리수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은 교도소에서 소위 ‘방장’으로 다른 재소자들의 우두머리로 군림했던 황대철 (이일)이
어느 순간 다른 탈옥수들과 친구가 되어 있던 것인데요,
심지어 황대철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전화통화를 할 때 그를 형님으로 모셨던 김장경 (장세진)은 친구에게나 할 법한 말을 함으로써
‘주종관계’에서 ‘동반자’관계로 어느 순간 그들의 관계가 변해있음을 전달합니다.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언제부턴가 지강혁이 황대철을 대신해 그들의 리더가 되어 있었다는 점인데요.
이런 관계의 변화가 아무런 설명 없이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있다 보니 좀처럼 몰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즉,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관계가 재설정되고 그것에 맞춰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끼워 맞춘 듯이 갑작스러운 변화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곳곳에서 어색함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영화는 꽤나 좋은 소재와 괜찮은 대립구조를 가졌으면서도 170개 스크린에서125만여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습니다.
물론 매출측면에서는 약 78억 원 정도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기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로는 영화의 제목이 되어버린 비지스의 ‘홀리데이’란 팝송입니다.
사실 이 음악이 우리에게 익숙해 진 것은 1999년에 개봉된 박중훈, 안성기 주연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였습니다.
영화에서 박중훈과 안성기의 싸움 장면에서 등장하며 몰입감을 극대화시켜 주었던 이 곡은
지강헌이 실제 인질극을 벌일 때 경찰에게 틀어달라고 했던 노래라고 합니다.
당시 그가 왜 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시 경찰은 스콜피온즈의 ‘홀리데이’였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 생각해 볼 부분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지강혁, 실제 인물인 지강헌이 남긴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얘기입니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친 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것이 과연 적합한 것이었을까요?
우리나라 헌법 제11조1항에는"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다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작은 죄를 지어도 큰 형벌을 받아야 하고, 돈이 있으면 그 돈을 빌미도 온갖 ‘빽’을 동원하여 적은 형벌을 받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법적으로도 무시 당하고 멸시당해야 하고 돈이 있으면 경찰, 검찰은 물론 정부 고위직까지 연결하며 무죄를 받기도 합니다.
대기업 회장을 비롯해 그들의 자녀들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의 금융 범죄를 저지르고, 패륜적인 범죄를 저질러도
무죄로 풀려나거나 오히려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밀양 성폭행 가해자들을 두둔했던 황선미라는 여자는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되어 있는 기가 막힌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http://marke.tistory.com/4434)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바뀌지 않고 있으며,
그래서 어쩌면 우리 사회는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또 다른 지강헌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우리 사회를 되돌아 보게 하는 영화지만 이야기 전개에서 아쉬움이 남는 영화,
저는 이 영화를 그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Leg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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